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촉천민, 또 하나의 ‘전라도’가 된 전교조 [칼럼] 소비자 여론에 편승한 전교조 때리기는 이제 그만! 한국사회에 전교조를 저주하지 않는 세력이 없다. 수구세력, 개혁세력, 온건진보세력까지 모두 전교조를 적대시한다. 전교조는 마녀다. 전교조는 전라도다. 전교조는 또 하나의 불가촉천민이 되어가고 있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맹폭을 가하더니 얼마 전엔 오마이뉴스까지 전교조 비판 기사를 메인 최상단에 걸었다. 대통령이 전교조를 개혁의 최대 걸림돌로 생각한다는 건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청와대 출신의 김진경 씨도 비슷한 발언을 했고, 한겨레신문도 일정부분 그에 동조하는 듯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가히 사면초가다. 난 전교조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참기 힘들다. 엊그젠 밤하늘을 보면서 혼자 비애감에 젖기도 했다. 전교조의 고립은 한국사회 우경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빛이 안 보인다. 교육이 이 땅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 민주화 세력의 자기붕괴와 분열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1987년에 그들은 파쇼집단의 영구집권 기도를 분쇄했다. 그리고 92년부터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민주화세력의 엘리트그룹이 정권을 잡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 2004년 총선은 그 완결판이다. 문제는 집권민주화세력의 개혁방향이 자유화, 시장화였다는 거다. 그 결과 지금의 민심 파탄 사태를 낳았다. 추측컨대 민주화 운동권은 반독재 투쟁에 목숨을 거는 동안 미국식 자유주의 사고방식을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 90년경에 현실사회주의권이 망하자 민주화 세력은 자신이 젊었을 때 가졌던 ‘사회주의적 망상’을 버리고 미국과 시장주의의 압도적 위력에 굴복했다. 젊었을 때 가졌던 열망이 컸던 만큼 그 반동도 깊었다. (한·미 FTA편에 서는 민주화세력이 툭하면 상대에게 덮어씌우는 색깔론, 반미론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반동이 얼마나 강박적인가를 방증한다.) 90년경부터 탈근대라는 이름의 사상이 이 땅의 젊은 지식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시장주의, 자유주의, 탈근대 모두 각 개체의 자유를 강조한다. 국가 차원의 공공성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국가를 말하는 자는 박정희와 동일시되면서 ‘타도할 자’로 여겨졌다. 다양성 파쇼의 시대가 시작됐고 교육부문에선 교육체제의 다양화, 유연화, 각 개체(소비자)의 권한 강화가 시작됐다. 그것은 국가의 대대적인 퇴각을 낳았다. 국가의 퇴각은 오로지 국가만이 담보할 수 있는 그것, 바로 공공성의 퇴각을 초래했다. 공공성의 퇴각은 시장의 확대를 낳는다. 국가는 정치논리로 지배되지만 시장은 경제논리로 지배된다. 정치논리는 1인1표의 민주주의 원리고 경제논리는 1원1표의 강자지배 원리다. 국가가 경제논리, 시장논리로 재편되는 동안 민중은 차츰차츰 말라갔다. 민중이 말라가면서 내수도 말랐다. 내수가 마르면 문화다양성을 담보할 시장의 풍부함도 사라지고, 결국 다양성 파쇼는 문화적 획일화, 천박함을 부른다. 시장화 개혁은 아주 쉽게 민주화 개혁과 혼동된다. 시장화는 주주와 소비자를 선동하기 때문이다. 주주와 소비자는 자신들을 시민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오너 황제경영에 진저리가 난 국민들에게 주주가치 경영은 달콤한 문구였다.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은 그래서 먹혀들어갔다. 정권을 잡은 집권민주화 세력이나, 시민운동권에 남아 비판세력을 자임한 민주화 세력이나 자유화, 시장화의 시대정신을 공유한 것이다. 소액주주운동이 지지를 받고, 주주들의 권한이 강화되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국가사회가 파탄지경에 처한 것이다. 반면에 기업의 이익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당연히 그 이익은 모두 주주의 몫이었다. (한·미 FTA는 주주들의 권한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한국은 국가사회가 각 개인을 무시한 나라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을 무조건 진보와 동일시했다. 