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 붙여야 하는 뱀꼬리(蛇足)를 앞에 붙여서 말하기-2003년 2월 문화방송 김중배 사장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 시사저널 서명숙 편집장은 2003년 2월 27일자 시사저널 '편집장의 편지'에서 뒷모습이 아름다운 아름다운 사람으로 김중배를 노래합니다. 서편집장의 글에 가슴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불현 듯 2001년 11월에 써놓았다가 사정상 발표하지 못했던 김중배 선생에 관한 글을 제 홈피에 올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도 훨씬 전에 쓴 글이니 지금의 상황에 맞게 손을 보아서 발표해야 예의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김중배 선생에 대한 제 생각이나 애정이 그대로인 게 신기해서 그대로 글을 올립니다.(이 말은 바꿔 말하면 그동안 김중배 선생의 처신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또 작금의 상황은 서명숙 편집장의 글이 더 적확하고 감동이 있어 그녀의 글 일부를 발췌해서 제 글 앞에 올립니다. (혹시 서명숙 편집장이 저작권 문제로 호통을 치면 꼼짝없이 당해야겠지만 제가 그녀의 열렬한 팬인 것을 알 터이니 모르는척 넘어가 주리라 믿습니다) (서명숙 편집장의 글)..................김중배 문화방송 사장의 사의표명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노무현 정권 사람들도, 방송가 사람들도, 그가 물러나기를 강요하거나 촉구한 흔적은 없었다. 임기도 2년이나 남겨둔 상황이었다. 언론 개혁 차원에서는 그가 남아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아쉬워 하는 이들도 있다. 물리적인 탄압과 가혹한 검열을 일삼던 군사 정권에서 풍성한 비유를 동원한 그의 칼럼은 행간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한 시대를 가파르게 담당했던 언론인답게, 그는 떠날 때를 스스로 정하는 절제미를 보여 주었다. 처음에는 글로, 나중에는 처신으로 후학에게 본을 보인 대선배께 경의를 표한다. 그의 뒷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여기까지가 서편집장의 글입니다) ------------------------------------------------------------ 다 큰 딸아이가 있는데도 팬티바람으로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남편 때문에 민망해 죽겠다는 여자들의 푸념을 심심치않게 접한다. 일부는 그런 말 끝에 '남자란 얼마나 수치심이 없는 동물인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남자는 여자에 비해서 성적인 수치심이 적다는 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외없는 법칙이 없는 것처럼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40대 초반의 한 남자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있는데 청소부 아줌마가 들어와 대걸레로 바닥을 닦다가 그에게 발을 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강아지처럼 한쪽 발을 들고 소변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짜증이 솟구쳤단다. 왜 남자를 수치심도 모르는 '무치(無恥)의 존재'로 취급하는가. 혹시 성적인 측면에서 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수치심의 강도가 약할지는 몰라도 오히려 전반적으로는 남자가 여자보다 수치심에 민감하다는 게 그의 항변이다. 남자들이 잘 쓰는 '쪽팔리다'는 속된 표현을 수치심의 한 증좌로 해석해 보면 그 의미가 더 명확해 진단다. 수치심이란 부끄러움의 또다른 이름이다. 남자가 '부끄럽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는 경우는 흔치않다. '자식 보기가 부끄럽다'거나 혹은 사회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괜스레 자기가 초라한 느낌을 가질 때 정도다. 그러나 벙어리가 말이 없다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게 아닌 것처럼 '부끄럽다'는 직접적인 표현없이 남자가 가슴을 붉히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부끄러움이란 '자아에 집중하고 자존감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부끄러움을 느낄줄 아는 남자는 자기 중심이 튼실한 매력적인 남자라는 게 내 생각이다. 부끄러움이 거의 뼛속까지 각인되어 물이 꽉 찬 유리잔의 물이 흘러 넘치듯 그렇게 매력이 넘치는 남자 한 명을 나는 알고 있다. 그의 이름은 김중배다. 김중배는 '맷집'이 좋은 사람이다. 근성있는 인파이터형의 권투선수 출신이거나 오기넘치는 싸움꾼이라서가 아니다. 일생 남을 비판하는 일을 해온 까닭이다. 그의 말처럼 남을 매질하려거든 먼저 스스로를 매질하는 것이 도리다. 남들의 맷집을 요구한다면 스스로도 맷집을 길러야 마땅하다는 게 김중배의 지론이다. 당연히 '누워서 침뱉기'를 넘는 그의 '자기매질'은 그가 어느곳 어떤 자리에 있든 평생을 두고 계속된다. 