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바따이유는 미셀 푸코가 20세기 가장 걸출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꼽은 인물이다. 한때 성직자를 꿈꾸던 그는 자신의 생애를 희한하게 성, 죽음, 폭력과 같은 반기독교적인 주제에 바친다. <에로스의 눈물>은 바로 이 금기와 위반의 사상가가 내놓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인간 에로티즘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에로티즘을 '이성의 꼼꼼한 계산'과 정면으로 대치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에로틱한 욕망과 '실용적인 성적 활동'을 혼동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단순한 성적 활동은 동물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반면에 로쎌의 바위 아래 은신처에서 발견된 남녀 한 쌍의 성적 결합을 그린 후기 구석기 유럽 오리냐크 문화기의 부조, 우리의 오랜 민속 문화에서도 쉽게 확인되는 에로티즘적 활동은 오직 인간에게만 국한된다. 죽음의 참화를 보상하고자 하는 생의 본능, 삶의 의지가 에로티즘의 양태로 표현된다는 것이 바따이유의 기본 인식이다. "성적 욕망은 단순한 성적 활동과 구별되는 삶의 의지" 죽음의 공포가 심화되고 확산된 현대 사회가, 대중이, 그리고 이들을 관계적으로 매개하는 매체가 에로티즘에 탐닉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그 물신적 한계와 무관하게) 기본적으로 에로틱한 체제이며, 현대의 다중은 근본적으로 에로티즘의 존재다. 신문, 방송, 인터넷 할 것 없이 현대 매체는 에로틱한 형식, 에로스의 내용들로 풍성하다. 에로티즘은 윤리 문제를 초월해 있다. 침대 위에서 섹스에 열중한 커플을 그린 렘브란트의 1637년 작 '침실'을 아무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직 미학적으로 그 가치를 따질 따름이다. 최근 KBS가 방영한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을 가다>도 마찬가지다. 와이와이족 여자애들이 발가벗고 헤엄치는 모습은 제3세계를 타자화한·성애화한 식민주의 시선이라는 탈식민주의 상투적 비평을 넘어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가히 에로티즘의 영상 미학, 그 정수를 보여준다. 장 보드리야르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악착같이 보여주는 대중매체는 외설적" 그렇다. 에로티즘은 우리의 삶, 우리의 문화다. 매체도 더욱 에로틱해져야 한다. 당치 않은 근엄함·엄숙함의 허위의식을 떨치고 에로스의 매체로 정직하게 자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를, 폭력과 죽음의 만연한 공포를, 그리고 그 극복의 판타지와 욕망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다. 미디어는 진화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 채 똥 폼 잡는 후진 매체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해하지 마시라. 에로티즘의 주창이 포르노그래피의 선동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에로티즘과 포르노그래피, 즉 외설은 전혀 다르다. 에로티즘에서 중요한 것은 섹스와 인간 신체 그 자체가 아니다. 이들을 보여주는 데 집착하지도 않는다. 섹슈얼러티의 미학, 교통, 정동이 핵심이다. 이와 반대로 포르노는 오직 섹스 중인 인간의 몸을 드러내는 데 열중한다. 그럼으로써 응시하는 자의 흥분을 유발하는 데 의도가 있다. 최대한 많이 노출함으로써 최고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끌어내고자 할 따름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것을 악착같이 보여주고자 하는, 굳이 말 안 해도 될 시시콜콜한 정보를 집요하게 까발리는 현대의 대중매체를 외설적이라고 비판한다. 한 마디로 과잉된, '오버'하는 매체를 가리킨다. 민망할 수준으로 타락한 싸구려 야시꾸리 타블로이드 매체를 뜻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현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포르노그래피의 매체에 불과하다. 그래서 호기심에 호소하고, 감각을 자극하며, 본능을 무제한적으로 표출한다. 섹스를 다루지 않는다고 포르노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모든 것을, 산 생명조차 회쳐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것을 유혹하는 지상파 정보프로그램들이 포르노적이다. 온갖 연예인을 불러내 속내를 고해토록하고 그런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경청토록 유인하는 토크쇼가 포르노적이다. '페이크' 형식을 빌려 타인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유아적인 케이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포르노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포르노 매체에 불과" 신정아씨 누드를 게재한 문화일보는 바로 이 포르노 매체의 지배적 양식을 극악적으로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신정아씨의 벗은 모습이 포르노그라피가 아니다. 에로티즘과 연관시켜 판단하기에도 그 출처와 용도를 현재로서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지면에 옮기는 순간, 신정아씨의 사진이 아닌 해당 신문은 바로 포르노 잡지로 변한다. 누드 사진을 실어 포르노그라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일반의 상식뿐만 아니라 업계의 프로페셔널리즘을 위배하면서까지 집요하게 사진을 싣고자 한 의도가 포르노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문화일보는 독자의 알권리를 내세운다. 동의하기 어렵다. 대체 독자가 무엇에 관한 어떤 알 권리가 있다는 건가? 대량 유포된 신씨의 벗은 사진은 응시하는 카메라 시선 배후에 숨은 비리의 국가권력, 음흉한 문화권력, 야비한 매체권력에 노출된 개인의 약한 신체, 짓밟힌 여성의 허술한 인권을 비극적으로 드러낸다. 포르노화한 야만적 매체체제를 역설적으로 입증할 뿐이다. "반문화적인 문화일보의 선택은 자신이 후원하는 정파 확인시켜준 친절한 서비스" 문화일보가 이 전략적 선택을 통해 무엇을 노렸는지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연재소설 '강안남자'를 갖고 욕보인 정권을 똑같은 선정주의를 무기로 되갚음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이 어떤 정파를 후원하는지 노골적으로 확인시켜주고자 한 친절한 서비스 아닐까? 뻔히 예상되는 비판을 뭉개면서, 특종 발굴된 상품을 최대한 정치권력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상술 아니겠는가? 이렇듯 황색 타블로이드라고 커밍아웃한 신문에 '문화'라는 단어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에로티즘이 인간의 삶 즉 문화의 본질이라면, 이런 포르노는 인터넷 야동보다 더 못되고 무서운 반문화다. 문화를 좀먹는 질병이다. 문제는 이런 흥행과 인기몰이의 외설적 환경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선량한 독자, 순진한 시청자도. 사회와 민주주의도. 위해 환경을 어떻게 개선·퇴출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런데 이 화두는 문화일보를 포함한 도덕주의적 보수들의 단골 의제 아니었던가? 그러니 모범적이고 효과 높은 답안을 내놓으시길.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수)   미디어오늘, 2007년 09월 14일 (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