주주로서, 소유권자로서, 소비자로서 그동안 무시당했던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이 시장화 개혁이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집단으로 뭉쳐있던 사람들을 낱낱으로 쪼개 무한경쟁을 시키기 위해선 주주의식, 소유권자의식, 소비자의식이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강화된 개인의 자유, 권리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강한 주주, 강한 소비자, 부자들뿐이라는 걸 쉽게 깨닫지 못한다. 한·미 FTA는 소비자 선택권 강화 흐름의 결정판이다. 스크린쿼터 폐지는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선택할 자유를 국가정책으로 제한하지 말라는 거다. 박정희식 가부장체제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졌던 나라는 하나하나 쪼개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국가체제 해체를 결정적으로 가로막는 부문이 있다. 바로 교육부문이다. 그래서 거대한 공교육체제와 교원체제는 시장화 개혁 추진자들에게 눈에 가시가 된다. 그들은 어떻게든 교육체제를 유연화해 무한경쟁체제로 바꾸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늘리려 한다. 이 지점에서 시장화 교육개혁과 학부모들이 동맹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교원들은 구파쇼교육의 어두운 기억들을 뒤집어쓰고 혁파대상으로 전락한다. 공교육체제를 유연화하려는 개혁은 민주화 개혁과 동일시되고 그것에 저항하는 교원집단은 자신들의 철밥통만을 위해 개혁에 저항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으로 낙인찍힌다. 각종 평가는 공교육체제 유연화의 핵심 전제다. 평가를 통해 가격 꼬리표가 붙어야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유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교원평가, 학교평가, 학업성취도평가, 이 3대 평가를 통해 공교육체제는 산산이 부서진다. 국민들은 그렇게 확대된 선택권을 통해 보다 향상된 교육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 환상을 품지만, 그것은 망상일 뿐이다. 위에도 언급했든 유연화로 덕 볼 소비자는 오로지 강자들뿐이기 때문이다. 평가는 서열화를 초래하고, 경쟁을 초래한다. 경쟁과소가 아니라 경쟁과대가 문제인 한국 초중등 교육에서 지금보다 더 경쟁의 강도를 높이려는 개혁은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대학서열체제와 그로 인한 극단적인 입시경쟁, 입시교육의 폐해를 겪고 있는 이 나라에서 초중등체제의 유연화는 교육의 입시종속을 더 심화시키고, 초중등체제를 대학과 유사한 방식으로 서열화한다. 그 결과는 귀족사회의 부활이다. 대다수의 소비자는 일류 교육을 선택할 기회를 원천박탈당할 것이다. 성과급차등지급은 교원평가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연봉제로 나아가는 전 단계다. 그리고 그 평가는 지금과 같은 입시교육구조에서 학업성취도 평가와 연동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연봉제 학원 강사로 가는 방향이다. 교장공모제는 교장이 학교를 마치 CEO처럼 자율경영하게 경영권을 위탁하는 것이다. 경영했으면 경영성과를 평가 받아야 한다. 그것이 학교평가다. 그것 역시 학업성취도 평가와 연동된다. 결국 학교는 학원으로 변한다. 더 무서운 사실이 있다. 6.25 직후 한국 사회가 하향평준화 됐을 당시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는 그 아이들의 성실성과 최소한의 능력(암기력)을 재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2006년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는 전혀 다른 것을 가르는 척도가 된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재산이다. 초중등 체제가 유연화하고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커지면 학교가 학원으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학교서열과 교사서열이 학생들 부모 재산과 연동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금 대학엔 벌써 그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공영형 혁신학교는 교장공모제, 교원체제유연화, 연봉제, 교육과정유연화 등 일체의 유연화를 총집결시킨 결정판이다. 