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7년 전이었죠. 지난 96년 신출내기 기자시절, 저는 전두환씨의 12.12 , 5 .18 사건 공판에 비둘기조로 투입됐었습니다. 그때는 재판장이 불러주는 한마디 한마디를 적어 서초동 현장의 중계차에 있는 선배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임무였습니다. 그나마 저는 좋은 보직을 받은 셈입니다. 밤새 방청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야만 했던 동기들도 있었거든요. 여하튼, 재판정과 중계차를 오가느라 재판 기억은 단속적으로 남아있지만 당시 재판정을 무겁게 짓눌렀던 침묵과 살아있는 독재의 심장부를 심판한다는 감격은 아직도 온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전두환씨가 7년만에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의 집에서 부터 경호원들과 몸싸움을 하며 따라간 그의 법정에서 기자는 아직도 단죄되지 않고 서슬퍼런 독재의 그림자를 또다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반성할줄 모르는 늙은 독재자의 뻔뻔스러움에서 독재의 사슬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네 민초들의 깊은 시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전 민주노동당에서 "전두환씨의 미납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펼치겠다"는 성명을 냈다는군요. 비운의 역사를 보내고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여는 것은 다름아닌 당신의 손이 어야만 합니다. 비록 일상으로 부터 얼어 터진 떨리는 손일 지라도...   다음은 오늘 재판정에서 재판장과 전두환씨 등이 나눈 설전을 정리한 것입니다. 오늘의 역사를 온전히 느껴보시죠. 판단은 당신의 것입니다. (신우진 판사; 전두환씨와 이양우 변호사, 전두환씨의 측근 1명과 검찰측 대표 1인 등 4명을 진술대 앞으로 불러냄.) 신우진: 채무자 본인 맞습니까? 전두환: 네, 맞습니다. (이때 전두환씨 측근중 한명이 전두환씨의 여권을 신분확인용으로 재판부 서기에게 제출함) (신우진 판사는 이 사이 조금전 제출된 백페이지 분량의 재산목록을 넘기며 검토하기 시작함. 앞의 50페이지 정도는 시계, 사무용품 등의 사진이 한장씩 부착되어 있었음) 신우진: 여기보니 시계, 보석, 골동품, 악기 등이 신고되어 있군요... 음... 사무기구도 있고 기계류도 제출되었군요. 부동산은 이게 별채지요? 전두환: 그렇습니다. 신우진: 어음, 채권은 이게 다입니까? 어음 14만원, 채권 15만원, 그밖에 천원... 그러면 30만원이 예금, 채권 다네요? 전두환: 네.. 신우진: 사실대로 작성한 겁니까? 전두환: 네.. 신우진: 조금이라도 허위나 누락한게 없나요. 만일 있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읍니다. 전두환: 네.. 신우진: 현금은 없는걸로 되있는데.. 50만원 이상의 현금은 그 총액과 보유장소를 신고하게 되있는데, 정말 없다는 겁니까? 전두환: 본인의 것은 없습니다. 신우진: 채권자는 채무자의 신고내용이 불명확하거나 의심나는 점이 없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검찰측 대표: 네.. 이양우: (검찰측 대표에게) 재산목록은 이미 검찰에 낸 것과 똑같습니다. 검찰측 대표: 짧은 시간에 검토하자니 시간이 아쉽네요.. (약 2분간 서류를 넘겨보다) 후에 좀더 보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우진: 목록자체에 채무자 명의가 아니라도 명의신탁한 재산은 목록에 기재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명의신탁한 재산이 정말 없습니까? 전두환: 없습니다. 신우진: 그럼, 채권자측도 지적했지만 현재 채무자는 무슨 돈으로 골프나 외유를 다녔습니까? 전두환: 전직 대통령에게는 골프협회에서 그린피를 무료로 해주고 있습니다. 