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서양호 전 행정관 "마음 속 빚 청산하겠습니다" 청와대 정무비서관실 서양호(40) 전 행정관(전 이강철 정무특보 보좌관)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은 당초 서씨가 청와대를 퇴직하며 정치권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선 흐름이 세력간 합종연횡으로 비춰지고 있다"며 "정치 노선이나 담론 중심의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공개 이유를 밝혔다. 서씨는 현재 손학규 캠프의 전략기획실 정무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 주> "'유수지위물야(流水之爲物也)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 上)>) "과(科)의 원래 의미는 구덩이 입니다.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건너 뛸 수도 없는 것이지요. (신영복, <강의>)" 제가 정치권에 첫 발을 디딘 것은 재야운동 선배님의 국회의원 선거 자원봉사를 하면서였습니다. 저는 학생운동 이후 사회진출을 앞두고 운동의 공공성과 가장 근접한 일로 장애인을 위한 복지기관 활동이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권 활동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정치권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며 활동해왔지만, 책장 구석에 먼지 쌓여가는 낡은 일기장처럼 대학 시절의 꿈도 현실 속에서 조금씩 빛이 바래갔습니다. 오랜 빚을 청산하려고 합니다 그러던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세력의 특권과 반칙에 반발하며 변화를 바라는 상식적인 유권자들과 대선에서 승리했고,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운동권을 우리사회의 주요한 세력으로 복원시켜 주었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정부에 미력을 보태었지만 마음속 깊이 간직한 부채의식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미 정상에 선 저 위치에서, 저 나이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깃발을 들고 자기의 길을 선택하는데, 나는 어떤 정치를 하려고 여기에 있는가"하고 수없이 되뇌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태산보다 더 큰 지역주의 앞에 삽 한 자루 들고 대구로 내려가는 이강철 전 수석을 따른 것도 빚지고 사는 것 같은 마음고생 때문이었습니다. 1년간의 백수 생활 후 다시 돌아온 청와대는 나를 바쁘게 했지만, 어느새 뱃살이 조금씩 불어나는 자신을 보며 더는 결심을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소홀했던 제 주변을 우선 돌아보고, 여력이 된다면 정치와 우리사회의 통합과 단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소홀함 없이 모든 구덩이 다 채우는 흐르는 물'이 주는 교훈처럼 말입니다. 대통합신당과 대선후보 단일화로 흐르는 대선의 강물 이면에 시대가 우리세대에게 요구하는 '산업화세력의 극복'과 '민주화세력의 혁신'을 통한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바람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이 흐름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이것이 시간과 사람들로부터 제가 저에게 지운 마음 속 빚을 청산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념과 노선' 보다 국민이 우선 중요한 것은 이념과 노선이 아닌 현실속의 국민입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선택한 동아리에 의해 우연히 결정난 노선(정파)이 절대적 신앙으로 자리잡아 어느새 독재정권보다도 다른 노선의 사람이 더 싫어지기 시작 할 무렵이었습니다. 조직은 하늘같은 노선의 오류를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적보다 싫은 정파와 통합을 결정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선후배들이 운동을 떠났습니다. 스무살 불같은 청춘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수모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상처가 깊은 만큼 학생운동의 단결의 기운은 높았고 학생들의 참여의 폭은 더욱 넓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과 통일과 단결은 양을 늘리는 획일과는 달리 차이를 인정하여 풍부한 하나를 만드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 진다는 진실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 일은 이후 제 운동과 생활에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학생운동시절 제가 속한 조직의 활동가를 학생회장 후보 추천에서 반대하고 조직원 비조직원을 구분하지 않고 추천을 받았고, 급기야 집회나 학생회 활동에서 가장 성실히 참여한 예비역 복학생을 후보로 추천하여 출마시켜 조직내 파란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사상과 신념은 책을 많이 읽고, 자신의 노선을 잘 이야기 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 실천하고 그 결과에 책임질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속은 게 아닙니다 국회 보좌관이던 2001년, 여러 종류의 여의도 모임에 가면 운동권이라면 대선후보로 당연히 GT(김근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횡횡하였습니다. "설렁탕집도 아닌데 원조 경쟁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정치인으로 자신의 신념을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 보인 사람, 경선 후 본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인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꽤 여러 곳의 운동권 선후배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시대는 산업화세력의 극복과 민주화세력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산업화세력으로 자칭하는 수구세력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사회 양극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시장 만능주의와 성장 제일주의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합을 분리해 사고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냉전적 사고에 갇혀 있습니다. 