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동원의 저널리즘, 그 초라함과 비굴함   [전규찬 교수 기고] 신문·방송 총체적 부실 현 파국 야기한 주범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올 들어 최고의 매서운 추위라고 했지만, 눈발 센 오늘 북한산 계곡 얼음 아래 맑은 물은 여전히 고요히 흐른다. '황 교수팀'의 선전·공작 플레이가 아무리 난무해도, '국익'을 내세운 수구매체의 동원·왜곡 체계가 멋대로 횡행해도, 신화 만들기와 영웅 섬기기의 한파 아래 진실의 도도한 흐름은 엄연하게 존재한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죽음의 위협 세력과 결탁해 그 섬뜩한 냉기로 한국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공작에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막을 수 없는 진실에 대한 신념을 갖고, 그 믿음으로 밀고 나가면서 이데올로기 및 선전 해동의 작업에 참여할 것인가? 결단이 필요했다. 신문·방송 총체적 부실 현 파국 야기한 주범 안타깝게도 그러나 충분히 짐작했던 것처럼 이 땅의 방송과 신문, 그리고 이를 자기 명성 획득에 활용했던 '학자'와 '지식인', '전문가'들은 안전한 아지트(agitation beat)를 택했다. 과학적 신인(神人)의 품에 투항해 자기 안전, 즉 보신을 꾀했다. 의 취재윤리를 목청껏 비난함으로써, PD저널리즘을 이념 편향적인 사이비저널리즘으로 몰아세움으로써, MBC를 민영화 외 어떤 대책도 없는 극악한 빨갱이 소굴로 밀어붙임으로써, 신화화한 영웅, 신성시된 '국익'의 충실한 신민으로 복무했다. 여기서 그 기회주의 작태를 하나하나 되짚는 것은 무리다. YTN을 포함한 대다수 매체의 명백한 실패를 지적하고 자기비판하는 사후 담론들이 우후죽순 등장할 거다. 뒷북치기가 주 특기인 눈치 빠른 비평가들에게 미루자. 변신이 벌써 시작되지 않았는가? '이 무리했지'라던 냉소적인 학자들이 이제 언론자유를 주창하고 민주주의를 걱정하며 수구신문을 욕한다. 동아·중앙일보와 함께 황 교수팀의 전문가 뺨치는 여론 플레이에 춤추고, 그럼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선무공작 전위대로 활동하던 그 영용한 조선일보가 갑자기 혐오하던 진실규명을 떠든다. 반이성적이고 비이성적인, 실패한 진보의 합리적인 다중을 향한 테러라는 유사여론의 도식 완성에 공헌한 칼럼니스트는 또 이제 어떤 '진실' 이야기를 내놓을까? 신문과 방송의 총체적인 부실이 현 파국을 야기한 주범이라는 말로 충분하다. 부실한 윤리와 허약한 과학정신으로 똘똘 뭉친 황 교수팀을 신성화하고, 바로 그 거짓영웅과 지원국가, 불량자본의 영합을 성역화하며, '국익'을 내세워 이에 대한 맹목적 열광을 미학화한, 자유언론/언론자유의 시스템 실패를 예증한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정리하면 된다. 요컨대 이번 사태는 수준 미달인 황 교수팀의 문제인 동시에, 그 부실 프로젝트에 수백 억의 혈세를 투자한 정권의 문제인 동시에, 진실과 윤리, 상식을 못 좇아가는 매체의 문제다. 언론을 빙자한 선전체제, 여론을 가장한 동원체제, 진실을 왜곡한 공작체제의 문제다. 함량미달, 양심불량, 능력부족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낼 대로 드러낸 저널리즘의 문제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갈 길이 멀다. 아직까지 우리는 진실의 초입에 서있다. 황 교수팀이 자백한 실험의 비윤리성, 자인한 논문조작은 단지 일부에 불과하다. 부조리와 병폐, 모순과 거짓의 심원으로 내려갈 험난한 노정이 남아있다. 국가기계와 자본기계, 과학기계와 선전기계간 끈적한 근친관계, 그 음습한 사각동맹의 작동체계를 드러내고 해체할 일이다. 진달래 즈려밟고 가지 못한 병실의 '님'을 칭송하기 바빴던 방송에게, 과학은 과학에 맡겨야 한다는 그럴듯한 언설의 제조로 분주했던 신문에게 과연 몸통 규명의 작업을 맡길 수 있을까? 황 교수팀에게 여전히 발언의 기회를 주고, 선전플레이의 작동을 유예하고, 그럼으로써 상식혼란과 판단곤란의 상태를 "인의적 실수"로 부추기는 저질 방송, 후진 신문이 진실을 책임지는 것은 황 교수팀의 일원이 서울대 조사위원회에 참여하는 황당한 경우와 뭐가 다른가? 인터넷 '브릭'이야말로 훌륭한 저널리스트 정말로 방송과 신문이 언론의 자격을 되찾고자 한다면, 당장 할 게 있다.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느니 등의 거룩한 담론, 행동이 따르지 않는 변명은 치워라. 우선 빨리 숨어있는 비겁한 과학자들을 찾아 카메라 앞에 세워라. 위축된 증인을 '악의적 제보자'가 아닌 건강한 내부고발자로 보호하고, 억압된 증언이 공공의 장에서 자유로이 해방되도록 하라. 황 교수팀이 양산한, 도무지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합리적인 언어, 상식적인 언어, 대화적인 언어로 번역 서비스하라. 감지된 논리의 모순을 추적하라. 황 교수와 노 이사장, 김 연구원의 말을 그대로 혹은 왜곡해서 전하지 말고, 제발 그 말뜻을 제대로 판단해보라. 옮기지 말고 읽으라. 과학은 '있다'에 기초한 '이다'의 지적인 작업이다. 양식있는 과학자라면 그 외에는 절대 떠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언론이라 이름 붙이고 싶은 방송사나 신문사도 정확한 증거에 기초한 명백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보면, 인터넷 '브릭'의 청년과학자들이 여전히 훨씬 신뢰할만한 훌륭한 저널리스트, 언론인, 지식인이다. 아직까지도 황 교수팀 근처를 기웃거리는 기자들은 이들에 비해 진실에 대한 욕망이나 자유언론의 열정, 진리 발언의 용기라는 측면에서 아직까지는 새 발의 피다. 물론 자유언론/언론자유의 책무를 다한 극소수 매체, 기자들이야 듣기에 섭섭하겠지만, 솔직히 그게 진실 아닌가? (전규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