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곳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무더위에 지쳐 며칠을 그대로 멍하니 놓쳐 버렸고, 또 지난 주말엔 2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동해안으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재작년엔 연예계 '노예계약' 보도로 인한 무더기 소송을 대응하느라 또 지난해에는 'PR비 고발' 이후 파문을 지켜보느라 한시도 회사를 떠날 수 없었거든요. 물론 요즘 빈발하는 초대형 이슈들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요.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지만 생각들을 글로 옮겨놓기 보다는 한잔 술잔에 털어 손쉽게 소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법 보다는 주먹이 쉬운가 봅니다. 지금 이곳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프레스센터입니다. 오늘 밤 방송될 미디어비평 꼭지를 편집하다가 잠시 '꾀'가 발동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역시 사람은 정신없이 바빠져야 드디어 자신에게 겸손해지는가 봅니다.   <그래도 꼭 해야할 짧은 이야기 하나> 과소비추방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박찬성 목사에 관한 얘깁니다. 저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8.15 국민대회에서 '인공기 화형식'을 집행했던 주인공이 박찬성 목사라는 사실을 알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박 목사는 지금껏 3.1절 국민대회와 6.25 국민대회, 7.10 집회 등에서 인공기 소각을 전담해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술더떠 그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간중 인공기 게양을 막기위해 모종의 '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인공기 소각의 주체가 박 목사였다면 저는 단연코 말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보수진영의 뜻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이번 인공기 소각은 그야말로 넌센스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왜냐구요? 지금부터 그얘기를 간단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박찬성 목사의 이력을 구구절절히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강만 살피자면 무슨 기독교 어떤 단체의 회장, 실행위원 그리고 최근에는 자유시민연대의 집행위원 등 거의 모든 보수단체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분입니다. 제가 박 목사를 만난건 7-8년전 과소비 추방운동 현장에서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IMF 전후였습니다. 그가 발명한 '운동'은 속된 말로 약발이 통했습니다. 연일 방송, 신문에서 그의 인터뷰를 실었고 그는 일약 시민운동 시장의 기린아가 됩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약발이 내성이 붙자, 그는 기민하게 새로운 운동 상품을 내놓았습니다. 몇단계의 진화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정치 과소비 추방'이라는 절묘한 운동을 창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를 '운동 발명가'라고 명명하는 이유는 정작 따로 있습니다. 운동이라는 것은 처음 발생이 그러하듯 진화과정에도 타당한 논리와 당위가 수반해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운동론은 철저히 대중 영합적이며 언론의 구미에 부합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는게 문제입니다. 과소비라는 주제어가 상품 과소비 -> 양담배 과소비 -> 일본제품 과소비 -> 정치 과소비 추방운동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웬만한 안목으로는 따라잡기 어려운 그만의 철학이 배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철학적 경향은 '운동상업주의'에 입각해 있을 뿐이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왜냐구요?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물론 있지요. 그는 몇해전 양담배 과소비 추방대회장에서 집회에 동원된 노인들에게 수당, 5000씩을 나눠주다가 MBC 박성호 기자에게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의 집회에는 몇몇 어색한 노인들이 밥때를 기다리며 초초하게 서성이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얼마를 나눠주고 있는지 저로서는 궁금할 따름입니다. 만일 아직도 얼마간의 용돈이 필요해 대중집회에 출석해야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보수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다면, 정부는 보수주의자들을 위한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서 그들의 생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할 것입니다. 박 목사가 MBC와 두번째 악연을 맺게된 것은 박성호 기자를 친애하는 저의 '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성호 기자의 보도를 눈여겨 봐두었던 저로서는 당시 보도 이후 박 목사의 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쯤 일겁니다. 당시 2580 취재 과정에서 제가 조사한 내용을 따로 정리해, 이 홈페이지 <고발자료실> 내 '한국 NGO의 재정문제'라는 작은 보고서 안에 자세히 기록해두었습니다. 여하튼 그는 당시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시민단체 이름을 이용해 지자체 특혜를 받고, 이를 모종의 수익사업과 연결시키고 있었으며, 각종 외부 지원금을 불투명한 방법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주요 시민단체들과 연대하고 있다고 속이고 사적인 사안에 개입,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보수집단의 과격성을 주도하는 행동대장이라니 과연 이땅의 보수가 지닌 인적자산의 한계를 절감하며 적지 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부디 보수가 보수답게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박 목사 외에 좀더 나은 행동대장이 어서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아니. 꼭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도 꼭 해야할 짧은 이야기 둘> 그렇다면 이철승씨는 어떤 분일까요. 