내 나이가 이제 72살인데 그동안 인연있는 사람과 생활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측근과 사업을 하는 자식놈이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양우: (전두환씨의 답변을 제지하며) 재산목록과 관련해서 무리가 있다면 소명을 하면되는 것이고 채무변제 등 주변사실에 신문을 하는 것은 재산명시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신우진: 불명확한 것이 있어서.. 이양우: 그건 채권자에게 확인하시면... 신우진: 안그래도 보전명령을 할 것입니다. 이양우: 그러면 확인은 보전명령을 하신 후에 하시는 것이... 신우진: 측근이나 자녀들에게 (생활의 도움을) 받는다면 그들은 추징금 낼 돈은 안줍니까? 전두환: 그들도 생활을 해야지요. 신우진: 재산목록을 밝힌 것은 집행을 협조하겠다는 뜻아닙니까? 전두환: 그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신우진: 여태까지는 돈이 없어서 못낸 것 아닙니까? 이양우: (전두환씨가) 그렇게 말한적 없습니다. 3년전 시효만기때 현재 공매신청된 별채만 협조하겠다고 했지요. 신우진: 그렇다면 지금까지 무슨 이유로 돈을 안낸 것입니까? 전두환: 정치자금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정치자금을 인정하지 않아서 억울하게 당한 것입니다. 정치자금을 포괄적 뇌물죄로 적용하는 바람에 그렇게.. 신우진: 추징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야합니다. 일반인들은 돈이 없으면 직접 벌거나 빌려서라도 내는게 추징금입니다. 이양우: (역정을 내며) 변호사의 말을 좀 들어주세요. 채무자는 진솔하게 재산목록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미흡하다고 보는 근거가 뭡니까? 이번 재판은 재산목록을 심리하는 자리지 채무변제와 연관된 주변사실에 대해 묻는 자리가 아닙니다. 신우진: 네. 보전명령을 내릴 겁니다. 지난 96년 당시 검찰의 추정에 따르면 채무인은 2157억 가량을 보유했습니다. 이중 수백억원의 정치자금, 수십억원의 측근양도금, 수십억원의 헌금 등을 모두 빼고도 1600억원 가까이 보유한 것으로 되있는데 그럼 나머지 돈은 다 썼습니까? 전두환: 검찰에 확인해 보세요. 다 썼습니다. 이양우: 도대체 소송 기록은 다 검토하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자금 전체 기록을 보고 말씀을 하세요. 신우진: 보정명령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명의신탁 부분 말인데요, 법원은 그렇게 (사실대로 신고됐다고)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유가증권이나 부동산 중에서 제3자에게 명의신탁한 여부에 대해 알아 볼수 있도록 본인은 물론 배우자의 친인척의 재산 취득 원인에 대한 소명자료를 첨부해서 다음달 26일 제출해주세요. (주: 신우진 판사는 채무자 전두환씨가 재산신고를 불성실하게 할 것으로 예상했는지 준비된 서류를 읽으며 말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채무자는 재산은닉을 했을 개연성이 큽니다. 채무자는 이미 검찰조사 결과 가차명계좌를 통한 재산 은닉사실이 적발된 적이 있습니다. 확정이후 아직 15%도 집행되지 않았지요. (보정된 서류가 넘어오면) 은닉여부를 나중에는 법원이 판단하겠습니다. 이양우: 가족들의 재산을 어떻게 채무자가 신고합니까? 그런건 법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신우진: 법적 근거가 있습니다. 보정과 참고자료를 명의신탁 자료로 제출토록 하게 할수 있습니다. 참고자료로 제출하도록 한다는 겁니다. 이양우: 타인의 것을 어떻게 제출하라고 하십니까. 신우진: (혼잣말로) 가족이 타인이라구요? (소리높혀) 이상의 내용을 제출하지 않을 시 감치에 처해질 수 있음을 경고해둡니다. 앞으로 한달 즉, 다음달 26일 11시 30분까지 기한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