그런 김중배를 시인 고은은 이렇게 노래한다. "지식인이란 이 세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김중배는/늘 내일을 기다린다" 시인의 정제된 언어를 빌지 않고 좀 경박하게 표현한다면 김중배는 '대한민국 생각꾼'이다. 김중배가 문화방송 사장에 취임하기 이전 한 대학교수는 김중배를 언급하며 비록 소속 언론사가 없지만 '국민가수'가 있다면 국민언론에서 일하는 '국민기자'가 없으란 법이 없다며 김중배를 '국민기자'로 호칭한다. 한 잡지사의 '영향력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김중배는 현직에 있지 않은 언론인 중 거의 유일하게 몇 년째 그 이름이 빠지지 않고 거명된다. 지난해 4월 문화방송은 신문의 날 특집 다큐멘터리 '기자정신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신문기자, 학자,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김중배는 리영희, 송건호 선생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기자'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김중배가 문화방송 사장으로 취임하기 훨씬 이전에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김중배는 올해 2월 제14대 문화방송 사장에 취임했다. 공교롭게 그 시점에 김중배에 관한 글을 쓰기위해 자료를 들추고 있었던 나는 황망히 그 이름을 지웠다.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났다. 최고경영자로서 김중배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잠시 보류하자. 어쩌면 김중배를 오래 지켜본 사람에게는 김중배의 앞자리에 위치한 '문화방송 사장'이라는 직함이 번거롭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김중배라는 자연인의 이름은 언론사를 대표하는 고유명사보다 오히려 '言路'를 의미하는 상징어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김중배는 1957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 동아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장, 한겨레 신문 편집위원장 및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94년 언론계를 떠난 김중배는 참여연대 공동대표 겸 언개련 상임대표로 활동하면서 진보적 시민운동과 언론운동에 참여하며 한국사회 개혁그룹의 좌장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한 언론인의 말처럼 '김중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논객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1990년 10월 김중배는 제1회 '위암언론 학술상' 언론상을 수상했는데 그 선정이유는 이렇다. "김중배는 컬럼을 통해 사회적 언어가 제구실을 할 수 없었을 때 활력을 불어 넣었고, 정치적 제약으로 닫힌 말길을 허물면서 영혼의 소리가 독자의 귓전에 공감을 얻게 했다" 그는 자신의 컬럼이 문제가 되어 그 악명높은 남산 지하실에 끌려 가기도 하고 처절한 유배의식에 젖어 한햇동안 일본땅을 떠돌기도 했지만, 김중배는"글을 쓰다가 원고지에 붓을 꽂은 채 절명하는 것이 冥利를 다하는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컬럼을 남겼다. 그가 그토록 억척스럽고 끈질기게 글을 쓴 이유는 "말할 수 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그의 굳은 신념 때문이었다. 말길이 닫히면 끝내는 생각도 닫히고 행동도 막히므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백성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글 특히 문민정부 이전에 쓰여진 컬럼을 읽다보면 가끔씩 목이 메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의 절규 뒤에 감춰진 피처럼 삼켜지는 그의 신음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직후에 쓰여진 김중배 컬럼의 마지막 문장은 가슴을 때린다. "뜻이 있거든 촛불을 켜올려 주기 바란다. 또한 뜻이 있거든 향불을 피워 올려 주기 바란다" 김중배는 원론적인 얘기를 신뢰롭게 전달할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사람이다. 예를들어 그가 '착한 사람은 상을 주고 나쁜 사람은 벌을 주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당한 말을 힘주어 말해도 마치 새로운 얘기처럼 그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는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그의 애정과 통찰력때문일 것이다. 그는 역사는 인간이 결정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역사의 기상예보는 결정의 힘을 지닌 인간 자신의 몫이며, 시민운동이건 사회운동이건 무릇 운동이란 한 마디로 '자기결정'을 추구하는 역사의 동력이며 역사의 길이라는 것이다. 김중배는 인간의 '자기결정권'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다. 