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1: 요즘 국정감사를 보고 있노라면 국회에 대한 실망을 너머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국정현안 전반에 대한 꼼꼼한 감시 보다는 극단적 정쟁의 장이 되고 있는거죠. 더구나 최근 KBS 정연주 사장 등에게 간첩연루설을 제기하며 매카시즘의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실종된 대의정치제와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이글은 지난 99년, 검찰을 출입하며 15대 국회의 검찰국감 현장을 취재하고 쓴 글입니다.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변한 점은 보이지 않더군요. 엉터리 국정감사, 정말 국민들의 단호한 '감사'가 필요합니다.) (주2: 그밖의 DJ 정부 초반 검찰과 국회의 현장 취재기록은 다음 사이트에 보관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즐감바랍니다. http://www.imbc.com/newsinnews/nin_25.html ) *업데이트: 99.08.24 국정조사, 그 희극적 가능성   "가격표를 보니 별로 비싸지 않은데요." "이것 봐, 비교적 싼 물건들이 나와있네." "다른 데에 비해서 색깔이나 디자인 선택, 이런 것은 뛰어나네요." 시장통에서 주부들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가 아닙니다. 고급옷 로비사건으로 불편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남의 옷가게 '라스포사'를 찾은 국회의원이 주고받은 말들입니다.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 위원회 옷로비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라스포사'에 모였습니다. 물론 때가 때이니 만큼 고급옷 로비에 대한 추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을 당한 라스포사 정일순 사장의 남편 정환상씨는 오히려 국회의원들에게 고마운 표정입니다. " 장부 있나요? '누구한테 팔았다' 이런 장부말이에요?" "장사가 그걸 적을 수가 없죠. 그냥 오늘 자켓 하나 얼마에 팔았으면 그렇게 적는 거죠." 아예 드러내놓고 정환상씨의 변호인은 자청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국민회의 조찬형 의원은 본업은 잊었는지 거래장부 제출을 요구하는 야당의원들의 공세를 무마시키기 바쁜 모습이었습니다. "(정환상씨) 자료 내놓을 필요 없어요. 못 내놓겠다고 해도 돼요." 그리고는 끝이었습니다. 국민적 의혹을 들끓이며 권력층에 대한 반목은 물론 빈부간의 씻을 수 없는 갈등까지도 고조시켰던 고급옷 로비사건 국정조사 3일째를 맞는 이날도 관련자들에 대한 면죄부에 의미 없는 페이지 수만을 늘려가고 있었습니다. 의원들의 행보는 물론 라스포사에만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앙드레김과 페레가모 의상실도 들렀습니다. 앙드레김에서의 질문을 통해 이번 국정조사는 그 희극적 성공 가능성을 입증받았습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은데, 이건 기지가 뭐요?" "레이온과 폴리로 섞여 짜여진 트위드라는 겁니다." '국정조사라니' 잔뜩 긴장했던 앙드레김씨도 수준 이하의 질문에 오히려 딱하다는 반응이었죠. '도대체 옷감의 소재와 옷로비 의혹사건의 실체 규명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본디 거짓말을 못한다는 앙드레김은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앙드레김씨가 현실과 정치 사이의 고난도 3각함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물건을 사지도 않을 병아리 바이어들로 넘치면서 의상실은 조사장이라기 보다는 사진촬영이 이뤄지는 스튜디오를 방불케했습니다. 장내는 방송사와 신문사의 카메라 기자들의 촬영 경쟁과 뜨거운 조명만이 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옷로비 의혹사건 국정조사는 중반으로 치닫을 수록 국정조사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정은 이제 관련자들에 대한 청문회와 TV 생중계를 남겨두고 있는 상탭니다. 별 재미없는 의원들의 '사진찍기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입니다. 신성한 국정조사를 '사진찍기 대회'라고 폄하하는데 대해서는 의원들도 할말이 있다는 얼굴입니다. '검찰과 경찰이 자료제출은 고사하고 자료열람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뤄질 수 있겠냐'는 것이죠. 야당의 저격수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도 검경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목청껏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경찰은 '모르쇠', 검찰은 '불가'가 전부다!" 검경의 비협조에 속수무책인 국회 실제로 자료열람이나 관련 직원의 출석을 거부하는 검경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건에 대해 내사자료나 조사자료를 공개했을 경우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립니다. 검경의 수사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의 한 켠에서는 국정조사가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자업자득의 '수모'인 만큼 협조할 것은 해야하지 않겠냐는 독백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서울지법의 한 중견판사는 '진행중인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검경의 변명이 '일흥(어찌보면) 성립할 수도 있는 논리'지만 '너무 앞세울 경우 국정조사를 방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더군요. 내사자료나 수사문건을 공개하지 못할 다른 이유가 있으면서 "너무 법원을 팔지 말라"는 말도 함께요. 