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표현의 자유 1995년이었다. 기자회견이 화근이었다. 분명히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약속했건만 여기저기 기사가 났고 개막을 며칠 앞둔 광주비엔날레 본부는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다. 급기야 광주비엔날레 측은 나를 불러 문제의 작품을 출품치 말아달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완강히 버텼다. 최후통첩이 왔다. 자발적으로 취소하지 않으면 강제로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문제의 작품은 ‘삼 김씨(三金氏)’를 주제로 한 컴퓨터게임이었다. 게임이 시작되면 하늘에서 ‘똥’이 땅에 떨어지고 곧바로 세 김씨 나방이들이 날아들어 똥을 먹는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도 질 새라 끼어든다. 똥을 다 먹어치우면 지는 게임이고 마우스로 클릭하여 다섯 해충들을 떨어뜨리면 이기는 것이다. 작가인 나도 등장하지만 나는 불사신이다. 나를 쫓다보면 게임은 번번이 질 수 밖에 없다. 일부 신문기사들은 이 멋진(?) 작품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아무리 예술도 좋지만 어떻게 현직 대통령을 마우스로 클릭해 죽일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떨어뜨리는 것에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일부 기자들에 대한 배신감은 차치하고라도 그 내용이 너무나 선정적이어서 작가인 나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온갖 협박에 끝내 나는 이 작품을 출품할 수 없었다. 표현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에 의해 짓밟힌 것이다. 언론은 당연히 표현의 자유 편에 서야함에도 민주화되었다는 문민정부 하에서 오히려 그들은 권력의 시녀임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나의 절망감은 10여년 후 오늘 언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예견할 수 있었다면, 눈 하나도 깜짝할 것이 없는 대수로운 것으로 대체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언론권력의 시대에 격세지감 느껴 이제 언론은 권력의 품에 숨은, 꼭두각시 권력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을 창출하는 언론권력의 시대가 되고 말았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시대를 언론폭력의 시대로 명명하고 싶다. 늘 여론이 어떻다, 국민의 뜻이다, 정론, 정의를 외치며 국민과 국가를 걸고 넘어지지만 오늘날만큼 이렇게 언론이 거짓과 불의와 부정을 양산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마타도어, 마녀사냥, 흑백논리, 색깔 이념공세, 선정보도, 침소봉대 등 자기 입맛에 맞는 정치권력을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쏟아내는 작문들을 보노라면 국민들이 똑똑해 질 수밖에 없구나 하고 새삼 다짐을 거듭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국민이, 시민이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가 만들어야할 살맛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살맛나는 세상은 어떤 세상 ‘지금과 같은 대통령 중심의,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들씌울 대통령 책임제 체제인가. 즉 국민바보사회를 고수할 것인가, 세계와는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 중국, 일본,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먼 장래를 위해 미국과는 어떤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가, 전략적 유연성을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는 불변할 것인가, 그 위기 징후는 없는 것인가, 외자유치 시장 개방만이 살길인가,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는 어떨 것인가, 증권세, 종교세도 신설해야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국민국가 시대가 지속될 것이며 이 허위 이데올로기는 이 사회를 어떻게 피폐화 시키고 있는가, 진정 세계인이 되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통일로 나아갈 것인가, 양극화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토건(土建)국가를 어떻게 극복해갈 것인가, 우리의 20년, 50년, 100년 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올바른 언론이라면 이런 문제들로 신년벽두의 지면이 할애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들 뜻대로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제 언론은 정치권력까지 거머쥔 무소불위의 괴물로 이 땅을 유린할 것이다. (임옥상: www.oksanglim.com, 사단법인 문화우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