실상 김중배처럼 '본래의 자기'(real self)가 내는 목소리에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본래의 자기 목소리'에 근거한 자기결정권이 주는 파괴력이 어떤 것인지를 그는 소위 '김중배 선언'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1991년 9월6일 김중배는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개최된 편집국장 이취임식에서 '자본의 언론' 통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훌훌 떠났다. 30년 가까이 일한 직장에서 스스로를 해직시킨 것이다. 그 해말 한국기자협회는 전국 2천7백여 기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의 인물' 선정 투표에서 김중배를 선정했으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은 그를 민주언론상 수상자로, 동아투위는 '안종필자유언론상'을 또한 외신기자 클럽은 그에게 '언론자유상'을 수여했다. 누군가의 우스개소리처럼 김중배는 그해 언론상을 싹쓸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해직시키는 행위를 통해서 김중배식 자기결정권의 극치를 보여준다. 소위 '김중배 선언'은 言論史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게 언론학자들의 분석이지만 나는 그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그 선언의 의미를 생각한다. 김중배 선언은 그의 '자기성찰'과 '자기매질'이 얼마나 치열하고 혹독한 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김중배의 글에는 '오늘 솔직하게 고백하고자 한다'는 문장이나 '참회, 부끄러움, 회개'같은 낱말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의 고백이나 참회는 글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의례적인 修辭의 수준을 뛰어 넘는다. 김중배는 숱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명컬럼니스트 월터리프먼을 존경하는데 그 이유는 언론의 대표선수인 그가 스스로 언론의 허상을 고백한 때문이란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는 김중배의 목소리는 간절하다. "부끄러움은 마땅히 부끄러움을 아는 부끄러움으로 타올라야 하고, 다시 부끄러움을 되풀이 하지 않는 다짐으로 피어 올라야 한다. 나는 그것을 짐짓 '인격'이 바탕인 '恥格'이라고도 불러오는 터이다....부끄러움을 알아야만 비로소 부끄러움을 이겨내게 된다. 우리의 말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끄러움을 '無恥'라고 표현한다" 어느해 신문의 날에는 언론노련이 펴낸 언론 비판의 책자 "부끄러움을 보여드립니다"를 언급하면서 '아 그러나 올해의 신문의 날에도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다. 내년의 신문의 날에도 나는 여전히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인가'를 되뇌인다. 언론다운 언론을 위한 정진에 게으른 언론계를 바라보며 내뱉는 그의 말은 딱 세마디다. "한마디로 안타깝고 두마디로 부끄럽다. 세마디로 참담하다" 김중배는 자신의 신문기자 생활 35년이 너무나도 전투적인 상황의 연속이어서 미처 자신의 편견이나 오류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총체적으로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음을 아쉬워 하곤 한다. 그의 부끄러움과 아쉬움은 그가 자기결정권을 되찾고자 하는 집념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비판은 혹독하고 절실하다. 특히나 군사통치 30년을 겪는 동안 언론과 기자들이 많이 순치되어서 더 많은 자성과 회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을 타락시키기는 쉽지만 회복에는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자는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유인이라고 믿는다며 그러므로 언론종사자는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라는 '세 개의 눈'으로 역사를 把守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난 세월 김중배가 자신의 역량을 집중시켜 추진해온 일은 크게 두 가지다. 진보적 시민운동과 언론의 메타노이아 운동이다. 메타노이아란 '뒤에' 또는 '뒤늦게나마' '깨닫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언론이 회개해야 한다는, 바뀌어야 한다는 운동이다. 회개란 글자 그대로 뉘우침만으로 끝날 수 없고 뉘우침을 딛고 고쳐야만 비로소 회개의 말뜻은 완성된다. 따라서 회개의 완성은 고침의 결단이며 실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판을 거부하는 오만은 애당초 언론다운 언론의 체질일 수 없다고 질타한다. 