공개가 요구되는 문건들과 진행중인 재판의 관련성 여부가 불투명하고 그 경계선도 모호한데 무차별적으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이유로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법조일각에는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검경의 행위를 부당한 처분으로 간주해 헌법소원을 내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제언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보다 과격한 목소리도 있습니다. 재판에 일부 영향을 미치더라도 의혹이 있다면 명명백백하게 해소하는 것이 결국은 올바른 재판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거죠. 다시 말하면 제한적인 수사를 거쳐 잘못 작성된 검찰의 기소내용이 그대로 법원의 판결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논리는 잘못된 기소내용으로 이뤄지는 재판에 건전한 영향이 미쳐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문제는 옷로비 사건에 대한 검찰조사를 살펴봤을 때 수사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많다는데 있습니다. 고급옷 로비사건은 지난 5월 25일 청와대 사직동팀의 내사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여론의 높은 파도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의혹은 사직동팀의 수사가 축소로 일관됐다는 내용이 보도 되면서 국민간의 큰 불신으로 이어졌고 결국은 정권적 부담으로 자라났습니다. 결국 권력의 중심과 검찰은 어떤 식으로 든 고급옷 로비사건을 수사라는 형식을 통해 제도권 내부로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의혹의 주인공이었던 김태정 전 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의 고소장을 접수하는 형식으로 언론의 첫 보도가 있은지 3일만인 5월 28일 검찰의 전격적인 '재수사'가 시작됩니다. 주목할 부분은 연정희씨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당일 즉각적으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점인데요. 연정희씨의 고소장이 접수되자 박순용 검찰총장은 서울지검 임휘윤 검사장에게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이에 임휘윤 서울지검장도 고소사건을 일반 사건의 경우와 달리 형사부가 아닌 특수부에 배당하며 화답합니다. 이와 함께 검찰총장과 서울검찰청장은 한 목소리로 고급옷 로비사건에 대한 수사가 연정희씨의 고소장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고급옷 로비사건 전반에 대한 의혹 해소차원'에서 폭넓게 이뤄질 것이라는 공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김태정씨의 부인, 연정희씨를 빼돌리기 위한 검찰의 사려깊음(?)은 새벽녁 감시 중이던 방송사 카메라를 완벽하게 유인해 내며 그 뛰어난 작전능력(?)을 과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검찰의 수사발표 보다는 고소인을 빼돌린 검찰의 고육지책이 이번 사건 성격을 극명하게 브리핑한 셈이 됐습니다. 예상된 결론 낯설지 않은 실망 결론적으로 검찰수사는 철저히 고소장을 쫓아가는 수준에서 이뤄졌고 의혹 전반을 해소시켜 주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정치판은 물론이지만 특히 검찰에서 선언적인 수식과 실제 수사결과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모두들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젠 실망도 새롭지 않게 여겨집니다. 비근한 예를 하나만 들어볼까요. 고급옷 로비의혹이 제기되자 크고 작은 관련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습니다. "신동아 이형자 씨의 로비대상이 더 있다", "정치인과 고위관료 10여명의 부인들도 고급옷을 받았다", "연정희 씨에게 건네진 밍크코트는 여러 벌로 수 천만 원 어치다"는 등이 그 일붑니다. 옷을 받았다는 고위공직자들의 명단이 돌았습니다. 그러자 청와대 박주선 법무비서관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일축했습니다. "의혹이 사실인가?" "아니다. 철저한 내사가 이뤄졌으며 옷가게 라스포사의 전표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럼 내사가 어떤 형식으로 종결됐나?"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확인돼 오래 2월초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종결했다." 그러나 막상 수사를 착수한 서울지검 수사팀이 받아본 사직동팀의 내사자료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한 수사관계자는 '사직동팀이 언론에 밝힌 대로 라스포사에 대한 압수수색 조차하지 않았다'고 털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할 경우, 청와대의 거짓말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될 것이고, 안한다면 축소수사 의혹을 받을 것이라며 곤혹스러워 하기도 했습니다. "이기자 재미있는게 있어." "뭔데요?" "통상 압수수색을 하면 사후 영장이라도 받아서 내사자료에 첨부하는 게 원칙이거든?" "그런데요?" "그런데 사정팀이 넘겨온 서류를 보면 눈을 씻고 봐도 영장을 친 흔적이 없어." "그것만 일부러 안보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아니야, 우리가 모든 서류를 보내달라고 했거든. 압수조차 하지 않은 거야. 이 사람들..." 이 수사관계자의 근심 어린 얼굴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한 점 스쳐지나 갔습니다. 검찰 수사가 의혹을 제도화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는 것은 어떠한 폭발력을 가진 사회적 사건도 일단 수사과정을 거치면 단지 재판을 전제로 하는 사법적 문제로 황원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재판이 가진 사회적 기능 중 하나죠. 