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레이저/인종과 건보개혁 함수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0/02/09 04: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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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당선으로 '인종의 벽'이 무너졌다고?
[해외발언대]매사추세츠 주민은 왜 진보적 의제를 외면했나

기사입력 2010-02-08 오후 3:44:04

2008년 11월 미국의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일부 언론은 '인종의 벽이 무너졌다'고 환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1년 차인 지난해 '100년만의 숙원'이라는 국민의료보험 도입을 정치적 승부수로 띄워 건강보험개혁을 밀어붙였다. 미흡하나마 지난해말 하원과 상원에서 잇따라 건강보험개혁법안이 통과됐다. 이제 상원에서 통합법안이 통과되면 정말 '100년만의 숙제'가 일단락되는가 했다.

하지만 건보개혁법안을 두고 철저하게 갈라진 상원에서 사실상 법안 처리를 무한정 지연시킬 수 있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라는 무기를 공화당이 되찾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1월 19일 다른 곳도 아닌 민주당의 전통적 아성이라는 매사추세츠 주 상원 보궐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민주당의 가장 큰 패배 요인도 '오바마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건보개혁 등 오바마가 중점을 둔 개혁법안들이 잇따라 좌초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왼쪽으로 이동했다고 생각하면 착각"

왜 이런 역풍이 불어닥쳤을까.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보스턴글로브>에 기고한 '좌파 성향의 유럽, 우파성향의 미국(Success of the left in Europe, the right in US)'이라는 글(원문보기)은 그 해답을 '인종과 정치적 제도'에서 찾아 주목된다.

글레이저 교수는 이 글에서 "오바마가 지난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이 미국이 왼쪽으로 유의미하게 이동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면서 "세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은 여전히 두드러지게 보수적인 나라"라고 지적했다.

글레이저 교수는 5년전 하버드대 동료교수 알베르토 알레시나와 함께 쓴 책을 인용해, 왜 미국은 서유럽 나라들보다 사회복지와 재분배에 훨씬 소극적인가를 설명했다.

이 책에 따르면, 재분배 문제에 관해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미국은 세금을 제하기 전 소득이 유럽에 비해 불평등하고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재분배 정책이 더 필요한 편인데 현실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빈곤 탈출 기회를 찾기가 더 쉽기 때문에 재분배에 소극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빈곤층이 유럽의 빈곤층에 비해 소득 향상 기회를 찾기가 더 어렵다.

복지와 재분배에 인종적 이질성이 미치는 영향

이에 따라 글레이저 교수 등은 이 책에서 미국과 유럽의 재분배 차이는 미국의 인종적 이질성이 더 크고, 보다 보수적인 정치적 제도를 갖고 있다는 점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인종적인 다양성이 큰 나라일수록 사회 복지 제도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에서 미국의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국민의료보험을 도입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을 '인종 문제'로 꼽으며 글레이저 교수의 연구를 가장 강력한 근거로 소개한 바 있다.

이 책에서 크루그먼은 글레이저와 알레시나가 수행한 '가장 체계적 연구'라고 소개하면서 "미국에서 여느 선진국과 달리 주목할 만한 사회운동이 없었던 현상에는 인종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인종 간의 불화는 빈곤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빈곤층 중에서 소수민족들이 가장 많이 부각되기 때문에, 소득에 기초하여 부를 재분배할 경우 특별히 소수 민족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아지게 된다.

불편한 인종관계는 분명 미국이 복지국가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재분배를 계속해서 반대해 온 이들은 인종문제가 깔린 문구를 사용하여 좌파적 정책과 맞서왔다. 미국 전역에서 인종 간의 분열은 부의 재분배를 예측하는 강력한 도구다.

또한 미국 내에서 인종 문제는 복지 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이 얼마나 많은지 예측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다. 어떤 주가 복지제도를 더 많이 지지하는지 비교해 보면 역시 인종이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글레이저 교수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은 주일수록 복지프로그램 수혜자에 대해 덜 관대하다"면서 "에르조 러트머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다른 인종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둔 미국인들은 복지 지출에 반대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인종 문제로 건보개혁 번번히 좌절"

크루그먼은 미국에서 국민의료보험이 없는 가장 큰 원인도 인종 문제에서 찾았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들은 국민의료보험제도가 있다. 어떻게 미국에만 이러한 제도가 없을까?

크루그먼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국민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때는 1940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추진한 국민의료보험에 대해 여론도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학협회와 남부 백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남부 백인들은 저소득층이었기 때문에 국민의료보험의 수혜를 받았을 수도 있었는데도, 병원에서 인종차별이 폐지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트루먼에 반대했다.

인종 요인과 함께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은 정치적 제도다. 소선거구제를 채택한 부자 나라들은 재분배 제도가 약한 경향이 있다. 서유럽의 대부분 국가처럼 비례대표제로 소수집단도 지도자를 선출할 기회가 부여된 나라들은 복지제도가 상대적으로 발달돼 있다.

유럽의 정치시스템이 좌파성향을 띠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미국의 민주주의는 구유럽의 전제주의보다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를 걸쳐 유럽의 헌법들은 세계대전과 혁명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적으로 수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빈곤과 성공의 본질에 대한 현저한 인식 차이

글레이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좌파가 득세하고, 미국에서는 우파가 득세하면서 빈곤과 성공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인 중 60%나 되는 반면 유럽인은 26%만이 그렇게 생각해다. 유럽인의 54%는 행운이 소득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은 30%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미국의 '워킹푸어(근로빈곤층)'는 유럽의 '워킹푸어'보다 오랜 시간 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레이저 교수는 "그 차이는 여론을 형성하는 정치가 장기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글레이저 교수는 '1년전 나는 오바마의 승리가 인종 요인이 감소하고 미국이 왼쪽으로 움직이는 신호일까 기대했다. 하지만 나라의 변화는 느리다"면서 실망감을 드러냈다.

2009년 퓨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성공이 자신의 통제 밖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국인 중 29%인 반면 프랑스는 52%, 독일은 66%가 그렇게 생각했다.

글레이저 교수는 "매사추세츠 주에서조차 미국인 유권자들이 진보적 의제에 거슬러 투표한 것이 놀랄 일이 아니었다"면서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미국은 보수적인 나라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은 오랜 투쟁을 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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