성역을 남기지 않는 비판을 업으로 삼는 언론이,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언론개혁의 구체적 염원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결성된 단체가 바로 1998년 8월 40여개의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창립한' 언론개혁시민연대'다. 이 단체의 초대 상임대표를 맡은 김중배의 각오와 결의는 비장하다. "이 땅의 언론을 바로 세워나가야 한다. 그 役事에 작은 벽돌 한 장이나마 보태고 숨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며 바람이다. 남들이 노병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나이에 '언론개혁시민연대' 운동의 깃발 아래 종군하게 된 것도 오로지 타오르는 그 충정에서일 뿐이다" 아직 진행형이긴 하지만 김중배의 바람은 작은 벽돌이 아니라 커다란 주춧돌의 형태로 응답을 보내오고 있는 듯 하다. 김중배는 시민운동 1세대다. 1994년 언론계를 떠난 김중배는 그해 9월 '시민의 눈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힘으로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시민운동 단체 '참여 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참여연대)를 발족하여 공동대표로 참여한다. 김중배는 일찍부터 '민주주의 방관자는 민주주의 배반자'라는 주장을 펼쳐 왔다. 평소 김중배의 성격을 미루어보건대 얼핏 과격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운동의 중심과제는 '역사를 위한 싸움'이다. 앞서 말한 운동이란 한 마디로 '자기결정'을 추구하는 역사의 동력이며 역사의 길이라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복잡하고 어렵게 말할 것도 없다. 거대한 권력들과 그 역학관계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에서 그 종속적인 관계에 맡겨두었던 자신을 찾아와 자기결정권을 갖고 살자는 것이다. 실제로 참여연대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은 우리와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들이다. 철도청 환경오염실태 설명회, 지각전철 손해배상 시민소송, 변호인이 피고인 곁에 앉을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하자, 국회의원 회관에서 상습도박을 한 관련의원 전원 서울지검에 고발, 내부비리 제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청원서 제출, 114안내가 유료화뒤에도 부실하다는 문제제기 등 일부 뜻있는 시민운동가들의 특별한 얘기가 아니라 바로 잠자고 있는 내 작은 권리에 관한 얘기들인 것이다. 물론 시민운동은 아직도 시작단계이고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김중배의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우스갯소리처럼 이 시대의 진짜 프롤레타리아는 시민운동단체 상근자라는데 지난 94년부터 시민운동에만 매진해온 김중배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지난 99년 김중배는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민운동가나 언론인은 경제문제가 투명해야 한다. 금전적으로 당당하지 못하면 떳떳하게 일을 할 수가 없다....개인적으로 짊어져야 한다...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2년 전부터 정치인 후원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평생을 언론인으로 지내다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색다르게 경험한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저는 시민운동도 언론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차이점이라면 신문기자는 데모를 하면 안되지만 시민운동가는 부지런히 데모를 한다는 것이지요. 집회 참가 초기에는 구호를 외치는 데 손이 안 올라가서 참 괴롭데요. 지금은 잘 올라갑니다" 곤혹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표정으로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하는 김중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중배는 지난 1월까지 바로 이 참여연대의 공동대표였다. 그러다 지난 2월 갑작스럽게 문화방송 사장에 취임한 것이다. "이것은 40년의 '권언유착'을 끊은 쿠데타적 사건이다" 지난 2월23일 문화방송 대주주인 재단법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14대 문화방송 사장 으로 김중배를 선임하자 한 시사주간지는 언론계의 경악에 가까운 반응을 그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김중배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추천이 돼 과반수가 훨씬 넘는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고 한다. 