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희의 곧은소리]  사립대가 사기업인가 이 나라의 신문에는 교육에 관한 기사가 유난히 많다. 최근 20일 동안 눈에 띈 교육관련 기사들을 꼽아보자. 변호사 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있는 린다 송희 뷰테푸어양은 키가 178cm라고 했다. 남자라 해도 보기 드물게 큰 키다.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까, 아버지를 닮아 키가 큰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뛰어 노는 친구 아이들과 달리 "오늘은 발레, 내일은 피아노 등 쉴 새없이 배워야 했다"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를 "외국인처럼 대했다". 그때마다 "화도 났지만, 이번에 한국에 와보니 이 학원, 저 학원 아이를 태워다 주는 한국의 엄마들을 보고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14일자·조선일보). 아마 한국 어머니들은 서양인 남편과 함께 서양인으로 산다해도 '극성 맹모(孟母)의 사명감'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오늘날 극성 맹모들 최대의 숙제는 아들·딸의 대학 입시다. 그래서 한국에서 첫손꼽는 명물이 우후죽순처럼 번창하고있는 학원이다. 전국의 학원 수는 자그마치 7만685개라고 한다(6일자·한겨레). 그러다 보니 돈푼이나 있는 신흥부유층의 맹모들은 코흘리개의 영어연수와 아들·딸 해외유학에 돈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상품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106달러. 그중 해외유학과 영어연수에 쓴 돈이 25억 달러였다(한국은행), 땀흘려 수출로 번 돈의 23.5%를 해외유학과 코흘리개의 영어 연수에 쏟아 부은 것이다. 지금 학교교육은 위기상황 영어능력시험 '토익'은 전 세계 60개국에서 치르고 있다. 이들 60개국 응시자의 40%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지난해의 경우 60개국 응시자 450만명 중 한국인이 183만명이었다 한다. 뼈빠지게 만든 수출품으로 벌어들인 금쪽같은 돈의 23.5%를 유학과 영어연수에 펑펑 쏟아 붓고, 영어능력시험을 치르는 전 세계 수험생의 40%가 한국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그것은 교육에 미치고, 해외유학과 영어를 우상으로 섬기는 '21세기형 사대주의'의 나라 한국과 얼빠진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것을 '교육열'의 이름으로 미화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사실상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심각한 위기상황에 있다. 그 첫 징표가 거대한 '학원 공화국'이다. 부동산 투기의 진원지였던 서울 강남과 부동산값이 뛴 것도 유명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교육 특구'라 해서 신흥부유층이 몰려든 게 발단이었다. 또 아이들을 공포로 내몰고 있는 학교폭력이 당국의 엄포를 비웃듯 활개치고 있다.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지난 10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충북 충주의 한 여고생은 이런 유서를 남겼다. "엄마, 아빠 효도 많이 하려고 했는데, 학교도 잘 다니고 싶었는데 학교 가기가 무서워…다음 세상에서도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 그땐 정말 효도 할게"-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유서다. 명분 없는 장외투쟁 만인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시험공부'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다. 그래서 대학과 학원은 이 나라 최고의 성장산업이 됐다. 그 과정에서 1990년대 초 연주창 터지듯 줄줄이 터진 사립대학의 부정입학 파동은 세상을 놀라게 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1987, 88년 2년 동안 467명을 부정입학 시키고 100억원이 넘는 돈을 갈퀴질한 대학도 있었다. 소수 일부 대학들을 빼고 많은 사립대학들은 대개 '오너 이사장'이나 '오너 총장'이 족벌을 앞세워 구멍가게 주무르듯 운영하고 있다. 지금 연래의 개혁과제였던 사립학교법 개정을 둘러싸고 천하대란 상태가 됐다. 지난 9일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 핵심쟁점은 '개방형 이사' 제도다. 반대의 이유는 "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원래 사립대학은 '육영사업'의 이름으로 "사재를 털어 사회에 기여한다"는 뜻으로 출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은 그 자체가 사기업과는 다른 공익제도로서 보호·육성되고 있다. 사립학교를 명분에 어울리도록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자는 교육법 개정에 반대할 이유는 어떤 맥락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또 군사독재에 저항해야 했던 시절의 야당흉내를 낸다고 해서 명분없는 장외투쟁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미디어오늘 (정경희 ; 언론인, 한국일보 기자, 외신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 1992년 '위암언론상', 2002년 '송건호 언론상' 수상. 1996년 8월부터 미디어오늘에 '곧은소리' 집필중.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 문화연구'(1990), '정경희의 곧은소리'(1999), '실록 막말시대-권언 카르텔의 해부'(2005)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