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오랫만에 연예계 이야기를 하나 골랐습니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씨의 글입니다. 연예계의 각종 현황에 대한 깊은 이해에 근거해, 스타시스템의 변화를 대중의 기호와 시장의 관점에 맞춰 잘 정리한 글이네요. 연예산업 전반에 걸친 이문원씨의 전문적 견해가 돋보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스타 파워가 급작스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티켓 파워, 시청률 파워에서 별다른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영상매체에 종속된 스타들이 더욱 심각하다. TV 드라마부터 살펴보자. 이미연·윤계상이 출연한 ‘사랑에 미치다’, 세븐이 출연한 ‘궁S’, 고소영의 안방극장 복귀로 화제를 모은 ‘푸른 물고기’, 에릭이 출연한 ‘케세라세라’ 등이 ‘한 자릿수 시청률’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그나마 선전했다는 한가인·재희 출연의 ‘마녀유희’, 엄태웅·신민아의 ‘마왕’, 장혁·공효진의 ‘고맙습니다’ 등도 20%대 시청률 돌입에는 실패했다. 영화의 스타 파워 감소는 꽤 오랫동안 천천히 진행된 편이다. 그 시작은 한석규·고소영 주연의 ‘이중간첩’(2002) 실패부터다. 지난해에 이르자, 유지태·김지수 주연의 ‘가을로’, 차승원 주연의 ‘국경의 남쪽’, 정지훈·임수정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정우성·김태희 주연의 ‘중천’, 이병헌·수애 주연의 ‘그해 여름’ 등이 연이어 쓰러져 갔다. 올해 설날 시즌은 특별한 승자 없이 막을 내렸고, 차승원 주연의 ‘이장과 군수’, 송강호 주연의 ‘우아한 세계’도 기대에 못 미치는 주간 흥행 1위를 꿰찼다. 어느 스타나 실패작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커리어상 저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스타 파워가 상업성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반면, 티켓·시청률 파워 스타를 기용하지 않은 TV 드라마 ‘하늘만큼 땅만큼’, ‘행복한 여자’나 영화 ‘미녀는 괴로워’, ‘맨발의 기봉이’, ‘달콤살벌한 연인’ 등이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계는 2005년 ‘마파도’ 충격 이후로 스타 콘텐츠 시장에 대한 의문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영상 매체에서 스타 파워의 약세는 의외의 일이다. 흔히 1990년대 중·후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 원인은 두 가지로 생각되고 있다. 먼저, 영화 제작 인력의 질적 향상, 그리고 스타 파워로 인한 관객층 확보다. 이는 같은 시기에 거대 매니지먼트사의 설립으로 스타 매니지먼트가 본격화되었기에 설득력을 얻는다. 이전과 같은 ‘무조건 얼굴 내밀기’ 전략이 사그러들었던 때다. 영화로 인해 확인된 스타 파워는 이어 TV 브라운관에 영향을 미쳤다. 영화 스타들이 이미지 환기를 위해 브라운관을 넘나들면서 안방극장에도 활력이 생겼다. 전 아시아적 한류 붐으로 한국 TV 드라마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한류 진출을 위해 특A급 영화스타들이 TV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스타 콘텐츠는 극장과 안방에서 모두 큰 호응을 얻는 인기불변의 히트 아이템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과 수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물론 모든 대중문화상품은 콘텐츠 자체의 매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스타 상품의 가치를 무조건 얄팍한 상술로 몰아붙이는 것도 위험하다. 스타 가치의 저하는 역으로 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불러일으킨다. 모험적 시도가 이루어질 탄탄한 고정 시장 발판이 사라지면 히트 작품의 아류작 같은 졸속 발상이 판친다. 아무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장은 계속해서 추락 일변도에 놓이게 된다. 스타 파워 감소의 원인은 몇 가지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스타의 교체·대체가 지나치게 빨라졌다. 그만큼 소비되는 스타의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스타의 희소가치가 사라진 셈이다. 그리고 이는 시대상황 변화의 영향이 크다. 