이철승씨는 앞서 살핀 박 목사님과는 좀 더 다른 수준의 인물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이미 자신의 자취를 남긴 사람이지요. 썩 훌륭한 이름을 남겼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죽으면 어차피 썩어질 자신의 이름을 살아 생전에 역사책에 올리기가 절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나간 그의 정치행로를 점검해보자는 '재미없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 더러, 그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지난 '카메라출동'과 '2580 시절' 길거리 취재를 통해 그와 접하게된 허접한 사건만을 기억할 뿐입니다. 사실 이철승씨는 제게 집념의 한국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루이틀 식을 줄 모르는 의지와 노력. 그의 기다림과 뚝심 그리고 무대뽀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보수의 큰 손 다웠습니다. 지난 98년 10월쯤이었지요.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국은 어느때 보다 혼미했습니다. 무차별적인 사상점검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를 기억하시죠. 당시 저는 이 자유총연맹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번 당시 취재내용을 소상히 정리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여하튼 자유총연맹은 당시만해도 성역중에 성역이었죠. 겁없이 자유총연맹을 고발하겠다며 취재 현장에 뛰어들고 이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 집단인줄 깨닫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몇일 동안 잠복취재를 벌인 끝에, 저는 자유총연맹이 정부로 부터 수십억원의 돈을 지원받으면서도 제대로 감사 조차 받지 않은 사실과 불법적으로 주차장 영업을 하면서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 국민세금으로 구입한 연맹사무실을 담배 창고, 그것도 양담배 창고로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 그밖에 전국의 자유총연맹 조직을 영업조직으로 전환시켜 회원들을 이용, 막대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습니다. 기사작성을 마치고 모든 방송준비가 이뤄졌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이었지요. 이철승씨가 매일 보도국으로 출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도국장실과 간부들 자리를 전전하며 떼쓰듯, 농성하듯, 때론 군림하듯 그렇게 그는 문제의 기사가 방송되지 못하도록 온갖 압박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저의 기사는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습니다. 사표를 쓸까 생각도 해봤지만 노조를 통해 간부들을 압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한달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쥐도새도 모르게 기사가 방송됐습니다. 이철승씨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이용해 당시 보도국 간부가 테잎 처리를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그 간부는 얼마전 까지 iMBC 사장으로 일하다 옷을 벗고 목회자의 길을 시작한 조정민 선배였습니다. 머지않아 목사가 되실 분이지만 그 이후라도 저는 그를 천상 기자로 밖에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방송이 나가자 앞서 말씀드린대로 보수의 막강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제게 생겼습니다. 자유총연맹의 기관지라는 '자유신문' 기자 둘이 저의 뒤를 캐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제 뒤라고 할게 뭐가 있었겠습니까. 냄새는 좀 나겠지만 거기에 뭐가 있겠습니까. 요즘처럼 비데는 없었지만요. 여하튼 그들은 그림자 처럼 한동안 제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의 추궁은 끊임없이 계속됐습니다. "기사 취재를 사주한 세력이 어디냐"는 것이지요. 미치겠더군요. 속을 까서 보여줄 수도 없고. 제 유일한 배후는 어디까지나 기자로서의 제 양심 하나 였는데 말이죠. 며칠이 지났을까. 한 지인으로 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전국 25만 자유총연맹 회원들이 '사이비기자 타도 궐기대회'를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비기자란 저를 말하는 것이였지요. 전국 지부에 공문이 하달되고 또 지부별로 회의가 열렸다고 하더군요. 아직 초년 기자시절이라 사실 좀 떨리고 그랬습니다.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이라고 해서 그런 일이 겁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으슥한 밤길을 지날 때면 주머니 속에 묵직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뒤통수에 닥쳐올 불의의 일격에 준비해야하는 특유의 밤거리 보행법을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라는 정도만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후 일을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이유는 고발기자로서 제가 대비해야 했던 위협의 대상이 단지 그들 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허걱.. 벌써 새벽 두시가 넘었군요. 이제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야할 것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던져준 앞으로의 과제이기도하구요. 하지만 보수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할 말이 많습니다. 바람직한 진보의 방향성과 내용성을 이야기 하기 전에 우리는 청산해야 마땅할 사이비 보수와 싸워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소 장난스러웠던 저의 과거 회상 방식이 맘에 들지 않으셨던 분이 혹 계실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아마도 그것은 오늘 이땅의 보수에 대해 아직은 진지하게 검토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이해와 관용이 불행하게도 제게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젠가 그들을 품을 수 있도록 시간나는대로 노력해보겠습니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요. 다만 이왕이면 그들도 저와 비슷한 노력을 해주기를 감히 바래봅니다. 바람직한 진보와 보수는 자유로운 이념의 하늘을 날아야할 양 날개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