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환의 취재파일] 침뜸 봉사 20년 구당 김남수를 말한다 박노해와 박원순이 김남수에게 축시와 축사 바친 까닭은? (정지환기자 시민의신문)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김남수. 1915년 전남 광산군(현재 장성군) 하남면에서 태어났으니, 그의 나이 어느덧 아흔이 넘었습니다. 10년만 있으면 백세가 되지만 건강은 젊은 사람 부럽지 않을 정도로 좋습니다. 얼굴에 검버섯 하나 없으며, 도리어 피부가 여성처럼 맑고 곱습니다. 그의 호(號)는 구당(灸堂)입니다. 직역하면 '뜸집'이 되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한학과 침구학을 전수 받았습니다. 홍릉에 위치한 그의 '뜸집'에는 새벽부터 환자들이 몰려오는데, 하루에 선착순으로 50명만 받는다고 합니다. 1인당 5만원을 받는다고 하니 일당만 2백50만원이 됩니다. (사진 : 환자에게 침을 놓고 있는 당대의 명의 구당 김남수 선생. ‘민중의료인’으로서의 그의 위대성은 일반인도 접근하기 쉬운 ‘무극보양뜸’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당 김남수 선생은 우리나라 침구(鍼灸) 분야에서 최고의 명의(名醫)입니다.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중의연구원 원장 손은택(孫恩澤) 씨는 '구기예오주(灸技譽五洲, 뜸 의술로 세계에 명성을 떨치셨네)'라는 내용이 담긴 친서를 그에게 보냈으며, 중의의약학회 비서장이자 중국침구학회 부회장인 진우방(陳佑邦) 씨는 그를 가리켜 '한국의 화타(華陀)'로 칭송하기까지 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오늘 구당 선생을 주목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일주일 중 절반의 시간을 떼어내어 봉사와 교육 활동에 투자하기 시작했지요. 그는 요즘에도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일당을 포기한 채 감사원·시민의신문·국회(의원회관 121호실) 등을 돌면서 무료 시술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 중에는 '단골'까지 생겼습니다. 한 기자에게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구당 침뜸 덕분에 의정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기까지 했다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을 비롯해 약 50명의 여야 의원이 121호실을 찾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열린우리당의 김덕규, 한명숙, 민병두, 유승희 의원, 한나라당의 이재오, 박계동, 김문수 의원,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강기갑, 최순영, 현애자 의원 등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 구당 선생이 그렇게 봉사 활동과 교육 활동을 한 것이 어느덧 각각 20년과 10년이 됐고, 그 사이에 그와 그의 '붕어빵'으로 불리는 약 1천5백명의 제자들은 가난한 노인들과 도서벽지 주민 등 약 24만명에게 무료 침구시술 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봉사 20주년과 교육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11월 20일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대우재단빌딩에서 열렸습니다. 시민의신문 이형모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념식에는 귀한 손님들의 얼굴이 눈에 많이 뜨였지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전국농민연대 정재돈 대표, 녹색대학 허병섭 총장, 김덕규 국회 부의장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사진 : 청년 시절의 구당. 부친에게 한학과 침구학을 전수 받았다.) 특히 미국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한편 미 대통령의 체육교육 특별고문으로도 활약한 로터리클럽 이준구 총재의 하모니카 축하 연주와 '노동자 시인'에서 '나눔 전도사'로 변신한 박노해 시인의 자작 축시 낭독은 참석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배워서 남 주자”는 침뜸 교육. 전수를 중시한 구당의 구호였다. 장준하와 김영삼 등 정치인도 그의 시술을 받았다. 그렇다면 최근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나눔운동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와 박노해 시인마저 축사와 축시를 바치게 만든 구당 선생의 저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봉사와 교육을 통해 나눔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해온 그의 짧지 않은 삶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첫 봉사를 떠나던 날을 생생하게 기록한, 최근 공개된 그의 일기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984년 10월 6일. 아침 4시에 일어났다. 30년 전부터 마음먹었던 내 일생의 소원이 시작되는 첫날이라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들뜬 마음 그대로 일어나 오늘부터 시작과 계획에 맞추어 가기 위하여 5시에 때 이른 아침밥을 먹었다. 어제 사놓았던 경부선 7시 통일호 2호 열차 29호석과 32호석 차표를 들고, 들뜬 마음이라 1시간 앞서 서울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은 개운했던 첫 봉사를 마친 구당 선생은 이렇게 심경을 밝힙니다. "나는 마음이 이렇게도 즐거울 수가 없었다. 