이전까지 스타는 콘텐츠 활동과 언론의 힘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콘텐츠 활동 영역도 늘어났고, 언론환경도 달라졌다. 영화, TV는 물론, 케이블TV, 뮤직비디오, 인터넷 동영상 등 스타 활동 영역의 확대는 상대적으로 많은 스타들을 양산시켰다. 언론 역시 80년대의 주간지 중심 연예언론 환경에서 스포츠신문의 탄생으로 일간화 됐고, 이제는 인터넷 연예언론의 범람 속에 분초 단위로 잘게 쪼개졌다. 또한 굳이 언론의 언로를 거치지 않고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네티즌 자발적으로 스타 관련 콘텐츠를 생산, 소비하기 시작했다. 스타 소비의 양적 팽창이 가속화되자 이제는 ‘누가 누군지 알 수도 없을 만큼’ 스타의 수가 늘어났다. 스타 시장은 집중화되기보다 각자 취향대로 잘게 나뉘어져 마니아화 됐다. 집중화되지 못한 시장은 범대중적 상업성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또 다른 원인은 스타 파워의 개념 인식 오류에서 발생됐다. 본래 스타 파워란 ‘해당 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는 무조건 보러 간다’는 자동 시스템이 아니었다. 대중 의식은 그 정도로 얄팍하지 않다. 스타 파워란 스타들에게 더 많은 출연섭외가 오고, 따라서 스타들이 더 좋은 작품의 출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에서 비롯됐다. 콘텐츠 선택, 커리어 선택의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영상 매체 스타란 보다 좋은 여건 속에서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택하여 ‘이 스타가 출연하는 영화는 믿을 수 있다’는 대중 신뢰감을 주는 것이 첫째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상당부분 무시하고 있다. 매니지먼트사가 콘텐츠 제작까지 넘볼 정도로 거대화되자 스타들은 끼워맞추기 식으로 소속사 제작 콘텐츠에 무차별 동원되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갈고닦을 여지도, 대중신뢰도를 쌓을 여력도 없다. 한류 진출의 얕은 속셈으로 딱히 국내시장에서 어필하기 힘든 멜로 콘텐츠에 출연하는 경우도 잦다. 국내 시장의 바탕이 없는 스타는 입지조성 토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외전용 스타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시장 상황 변화에 큰 타격을 입는다. 스타 시장을 다시 바로잡는 방법은 위의 오류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데에서 비롯돼야 한다. 범람하는 인터넷 노출도 경쟁 속에서 이미 자기 입지를 굳힌 스타들마저도 흔들리는 경우가 잦다. 일회성 ‘들이밀기’ 화젯거리를 양산하는 식이다. 스타의 집 공개, ‘쌩얼’ 공개, 무명시절의 아픔 고백, 옛 연인 고백, 다이어트 성공담 등 패턴도 정해져 있다. 그러나 군대 관등성명처럼 패턴이 고착화되자 이제 대중도 ‘나 여기 있어요’식 들이밀기 콘텐츠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스타 시장의 비정상적인 양적 팽창 속에 스타 희소가치 살리기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다. 스타 시장은 사실, 속성상 신비주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 인터넷은 속도가 빠르다. 이에 편승하는 스타들은 역시 그 속도만큼이나 쉽게 소비되고 버려진다. 자기 입지를 굳힌 스타들은 콘텐츠로 승부하고, 나머지는 이미지 소비를 최대한 막는 것이 원칙이다. 흔들릴 필요가 없다. 흔들릴수록 가치가 폭락한다. 대중은 과잉소비된 스타 이미지를 확인하러 돈을 내고 콘텐츠를 사지는 않는다. 대중 신뢰도를 높이는 콘텐츠 선택의 문제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매니지먼트사 계열 콘텐츠 제작사의 자사소속 연예인 캐스팅 트렌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는 낡은 방식이고, 이미 실패한 모델이다. 30~40년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시도했다가 결함을 발견하고 이미 시스템을 수정한 모델이다. 지금으로서는 스타는 죽고 스튜디오는 사는 시스템으로 여겨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타도 죽고 스튜디오도 죽는다. 한류 시장에 대한 덧없는 기대도 이제 접을 때가 됐다. 콘텐츠는 스타를 낳고, 이를 통해 새로이 등장한 스타는 콘텐츠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 관성효과로 얻어낼 수 있는 성과는 언제나 모두의 기대보다는 확연히 적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