새삼스럽게 김중배의 사장 선임과정을 되돌아 보는 것은 언론사 세무조사 이후 문화방송과 김중배에 관한 논의가 적지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문화방송 방송뉴스 보도가 공정성과 형평성을 잃고 있다며 시정을 요구했고, 박관용 한나라당 언론장악 저지 특위 위원장은 김중배가 1996년에 쓴 '대통령과 방문진'이라는 컬럼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마치 김중배가 대통령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임명된 것처럼 몰아 세웠다는 게 문화방송의 주장이다. 최근 논의가 되고 있는 문화방송 뉴스의 공정성 문제나 경영성과같은 문제는 내가 왈가불가할 처지가 아니나 방송과 관련된 김중배의 컬럼에 관해서는 한마디 거들어야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언론개혁과 관련된 김중배의 글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몇구절만 예를 들어보자.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투쟁을 열린 눈으로 지켜보아 주기 바란다. 왜 젊은 그들은 오늘, 감옥과 해직의 두려움을 넘어 민주언론의 전사이고자 하는가" 1996년 3월 문화방송 노조가 공영성 사수를 위하여 파업투쟁하던 당시 김중배가 한 잡지에 기고한 글인데, 김중배는 문화방송 사장 취임사에서 밝힌 '진정한 공영방송'을 향한 개혁의 한 징표로 정찬형 전 노조위원장을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발탁하여 호흡을 맞추고 있다.   또 있다. "언론은 권력의 응원단일 수 없다. 시녀일 수도 나팔수일 수도 없다. 그 수직적 종속의 관계를 거부하는 정신이야말로 언론의 뼈대다(86년4월)"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반드시 언론의 의무일 수는 없으나 그것을 언론의 의무로 생각하는 언론귀족들이 존재한다(97년2월)" 과거에 그가 했던 이런 질타를 부메랑으로 만들어 현재 문화방송 사장인 김중배를 겨누면 멋들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현재까지의 행적은 그것을 무력하고 불가능하게 만든다. 박관용 위원장이 문제로 삼았던 바로 그 컬럼 중에서 이번에 반란을 일으켜 김중배를 사장으로 선임한 방문진에 대한 다음과 같은 구절은 또 어떤가.   "흠이 있는 사장을 연임케 한 그들의 처사는 '방송문화진흥'의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어느 자리에 나가서든, 방송문화진흥회를 그 이름대로 말하지 못한다. 오로지 '방문진'의 약자로 떠버릴 수밖에 없다.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이라고는 할지라도 이제는 책임의 불감증에서 벗어나야 한다(96년4월)" 얼마전 비옷을 입은 채 야외 시사회에 참여하고, 공영성 강화원칙에 따라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생중계를 중단하고, 김중배 사장의 지시로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했다는 따위의 조치들이 문화방송의 경영성과에 어떤 식으로 투영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또한 김중배가 사장으로 내정되었을 당시 김대표의 개혁성향은 평가하나 비방송인이 급변하는 방송환경에 어떻게 대처할지 지켜보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던 문화방송 노조가 현재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도 필자는 알지 못한다. 다만 김중배사장 내정 직후 손석희 아나운서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의 마지막 대목만은 김중배의 얼굴과 함께 선연하게 기억한다. "나는 내가 입사한 이후 후배들의 박수를 받고 떠나는 사장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훗날 그가(김중배) 떠날 때는 아낌없는 박수를 받고 다시 시민운동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얼마있으면 나도 방송생활 20년인데 그런 사장 한번쯤 보는 게 꼭 꿈이어야 하겠는가" 그런 간절한 꿈에 왈가불가할 주제는 안되지만 손석희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김중배의 말이 하나 있다. 지난 97년 한국논단 대선후보 사상검증 토론회 중계후 KBS보도제작국 PD들은 역사의 죄 앞에 고해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때 그 성명서를 읽고난 후 신음처럼 내뱉은 김중배의 탄식이다. "명색 선배임을 자처하는 나같은 무리가 어떻게 연명해 왔길래, 오늘의 후배들을 저토록 깊은 수렁에 빠뜨리게 된 것일까" 김중배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렇게 '맷집'이 좋은 것이다. (2001년 11월) ------------------------------------------------------- 손석희 아나운서의 꿈이 이루어진 것을 보니 저도 즐거워 집니다. 후배들의 아낌없는 박수를 받고 다시 시민운동 속으로 돌아가는 김중배 선생을 보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2003년 3월, 정혜신 (주: 이글은 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홈페이지 www.hyeshin.co.kr에 게재된 것을 옮겨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