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10년전 언론인 김중배의 글을 만났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다시 에드워드 머로를 떠올리며> 1999년 11월 18일 (목) 김중배 (언론인), 미디어오늘 이른바 ‘언론문건’ 파동의 소용돌이도 이제 일과성의 헤프닝쯤으로 지나가버리려 한다. 나같은 무리에겐 천문학적 액수로 보이는 재정적자나 대우사태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오직 유일무일한 의제인냥 소란을 피워대던 언론 미디어 등도 차츰 고개를 돌려간다. 특유의 ‘냄비근성’을 헤아린다면 그나마 오래 끌어온 의제였다고나 할까.비단 ‘언론문건’ 파동만이 아니다. 진정 사람다운 사람의 살 길을 열어가는 언론이라면, 제비 한 마리에서도 봄을 감지하고 대응의 처방을 찾아나서야 한다. 돌출하는 모든 일들을, 그저 일어났다 꺼져버리는 일들로 치부한다면, 이미 그따위 언론은 언론의 바른 이름에 값하지 못한다.정치가 언론을 닮았느지, 언론이 정치를 닮았느지는 판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치의 숨결 역시 ‘냄비근성’의 헐떡거림을 벗어나지 못한다. 권언유착이라거나 정언유착이, 그렇게도 뼈저리고 그렇게도 부끄러운 이땅의 환부로 지적되었으나 정치권의 행태는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구당’이 아닌 ‘신당’을 만든다면서, 끌어들이는 인사 중엔 당연하다는 듯이 ‘언론인’들이 포함된다. 그것도 군부독재시대의 밤 9시에, 나팔을 불어대던 앵커라는 자들을, 자랑스럽다는 듯이 끌어들인다. 언론이건 정치이건 도무지 역사에서 배우고자 하는 기색이 없다. 발전과 진보에 등돌린 그 어둠의 풍경들을 보면서, 나는 차마 이땅의 현실과 역사를 직시하기 어렵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남의 땅, 남의 사람쪽으로 기울어간다. 역시 이런 때마다 떠오르는게 매카시 선풍에 감현히 맞섰던 미국 CBS 방송의 대기자 에드워드 머로이다.방송 저널리즘을 새롭게 열어냈다는 그의 입체적 시사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는 1954년 매카시 선풍의 허위와 죄악을 고발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사람,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프로그램이지만, 그가 남긴 매카시 프로의 마지막 코멘트는 나의 가슴 깊은 곳에 흔들림없이 새겨져 온다.“우리는 설령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쓰고 말하고 지키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그따위 인간의 자손이 아니다. 매카시의 작태에 찬성하는 이나 반대하는 이나 모두가 입을 닫을 때는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은)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매카시만의 잘못인가. 오늘의 공포를 만들어낸 건 매카시만이 아니다. 그는 다만 공포의 분위기를 잘 이용했을 뿐이다. 카이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브루터스여, 운명의 별 탓이 아니다. 잘못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왜 조금은 장황함을 무릅쓰면서까지 긴 인용을 감행하게 되었는 가를 풀이할 겨를은 없다. 구태여 풀이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의 결연함과 구조적 시각을 과연 이땅의 언론에서 확인할 수 있는가를 곁다리 물음으로 던져두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렇게도 당당하던 에드워드 머로는, CBS 경영진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1961년 케네디 정부의 문화교류청(USIA)장관으로 옮겨가고 만다. 그때의 에피소드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무거운 경종으로 온몸과 온 얼을 울려댄다. 미국이라고 우리의 풍속과 전혀 다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관직에 오른 그에게 산더미같은 축전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어떤 기자가 “축전이 참 많이 왔지요?”라고 묻자, 그는 내뱉듯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축전이 아니라 조전이야.”에드워드 머로의 얘기를 되풀이 떠올리고 되풀이 읊어대는 이유를 묻지는 말아주기 바란다. “이것이 사람이다!” “이것이 언론인이다.!”는 프로그램 제목 투의 강조도 접어두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머로의 ‘사람’과 머로의 ‘언론인’이 거저 이루어졌다고는 속단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역시 CBS 사내의 민주주의, 특히 ‘시 잇 나우’의 제작과정에서 확인되는 편집권 또는 편성권의 존중이 그에게 ‘사람’과 ‘언론인’의 길을 열어주었음을 잊어버릴 수 없다. 타락과 변절의 언론인들만을 질타한다고 바른 언론의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CBS가 아니었던들 그날의 머로는 자라날 수 없었다. 바로 그 연관의 고리가, 오늘 이땅의 현실을 지켜보며 에드워드 머로를 거듭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