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당국자들은 한미 SOFA(주둔군지위에 관한협정)가 지난해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 수준으로 개정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 당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을 넘어서, 설사 일본, 독일수준으로 개정하더라도 문제의 해결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 배경이 다르다 = 일본과 독일은 미국 입장에서 볼 때 2차 대전 전범국이다.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는 SOFA에 해당하는 독일의 보충협정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SOFA에 비해 피의자 신병인도 등 몇 가지 사항에서 미흡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정부 관계자는 "SOFA에선 전범국 여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사회적인 배경이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 등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또 한국은 이번에 문제가 일어난 의정부 뿐아니라 수도 서울 한 복판과 매향리등에 미군기지가 흩어져 있다보니 미군 범죄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지만 일본은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고 주요 범죄도 주로 이곳에서 일어난다. ◇ 일본 수준에 턱없이 못미쳐 = 형사재판보다는 환경 문제에서 주로 민원이 발생한 독일은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만큼 논의에서 제외하더라도, 한미 SOFA는 미일 SOFA와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미일 SOFA 적용 대상자는 '(미국) 군법에 따르는 자'로 규정돼 있지만 한미 SOFA에서는 미군이나 군속의 직계가족이 아닌 '기타 친척'과 초청계약자, 즉 영리 목적의 미국인까지 특혜를 받게 돼있다. 사실 군속과 가족을 평화시에 군법회의에서 재판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60년 미국 대법원 판결 등을 감안할 때 이들을 한국이 재판하지 않더라도 미군이 직접 재판에 회부할 방법조차 없다. 재판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공무상 범죄 여부 판단도 한미 SOFA에서는 미군 장성이 발행하는 공무증명서만 있으면 1차적 재판권이 미군으로 넘어가도록 돼있지만일본에서는 이를 일본 법원이 최종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미일SOFA에 일본 법원의 판단에 관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일본에 이에 대해 문의했을 때 일본측에서 이런 조항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를 정도로 사문화되어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국은 지난해 개정으로 비로소 살인.강간 등 12개 중대 범죄에 한해서 기소시 신병을 넘겨받을 수 있게 됐고 나머지는 최종 판결 후에야 가능하지만 일본은 그전부터 기소시 신병 인도 기준을 적용해왔고 지난 95년에는 살인.강간 등 중대 범죄는 기소 전에도 신병 인도가 가능하도록 바꿨다. 그 밖에도 한미 SOFA상 미국 정부 대표가 입회하지 않았을 때 행해진 진술의 증거능력을 부인한 것이나 '합중국 군대의 위신과 합당하는 조건이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을 권리', 검찰의 상소권을 제한한 조항 등도 다른 나라에는 유례가 없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SOFA를 미일SOFA와 비교할 때 문구와 표현에서 차이가 있긴하지만 실제적인 차이는 없다"며 "이런 차이가 실제로 우리 국민의 권익을 제한한다면 개선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여중생 사망 사건이 일본에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SOFA가 잘못됐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 일본.독일에서도 문제 심각 = 일본에서는 이 문제가 미군 기지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 지역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도 없지는 않지만 주요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여론이 들끓었다. 지난 2000년 7월 오키나와 주둔 미군 병사가 여중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불거지자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불과 19일만에 당시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와 단독회담 도중 "최근의 사건은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직접 유감을 표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오키나와에서 미군 중사의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자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일본 외상까지 나서서 SOFA 개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에서도 미군 때문에 수많은 민원이 제기됐는데 환경오염과 기지 주변 소음공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독일은 93년 보충협정 개정시 미군기지 내에도 적용토록했으며 관련 민사소송절차도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독일 국방장관이 80년대에 주독미군이 열화우라늄탄을 사용했다고밝혀 논란이 일어났으며 독일 정부는 당시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 주재 미국대리대사를 불러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9월 총선을 앞두고 법무장관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강력히 비판할 정도로 독일의 반미감정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물론슈뢰더 총리는 재집권에 성공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