기소단계에서 검사의 논고문에 한두 줄 들어가겠지만 국민적 감정이라든가 범죄의 악질성, 그리고 추가 범죄의 가능성 등은 사법처리 과정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로 치부됩니다. '옷값을 받기로 약속한 것이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인지, '남편을 통해 알게된 수사상의 기밀을 친구에게 말해준 것이 죄가 되는지'가 수사상의 주관심사인 것입니다. 국민들의 알권리도 수사맥락을 쫓아가면서 적절히 교육되고 의혹도 어느 정도 순치됩니다. 예정보다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수사가 일주일째로 접어들자 여론도 수사논리에 서서히 흥미를 잃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사이를 놓칠 새라 검찰은 광범위한 수사확대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압수수색' 마저 포기하고 서둘러 수사발표에 들어갑니다. 결국 반도를 의혹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사건은 '실체 없는 한 여인의 사기극'으로 정리되고 맙니다. 사건을 취재한 MBC 역시 이 과정에서 '청와대 사정팀이 옷가게에 대한 압수수색도 없이 내사를 축소했었고, 따라서 그에 따른 검찰수사의 신뢰수준도 미지수'라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이미 수사는 종을 친 상태였습니다. 국민 관심 저버린 조직 보신주의 이처럼 내사자료 공개를 거부하는 검경의 속사정은 단순히 재판에 영향을 미치거나 수사권의 보호 차원의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조직보호를 위한 비밀주의는 비단 수사기관의 일만은 아닙니다. 사족을 덧붙힘니다. 법조 세 바퀴를 구성하고 있는 법원에서도 웃지 못할 비밀주의가 벌어지고 있는데요. 서울 남부지청와 MBC 사이에 진행중인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판검사의 사건소개 여부 등을 밝히는 것이 소송 승패의 관건입니다. 판검사가 돈을 받고 자신과 연관된 사건을 소개해줬다는 < MBC 뉴스데스크 >의 보도로 인해 검사 22명이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법적으로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검사들을 불러 조사한 대검찰청 감찰부는 '조사자료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는 답변뿐입니다. 지난 1월 대전법조 비리사건 당시 검찰은 고급옷 로비사건에 대한 수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검사들에 대한 철저한 내부감찰과 수사를 통해 검찰이 거듭날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매일 5-6명의 검사들을 대검 감찰부로 불러 조사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자료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실제 조사는 했는지 의문마저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재판부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지난 4차 기일에서 재판부는 '대검이 조사기록을 보존할 의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며 대검을 간접적으로 비호하고 나선 것입니다. 국민적 여론을 역행하고 판사들에 대한 조사는 검찰이 아닌 대법원에 맡겼던 당시 검찰 수뇌부의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씁쓸합니다. 검찰이 판사들의 사건소개에 대한 보도 내용까지 문제 삼자 MBC측 변호인은 대법원의 조사자료도 법정증거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사조사 기록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진실을 밝히기가 우리나라만큼 어려운 나라가 있을까 힘든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검경과 법원은 물론 대부분의 권력집단이 저마다의 조직내부의 일이라며 중요한 정보를 대외적으론 비밀에 부치는 것이 그 이유 중에 하납니다. 조직의 영속성을 위해 일견 타당한 것으로도 보여지지만, 그 조직이 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는 행정부처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조직 보신을 위한 비밀주의는 여러 이유를 동원해 그 논리적 완결성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행정부를 조사대상으로 하는 국정조사의 권위 마저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정보의 투명성을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외부에 검증 받기를 두려워하는 자료라면 과연 백날을 쥐고 있은들 결코 조직에 약이 될리는 없습니다. 퇴출은행에서 그리고 무너진 기업에서, 담당직원의 주장을 꺽고 수뇌부가 함부로 결정한 대출이, 실력을 무시하고 돈으로 옮겨 심은 인사가 문제가 됐습니다. 외부로 공개할 수 없는 회사의 속사정이 시기를 놓쳐 끝내 회사를 무너뜨린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검경의 손안에 든 극약을 빼앗지 못하는 국회는 자신의 권능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중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철저한 국정조사로 오히려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쳐달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는 듣고 있는지, 국민적 의혹과 관심은 길가에 버려진 '기대'처럼 깊은 '시름'으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어느새 하나둘 국회 역시 말 못하는 비밀을 가진 게 아니냐고 일어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