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황, 구한말과 유사...당연한 선택” 데일리서프라이즈, 신재우 (withwit@dailyseop.com)기자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은 대한민국 지배계급 중 생각이 트여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내가 지배세력이었다고 해도 ‘균형자론’을 택했을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 역사를 연구해온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2일 연세대에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좌파운동’이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같이 말하고, “미국이나 중국 한쪽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등거리 외교를 통해 헤게모니 교체시기에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밝혔다. 또한 이는 “현재 한반도 전쟁을 반대한다는 대한민국 모든 계급의 이해와 일치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균형자론을 십분 발휘해서 (국가를) 잘 옮겨탄다고 해도 한반도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때문에 한국내 진보세력은 미국과 중국의 진보세력과 연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히면서 ‘균형자론’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한반도 정세가 100년 전과 비슷하다는 분석과 관련, 박 교수는 “100년전의 상황은 구 헤게모니(중국)와 신 헤게모니(일본)가 교체된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현실과 유사하며, 실제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남한이 100년 전과 같은 약소국이 아니라 하나의 아류 제국주의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 차이때문에 주변국의 헤게모니 교체시 우리가 식민지화 되지는 않겠지만, 그 교체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교수의 이날 강연은 ‘민족주의가 진보와 인간해방에 왜 도움이 안되는가’라는 주제에 집중됐다. 그는 '민족주의 사상'이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사상은 아니었다고 학생들에게 전했다. 그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초기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은 대부분 유산층 자제들로서 그들의 목표는 제국주의 국가를 모방해 국민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세력을 몰아낼 수는 있었지만, 평등사회 건설이라는 ‘혁명’에는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이 대부분 토착지주들이었다는 사실도 진정한 ‘좌파’가 되기에 한계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베트남과 북한의 예를 들면서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간접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베트남의 좌파적 민족주의자들은 자신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의 군대훈련을 모방해서 대 프랑스 항전을 치렀고 결국은 프랑스를 몰아냈지만, 이후 그 민족주의자들은 기득권 세력으로서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시스템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는 베트남이 지금 한국인 남성의 섹스 관광을 묵인하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북한 역시 토지개혁을 남한보다 먼저 실시하는 등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를 밟아나가는 듯 했지만,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하는 등 일본 파시즘의 영향을 떨쳐버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80년 이후의 북한은 개인해방, 계급해방을 꿈 꿀 수 없는 국가였고, 북한에서 ‘개인’과 ‘민족’은 어디까지나 국가에 봉사하고 국가의 통일의 일꾼이 돼야 한다는 것에 불과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귀화 학자로서 한국 민족주의 연구에 매진해왔던 박 교수는 한국에는 ‘민족주의’가 없고 ‘국가주의’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인들은 한민족을 자랑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삼성과 엘지가 있는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한다”며 한국인들의 ‘국가주의’에 우려를 표시했다. 또한 한국사람들의 대 북한 인식은 ‘경멸’에 가깝다며 극우·보수 신문이 그런 ‘경멸’의 유포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경멸’이 한국의 젊은이들과 학자들에게도 퍼진다면, 통일 후에 남한 자본가가 북한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인식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대한민국이 ‘국가주의’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성취에 도취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강하게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 우위에 따라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반인간적인지 계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전 반자본주의 운동단체 '다함께'가 주최한 이번 강연회에는 500명이 넘는 학생 및 일반인들이 참여했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