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한국사회 그리고 언론 [김창룡의 미디어창]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공천비리 파문'으로 한동안 한국은 또 다시 돈과 얽힌 공천으로 온 사회가 시끄러울 것입니다. 언론은 서울에 이어 여타 지역에서 제2, 제3의 '공천장사 의혹'을 보도할 것이고 검찰은 바쁘게 소환,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액수만 4억4000만원, 21만달러(2억여원)이며 이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국회 3, 5선등 다선의원이고 부인은 의사 등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수억원씩 남의 돈을 여전히 받고나서 '몰랐다' '따로 보관했는데 찾아가지 않았다' '결백하다' 등 구구한 소리를 뒤늦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아마 이런 돈사건은 앞으로도 전국적으로 더 터져나올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국민은 낙심하고 분노할 것입니다. 없는 자의 생계형 비리가 아닌 화이트 칼라들, 가진자들의 탐욕적이고 불법적인 돈끌어모으기의 몰골을 더 보게 될 것입니다. 당연히 모두 사법처리돼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한번 살펴봐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다른 외국 사회와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이미 너무 '물질만능사회'가 돼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유한 정과 이웃을 챙기는 아름다운 전통문화가 어느덧 '돈만 최고'라는 그런 사회로 변해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습니다. 온 사회가 아파트 투기와 부동산 투기로 이른바 '재태크'의 노예가 되버린 것이 아닌지요.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자 되세요'가 최고의 인사가 되고 '10억 만들기 열풍'을 방송과 신문이 앞서서 부추겼습니다. 이달 들어서도 신문은 창간 특집으로 '인생재설계, 10억은 있어야'라는 제목으로 또 다시 10억 운운했습니다. 동아일보의  <[창간특집 3050의 실버디자인] "인생재설계? 10억은 있어야">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기사 제목과 달리 내용은 참고할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목만 보면 마치 10억 원이 없으면 인생재설계에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언론은 더 나아가 부자의 기준을 20, 30억 원 등으로 오직 돈으로만 잡고 있습니다. 언론은 사회의 풍조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도 하지만 때로는 견제, 제어하는 역할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직장인들에게 '10억'이라는 구체적 수치를 정해놓고 이것을 만들어야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돈은 필요한 것이고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은 것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돈 때문에 형제가 살인극을 펼치고 돈 때문에 관록의 정치인들이 수갑을 차고 국회의원들, 그 부인들이 때로는 차떼기로 때로는 골프가방에 때로는 미화로 둔갑시켜 케익박스로 주고받는 신종수법까지 등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성찰과 자제보다는 언론에서조차 '돈만이 최고'라는 식의 부풀리기는 한국 사회를 너무 각박하게 합니다. 외국에 나온 한국사람들조차 누가 무슨 차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동네에서 사는지를 따져서 사람을 만나거나 만나지 않는 식입니다. 돈있는 졸부들의 돈 씀씀이에는 철학이 없습니다. 오직 자기만, 자기가족만 잘먹고 잘살고 좋은 곳에서 공부하면 끝이라는 생각입니다.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불문률은 '돈빌려 달라고 할 때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돈 때문에 사기도 많이 당하고 거짓말이 팽배하니까요. 외국도 다 그렇고 돈이면 모두가 환장하는 것이 아니냐고요? 한국처럼 돈만 있으면 여중생도 성노리개로 살 수 있고 돈만 주면 시장, 군수, 국회의원도 할 수 있는 나라는 개도국 중 몇 나라에 불과합니다. 소위 경제선진국이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 한국처럼 돈이면 뭐든지 가능한 나라, 돈 때문에 모든 다른 중요한 가치를 희생시키는 나라는 드뭅니다. 정치에는 돈이 필요하고 인간의 탐욕에는 끝이 없습니다. 언론이 '돈을 섬기도록' 부추기는 사회는 불행합니다. 금융전문가들이야 '10억 만들기' 등의 목표로 컨설팅할 수 있겠지만 언론이 앞장서서 사회가치 기준을 돈에다 맞추는 것은 곤란합니다. 앞으로도 검은돈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정치인, 국회의원, 정치지망생, 화이트 칼라 등이 수도 없이 나올 것입니다. 돈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양극화가 심화된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적입니다. 돈은 유용한 수단일 뿐입니다. 돈 때문에 잃어버린 우리의 이웃과 친구, 밝은 미소, 우정, 행복… 이런 가치들이 뒤로 밀린다는 것은 사회적 발전이 아니라 문화적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이 있어도 이상이 없는 사람은 몰락의 길을 밟는다"고 했습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가난해서도 곤란하지만 돈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는 아닙니다. 10억이 있어도 더 끌어모으려고 다른 모든가치를 희생하는 불우한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너무 각박한데 언론마저 이렇게 '부자가 돼야 한다'고 다그치니 천박한 물질문화가 너무 팽배하는 것이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외국을 다녀보면 한국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는 이미 외국사회의 우스개감이 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눈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의 천박한 문화에 대해서는 자성의 소리를 내야할 때라고 봅니다. (김창룡 / 인제대학교 언론정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