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지켜보던 박형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든다. "도대체 기자질을 왜 하는거야!" 사실 힘들다기 보다는 지저분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른다. 검찰 쓰레기통을 뒤져 12.12, 5.18 사건 특종을 낚은 최기화 선배를 생각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의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사람을 이용해야 한다는 기본 설정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기자라는 이름으로 겪어야 하는 지저분한 일의 특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뉴욕에 도착한 것은 토요일 낮 12시. 빈자리 하나 없이 꽉찬 비행기 한복판 가운데 자리에서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새장 안의 새처럼 도시락만 목으로 넘기다 보니 급기야 탈이 났나보다. 급체인지 알았더니 이내 오한이 느껴진다. 어지럽고 목이 붓기 시작한다.   공항 밖에는 마침 현지 제작팀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사람 좋게 생긴 모습이 적지 않이 위로가 되었지만 뉴욕의 나는 이미 서울에서의 내가 아니었다. 차에 오르니 느끼지 못했던 몸살 기운까지 밀려왔다. 비관적이었다. 필시 나는 벌을 받은 것이리라... 당초 내가 뉴욕에 오게 된 것은 하루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금요일 오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침대에 누워 귀국한 개그맨 서세원씨가 귀국 직전까지도 뉴욕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며 제보자는 전화기 저편에서 분노하고 있었다. 간단한 기초 확인취재를 해보니 신뢰수준이 어느정도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즉각 기안서를 작성했고 10분만에 부장, 국장의 결재를 받았다.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서둘러 예약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이 개운치 않았다. 아니 좀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많이 걸렸다. 왜일까. 따지고 보면 지난 7월, 서세원씨가 미국으로 도피하게 된 것은 그 보다 6개월 전에 있었던 나의 'PR비 고발기사' 때문이었으리라. 물론 나의 기사 안에서 서세원씨를 직접 겨냥하거나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세원씨 사건은 광의의 'PR비 수사'의 사정거리 내부에서 인화된 것임은 분명했다. 이제 그런 서세원씨가 국민을 속이려했든 아니면 정말 허리가 몹시 아팟든 간에 그의 이른바 '침대귀국'과 관련한 서세원씨의 뉴욕 행적까지 낱낱히 고발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문득 뭔가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진다. 내가 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뉴욕에 오면서 얻은 병은 뉴욕을 떠날때까지 점점 심해졌다. 플러싱의 약사는 급체라고 했고, 브로드웨이의 약사는 '스토믹 바이러스'라고 했으며, 중앙병원의 의사는 세균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럴수록 이것이 남을 괴롭혀서 얻은 벌일지도 모른다는 비관 역시 강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특정인을 괴롭힐 수도 있는 '사실관계'를 확보하기 위해 뉴욕의 뒷골목을 이리저리 뒤져야했다. 서세원씨가 목격됐다는 제보가 접수된 곳이면 어디든 갔다. 은밀하게 잠입한 한 술집에서는 아예 담요를 둘러쓰고 각종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술을 마셔야만했다. 주인은 술을 따라주는 대신 정성들여 끓인 대추차에 진한 꿀을 타주었다. 고마운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주인에게 그가 말하기를 원치 않을 서세원씨의 행적에 대한한 질문을 던져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오던 재즈와 마천루의 도시 뉴욕. 뉴욕은 나의 인식이 자라남과 함께 점차 애증으로 뒤범벅 되어갔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이라는 상징이 주는 꿈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이곳의 풍경은 내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다.  퀸즈에서 멀리 보이는 맨하튼의 빌딩도 메츠 구장도 그저 그곳에 있었을 뿐 나는 지쳐있었다. 그것들에게로 단 한발짝도 접근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생애 첫 뉴욕의 밤은 시들어가고 있었다. 평소같으면 가볍게 넘겼을 말이었다. 뉴욕에서 만난 박형이 "니가 기자질을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을때 나는 처음으로 "나도 모르겠다"고 말해야했다. 술집 주인에게서 얻은 애드빌 두개와 맨하튼 브로드웨이 약국에서 구입한 목 분사용 스프레이와 사탕, 플러싱에서 구입한 급체약, 중앙병원을 통해 구입한 항생제를 한꺼번에 털어 넣어서 그랬을까. 약기운이 깰까지, 세상의 혼탁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내안의 번잡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박형의 질문에 당분간 대답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술집을 나와 먼동이 터오르는 맨하튼을 바라본다. 뉴욕 맨하튼에는 두개의 빌딩숲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지어올린 빌딩숲이고 다른 하나는 빌딩숲 사이사이에 원래부터 있던 공기의 숲이다. 나는 묻는다. 지금 나는 어느 빌딩을 보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