지난 2-3일간은 정리되지 않는 여러가지 생각으로 헤맸습니다. 거리를 메운 촛불행렬 자체도 눈물겨웠지만 촛불행렬에서 반미까지의 거리와 각도, 속도를 둘러싼 다양한 집단의 반응과 향후 추이를 짚어보느라 머리가 찌끈거렸습니다. 그런가하면, 점차 열기를 더하고 있는 대통령 선거 과정의 다양한 고민거리도 어느하나 녹녹한게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는 지난 80년대 처럼 한두개의 선택을 놓고 고민하던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게 분명합니다. 이 시대는 복합적인 해답이 존재하는 고차원적인 시험의 시기입니다.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본격적인 '판단'의 시기에 진입한 것입니다. 중대한 시점인 만큼 좋은 판단을 해야할 겁니다. 그래서 조금은 버겁고 머리가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판단해야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와중에 또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시인도 만나고 소설가도 만났습니다. 몇명의 공무원 무리와도 조우했습니다. 술속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숙취의 잔영처럼 몽롱합니다. 몇마디 대화들이 단속적으로 기억 세포에 출몰했다가는 이내 사라지곤합니다. 기자란, 사람들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최단기'에 내려야하는 숙명을 지고 가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리하게 날이선 판단레이더가 쉬지 않고 작동합니다. 특히 그 사람이 취재원이나 제보자일 경우는 더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여부가 기사의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사람에 대해 최대한 천천히 판단하려합니다. 첫째는 어느 누구도 놓치기 싫은 탓이고, 둘째로는 잘못 내려진 판단 - 선입관은 기사나 인간관계에 치명적이기도 하거니와 그만큼 쉽게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휴, 인터넷을 통해 일상을 기록해야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자연스럽지는 않군요. 일상의 상념들을 침전시켜 뭔가 걸러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데, 하루 24시간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데는 적절한 시간인지 모르겠으나 그 경험을 뭔가 정돈된 생각으로 뽑아내는데는 턱없이 짧은 시간인가 봅니다. 부지런히 경험하고 더 조직적으로 사고하는 버릇을 길러야하겠습니다. 술을 마셔도 취하면 안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하루도 의미없는 영겁 시간속으로 스며들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