이들을 더 수구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드는 토양은 지역주의라는 공고한 지지 기반과 아울러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극단적 정치행태입니다. 민주화세력에게는 87년 이후 지난 20년간이 새로운 실험들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은 낡은 권위와 질서의 해체에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최근 열린우리당 내부의 분열과 혼란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지표입니다. 무엇보다 민주화라는 시대흐름 속에서 20년간의 담론 주도권과 10년간의 정권을 빼앗겼던 산업화세력으로 위장한 수구세력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조중동의 왜곡이나 야당의 정치선동에 국민들이 속아서가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데 실패한 민주화운동세력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참여정부 '분열적 노선', 신뢰 떨어뜨려 민주세력 정통론, 민주세력 집권 연장론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한미 FTA협상으로 상징되는 세계로의 시장 확대를 통한 경제성장, 남북화해협력, 사회양극화ㆍ지역의 균형과 발전, 생산적 복지를 위한 사회투자국가 등 참여정부의 정책은 합당하며 많은 우여곡절이 있지만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은 민주나 반민주의 시각, 진보나 보수의 잣대로 구분 할 수 없는 국민의 이익을 중심에 놓은 결과입니다. 정치는 통치행위와 정책을 통해 추진주체의 세력 강화로 귀결 시키고, 이렇게 형성된 세력은 국민과의 소통의 채널이 되고, 이는 다시 통치와 정책추진의 기반이 되는 연관 관계의 질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참여정부는 정책수립과 추진과정에서 이념과 노선을 극복해 국민과 소통하는 반면 정치에서는 여전히 민주대 반민주의 낡은 구도에 따른 분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열적 노선은 참여정부 정책추진 과정을 지연시키고 정책결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정치 리더의 분열은 끝없는 사회적 갈등을 양산해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권력과 파당적 이해에만 매몰하게 하는 우리사회의 가장 후진적 부문입니다. 그 결과 지역주의 극복과 사회통합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지역주의와 사회 양극화는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심화되었고 정당정치는 실종되고 국민 참여는 오히려 후퇴하는 역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방적 논쟁 주도? 국민들과 소통해야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이나 '보수 대 진보'의 구분은 이미 낡은 가치가 되었습니다. 이제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넘어 선진한국의 비전과 리더십을 갖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시대는 우리에게 사회통합, 지역통합, 남북의 통합으로 전 민족적 역량을 모아 동북아는 물론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한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은 국민의 역량을 모아야 하는 국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정치 리더의 일방적 '의제 제시와 논쟁 주도'는 해당 의제의 당사자를 대상으로 전락시킬 뿐입니다. 우리 시대의 정치 리더의 역할은 주체가 의제 제시를 통해 자신이 소속한 사회적 집단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로 성장하도록 지원하여 종국에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며 국민들과 소통하는 국가 경영 주체로 성장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당ㆍ청분리, 검사와의 대화, 대북특검, 개헌, 기자실 통폐합 등의 교훈은 시기의 적절성 여부가 핵심적 문제가 아니라 의제의 제시 주체 문제와 추진 과정상의 문제가 본질입니다. 참여정부가 제시한 의제는 해당 주체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는 열린우리당·검사·호남·국회·기자들과 소원해지거나 적대적으로까지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청와대가 개혁해 주겠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와 정반대되는 사례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시대는 상식적 생활인들의 합의와 동의에 의한 정치, 차이를 인정하고 합의하여 과정이 수단이 아닌 목적인 정치, 과정에서의 주체의 변화를 이루는 정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성과 딛고, 성장으로 가자 국민들의 높아진 권리의식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여 국민을 통합하고, 통합된 국민과 정치 리더의 소통을 높여 국민 역량을 결집시킬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리더십의 문제는 정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물과 국민을 바라보는 리더의 신념과 철학의 문제, 우리사회의 비전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국민역량을 모아야 하는 국가 생존의 문제입니다. 글을 마치며 올해 초부터 사직하려 했으나 지지율이 낮을 때 떠나는 것이 야박해 보여 망설이곤 했는데 지금은 그나마 조금 나아져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청춘을 바쳐 대통령을 만든 선배들을 비롯해서 비서실 업무에 열성을 쏟는 분들에 비해 혹시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이 떨어져 이런 생각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사표 내는 발걸음 더디게 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참여정부의 성과를 딛고 성장할 것을 시대는 우리 세대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부산의 어느 빈 공터에서 지역주의에 맞서 호소하는 어느 바보 정치인에게 배운 것처럼 더 늦기 전에 제가 생각하는 그 일에 미력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과 여러분들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