학부모들은 교장공모를 통해 자신들의 발언권과 선택권이 향상될 것을 예감하면서 개혁에 기대를 걸지만 그 끝엔 파국이 있을 뿐이다. 전교조는 초중등체제의 유연화를 가로막는 핵심 세력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 시장화 개혁을 추구하는 수구집단과 신주류 집권민주화세력으로부터 동시에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선택권이 강화되는 것을 전교조가 막고 있기 때문에 전교조에 불편한 감정을 갖는다. 이런 상황에서 오마이뉴스까지 메인 톱으로 전교조 비판 기사를 내보낸 건 매우 비감한 일이다. 전교조더러 ‘평가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야말로 차이를 무시하는 발상이다. 전교조는 ‘평가에 따른 서열화’를 거부할 뿐이다. 서열과 차이가 양립가능하다고 보는가? 차이는 서로 동등한 가치를 갖는 개체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일체의 차이를 무력화하는 주범은 한국의 대학서열체제다. 한국 초중등교육이 획일화되는 건 초중등교육체제가 유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학서열체제로 빚어지는 입시경쟁 때문이다. 자사고, 특목고, 무슨 학교를 만들어도 모두 입시 학원으로 전락한다. 이 상황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교육체제를 다그치면 입시만을 위한 더욱 극단적인 획일화가 초래될 뿐이다. 방과후학교는 대통령도 누차 말했듯이 사교육 수요의 흡수를 위한 것이다. 사교육 수요를 학교가 어떻게 흡수하겠는가? 학교가 학원이 될 때만 흡수 가능하다. 교사는 학교 학원화를 결코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것이 교사의 본분이다. 당연히 반대하는 것을 일컬어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몰아치는 사회 분위기를 탓하지는 못할망정 거꾸로 전교조를 원망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문제는 학교를 24시간 학원체제로 재편해도(교육소비자 학부모들은 틀림없이 찬성할 것이다) 사교육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서열체제와 입시무한경쟁체제에서 전 국민에게 제공되는 공교육은 절대 소수 족집게 학원 역할을 대행할 수 없다. 방과후학교 등으로 학교만을 통해서 입시 경쟁에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여기는 짓이다. 그런데 여기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역시 황당한 일이다. 집권민주화세력의 자유화, 시장화 개혁은 국가를 파탄지경으로 몰고 있다. 국민들 가슴엔 원망이 들끓고 있다. 그 결과 민주화세력은 자기붕괴의 길로 가고 있다. 한편 구 민주화세력 중에 일부는 자유화 개혁의 위험성을 남보다 일찍 깨달아 결연한 반대의 기치를 들었다. 그 대표적인 세력이 전교조다.    국민은 파쇼교육(억압)과 자유화 교육개혁(양극화)로 촉발된 원한을 전교조에게 폭발시키고 있다. 식자라면, 언론이라면 그 마녀사냥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본질을 밝혀야 한다. 전교조더러 시대변화와 국민감정에 편승하라니, 이 땅에 시장화, 자유화 거부 세력의 씨를 말릴 셈인가? 자유화 정권 3대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김영삼, 그의 명언이 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그렇다 새벽은 온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한국 사회에 부는 자유화의 광풍은 한·미 FTA로 극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그 광풍은 이미 새 시대를 잉태하고 있다. 1987년부터 2002년을 거쳐 2004년 탄핵, 총선까지 이르는 긴 시민혁명은 이제 끝이 보인다. 이젠 형식적 민주화가 아닌, 국가공동체 차원의 공공성을 쟁취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의 서장이 열린다. 구 민주화세력은 자유주의 세력과 공화주의 세력으로 분열할 것이다. 교육자유화를 거부하고 교육공공성을 외치는 전교조는 그 맨 앞 선에 서 있다. 지금은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각성한 언론부터라도 먼저 변화의 흐름을 감지해야 한다. 다시 바람이 불 것이다. 소비자 여론에 편승한 전교조 때리기는 이제 그만! 데일리서프라이즈 (하재근, 작가,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