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처음입니다. 숱한 민형사 (고)소장과 언론중재기일 출석통지서를 받아보았지만 가처분 심문기일 통지서를 받은 것은 이번이 정말 처음입니다. 재판부에 제출할 각종 서류와 오늘 오후에 있을 방송대본을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는 와중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번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어야할 것 같아 서둘러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미디어비평>은 오늘 최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불방 사태를 취재 보도할 예정이었습니다. '그것이...'측은 지난주 한 유명한 사회복지재단의 운영상의 문제점을 포함한 개인비위 의혹까지를 취재, 보도하기로 예고돼 있었죠. 그런데 피고발인측에서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입니다. 법정대리인은 저 유명한 검사 출신 변호사 강지원씨구요. 가처분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청인측의 주장을 법원이 거의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원의 결정문에 따르면, sbs측은 뭐가 어떻게 신청인측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사실도 모른채 방송을 통째로 낼 수가 없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동안 취재과정에서 촬영한 수십개의 촬영테잎 원본까지 법원에 빼앗기게 된 상탭니다. <미디어비평>이 가만있을 수가 없겠죠? 바로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번 사건을 담당한 남부지원 재판부의 결정문을 보고 저는 자빠질 뻔했습니다. 명색이 법조출입 기자출신이라고 판결문이나 결정문을 볼줄 안다고 생각했던 저는 저의 상식을 초월하는 결정문을 보고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불과 10줄 남짓한 결정문 내용은 무척 성의없어 보였고, 그저 '방송제작진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얘기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것이...'측의 제출한 두터운 대본중 단 1분도 소명이 제대로 된 부분이 없었다는 얘기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방송테잎 전체를 법원 집행관에게 제출하라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사실 방송테잎은 신문기자로 따지면 취재수첩이나 노트북에 해당하는 원천적인 취재자료입니다. 언론인의 양심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그걸 법원이 달라고 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이...'가 다루려고 했던 비위의혹에 대해서는 다시는 취재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문제가 적잖이 심각해보였습니다. 저희는 이번 사안을 다각도로 접근하기 위해 상상이 가능한 모든 취재원측과 접촉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이 취재한 현장에 가보는 것이겠지요. 문제는 그때 생겼습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소위 방송 제보자들을 만나 불방에 따른 불만을 인터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지재단측에서 이 사실을 안 겁니다. sbs를 못하게 하니까 이젠 mbc가 붙었다고 판단한 거죠. mbc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인이된 강지원 변호사와 전화 통화가 이뤄진 것도 이즈음의 일입니다. mbc 시청자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강변호사는 복지재단 이사장이 한점 의혹도 없는 언론의 억울한 피해자라고 믿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의 변론은 정말 적극적이었고, 일견 감동적이었습니다. 회사간부들은 물론이고 제게도 변호취지를 수차례에 걸쳐 자세하고 친절히 설명했으며 여기에는 장난스런 협박까지도 간간히 섞혀있었습니다. 순수하게만 본다면 그는 최고의 변호사였습니다. 오죽하면 이사장과 강변호사와의 관계를 의심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찌되었든, 저는 강변호사에게 <미디어비평>의 취재의도를 설명하고 오히려 방송이 제대로 나갈 수 있도록 재단측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10년이 다되도록 현장고발 기자를 자처해온 제가 아직도 순진한 탓이었을까요? '우리의' 강변호사는 다음날 mbc <미디어비평>에까지도 그 무시무시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저는 가처분 신청에 따른 각종 서류를 준비하며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처분의 맛은 이제까지 제가 맛보지 못한 좀 씁쓸텁텁한 맛이더군요. 방송 하루전날 심문기일이 전화로 통보되고 밤새 심문준비를 해야하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잠시뒤면 심문이 시작됩니다. 혹시 심문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해 <미디어비평>의 김현주 부장이 법정에 출두하셨고 대신 저는 방송을 준비하며 초조하게 심문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확실한 것은 저와 <미디어비평>은 언론사에 중요한 사례로 남을 '가처분 사건의 보도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라는 '이중 가처분' 케이스를 겪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국민의 알권리를 담보하기 위한 언론자유 수호라는 측면에서 언론사에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을 확신합니다. 가처분과 언론자유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뜻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잠시뒤 어떤 결과가 '우리들의' 법원으로부터 나올지라도 저와 <미디어비평>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물러섬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결과는 여러분께서 판단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