피로함도 괴로움도 몰랐다. 그것은 내가 침구를 알고 난 후 지금까지 생각뿐이었고 해보지 못한 채로 지나왔던 것이 소원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시간 가는 것이 아쉽고 또 안타깝다. 하고자 하였던 소원의 첫걸음이기에 무엇에다 비할 수 없는 이 기쁨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렇다고 봉사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외 받은 사람들의 남루해진 육체를 만지면서 구당 선생은 만감이 교차했던 모양입니다. "여름이 오도록 목욕 한번 못하고 아파도 큰 병원 한번 못 가보고 허약하여 졌어도 보약 한번 못 먹어보고 허리가 구부러지고 허리뼈가 굳어져서 주먹 같은 혹 모양으로 퉁겨져 나왔을 때 그 맘이 어떻겠는가? 상상만 하여 보아도 가엽고 불쌍한 그 몸들에 내 손길이 가서 '시원하다' '허리가 이렇게 펴진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돈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을 것이며, 벼슬이 이와 같이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크게 외치고 싶은 이 순간들을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이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수십 년 동안 서서만 시술을 하다가 앉아서만 하루를 종일 궁둥이 땅에다 붙인 채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서울 사람들의 향수 냄새와는 다른 땀 냄새를 맡아가면서 치료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봉사 정신이기에 하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하여 수가(酬價)를 받고 한다면 서울 사람들의 몇 배의 요금을 준다 하여도 싫다 할 것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봉사의 기쁨을 구당 선생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마지막 남은 꿈이 하나 있습니다. 침뜸은 수천 년 동안 민간에서 활용되어 오면서 검증을 거듭하여 그 효과와 성능이 분명하게 입증된 의료기술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자 확신입니다. 그러나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갑자기 개정된 현행 의료법에 따라 침뜸은 불법 의료행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활동한 구당은 합법적인 침구사의 신분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이러한 법적 약점을 악용해 최근 일부 한의사들이 침구 봉사 활동마저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 구당 선생은 "봉사활동이 특정 이익집단의 고발로 위축되는 일이 추호도 없어야 한다"면서 "침뜸이 널리 활용되기 위해서는 현행 의료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도리어 서양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우리의 전통 의술 침뜸이 되살아나는, '나눔의 성자' 구당 선생의 소박하지만 너무나 절실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까요? 구당 바람 타고 부활한 조선의 명의 '허준'이 아니라 '허임'이외다 TV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던 역사 드라마 중의 하나가 '허준'이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허준은 침과 뜸을 활용해 병자를 고치는 명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편에는 선조 37년(1604년) 9월 23일에 당대 최고의 의관(醫官) 허준과 최고의 침의(鍼醫) 허임이 선조의 편두통을 함께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임금이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자 노의(老醫) 허준은 이렇게 답했다. "침의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經脈)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여기서 허준이 자신은 침 놓는 법을 모른다고 분명하게 밝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선조는 병풍을 치고 침을 놓으라고 명하였다. 왕세자와 의관만 방안에 남을 수 있었고, 나머지 대신들은 모두 퇴실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침을 들어 임금에게 시술한 주인공은 허임이었다. 허임은 자신이 일생 동안 축적했던 침구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1644년 조선 최초의 본격 침구 전문서인 <침구경험방>을 저술하기도 했다. 구당 김남수 선생을 따르는 뜸사랑 회원들은 지난 11월 20일 기념식에서 '허임선생 기념사업'을 제안하며 각계 인사의 동참을 호소했다. 유영훈 정통침뜸연구소 이사는 "<조선왕조실록>의 한쪽 구석에 이름 석자만 나와 있던 '장길산'이나 '대장금'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과 드라마의 힘이었다"면서 "앞으로 조선 최고의 침의 허임에 대한 재평가 작업을 벌여나감으로써 침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