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한 현장기자가 썼다 끝내 지면에 반영되지 못한 글입니다. '폭도와 민란'이라는 제하의 <기자의 눈> 칼럼으로 쓰여진 이 글은, 기자된 본분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는 기자의 고뇌가 그대로 전해지는 좋은 글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언론은 정녕 잠든 것일까요.) "자식 같은 소도 죽이고 벼도 태웠소. 코방귀나 뀌었나. 이대론 죽을 것 같아 몸뚱이로 나섰는데 폭도라니. 폭도한테 뭘 묻겠다는 거요. 기사나 똑바로 쓰고 끊으세요." 24일 늦은 밤 충남의 한 농민회에 전화를 했다. 22일 집회 때문에 우리가 '폭도'로 내몬 농민들은 소주 한잔에 쓰린 속을 달래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는 분노 반, 흐느낌 반이었다. 느릿한 충청도 사투리가 투박하다. "잘난 서울사람만 데리고 사세요. 우린 어차피 이 나라 백성이 아니니까 맘대로 할거요. 두고 봅시다." 그 끝 말이 아릿했다. "29일 집회는 '민란(民亂)' 수준"일 거라는 지방 경찰의 얘기도 떠올랐다. 폭도와 민란…. 서점을 찾아 20년 만에 고등학교 국사 참고서를 펼쳤다. 진주 농민봉기 고부민란 동학혁명 등 과거 민란의 주인공은 늘 농민이었다. 조정은 이들을 폭도로 규정했고 어김없이 토벌군을 보내 엄정 대처했다. 2006년 11월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일한 차이는 역사는 민란의 원인(수탈과 개항)과 의의(폭정 항거와 반외세)를 소상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는 폭력시위의 원인(생존권)과 근본(한미 FTA)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깨부수고 불지르고 교통이 꽉꽉 막혔다는 사실에만 분노한다, 언론은 이를 부추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중대사다. 농민처럼 생존권이 걸렸다면 반대의견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참여정부'는 참여는커녕 농민의 절규에 거짓 귀머거리 시늉이다. 과거에도 소청(말로 청함) 벽서(벽보) 거세(납세거부) 등 농민의 소극적 저항에 귀를 막다 민란을 불렀다. 역시 무관심이 최근 시위의 폭력성을 키우는데도 이를 왜곡하는 보수언론에 힘 입어 정부는 백성의 머리를 벨 토벌군을 꾸리고 있다. 역사는 토벌군의 승리가 일시적이라고 설명한다. 최종결과는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다. 과연 한미 FTA 반대를 소수의 과격한 의견이라고 무시하고 진압하는 오늘을 훗날 역사는 뭐라고 기록할까. 부끄럽고 궁금하다. (고찬유; 기자, 한국일보 사회부, jutd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