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영원한 혁명가의 초상 ‘체 게바라 평전’   유성호 (bonjourpoem@dailyseop.com)기자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리얼리즘인가. 아니면 이 팍팍한 세상에서 현실가능성이 있는 무언가를 포착하고 그것에다 ‘정형성’이라는 기술적 방법으로 우리들의 가슴 깊숙한 곳에 있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해방감 따위를 시선 바깥으로 끌어내는 것인가. 나는 감히 단언한다. “나는 삶을 위해 꿈꾼다”고. 우리는 누구나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의 현실화를 위해 온 삶을 투여한다. 누구나 다 그러하다. 그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소유했건, 그가 얼마나 저렴한 품성을 지녔건, 그의 사지(四肢)가 불균형을 이루던 간에 우리는 모두 ‘꿈꾸는 자’이다. 희망은 길과 같은 것이다 제3세계.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들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지역이 바로 중남미와 동남아 등지이다. 그렇다면 제1세계는 어디인가. 또 제2세계는 어디란 말인가. 왜 우리는, 지구라는 그리 넉넉하지도 않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주제에, 이렇게 악착같이 편을 나누고 패거리를 주장하는가. 중남미의 역사는 우리의 근현대사와 아주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전에 제국주의자들 간의 나눠먹기에서 ‘표면적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해방’조차도 그리 유쾌하거나 바람직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경선처럼 어떤 머리 나쁜 자가 큰 자를 가지고 한 줄로 주욱 그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고로 제국주의자들은 무식하다. 예나 지금이나. 그 중에 쿠바라는 섬나라가 있다. 우리는 ‘섬나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일본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섬나라 중에서도 인도네시아와 쿠바와 같이 일종의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 곳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제국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매력적인 파이였다. 쿠바 역시 마찬가지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쿠바는 ‘인디오의 나라’에서 ‘노예의 나라’로 진화(?)한 국가다. 지배자의 역사는 더 흥미롭다. 스페인의 덜떨어진 제국주의자들이 인디오를 농장의 노예로 부려먹다가 인디오가 절멸할 위기에 처하자, 흑인 노예들을 수입(?)해다가 써먹은 흔치 않은 전력을 지닌 곳이 바로 쿠바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영어깨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Havana를 ‘하바나’로 읽는 경향이 있는데, 라틴어 계통에서는 단어의 처음에 오는 H는 발음하지 않는다)는 그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인들이 그곳을 지배할 때, 당연하게도 유럽풍의 거리를 조성해놨기 때문이다. 이 쿠바의 역사에서 스페인은 이제 ‘추억’의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유럽의 제국주의자보다 더 ‘천천히 악랄하게’ 그들에게 추근대고 있는 나라가 있다. 미국이다. 미제국주의의 침략 방식은 그들의 선배보다 더 정교하다. 미국인들이 쿠바에 들어온 명분은 어이없게도 ‘스페인의 폭압통치로부터 쿠바 인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였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바티스타. 요즘 미국 프로레슬링계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선수의 이름이 아니다. 이 이름은 쿠바 인민들의 집단기억 공간에 영원히 ‘저주’와 ‘폭정’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이름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이 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는 이디 아민 정도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전두환이라는 걸출한(?) 독재자가 있긴 하지만, 바티스타와 견준다면 마치 ‘반딧불을 보름달에 비교하는’ 격이다. 이 바티스타란 인간이 쿠바를 장기통치 하고 있을 때, 바다 건너 아르헨티나에서 한 의학도가 자신의 전공과는 다소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바로 ‘혁명’이라는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Ernesto Guevara de la Serna이다. ‘체 게바라’ 혹은 ‘체’라는 약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이름은 전세계적인 브랜드이자 ‘혁명을 꿈꾸고 그것을 이룩한 사람’의 상징으로 굳어져 있다. 체 게바라의 일생은 지나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그의 청년기적 여행담을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개봉되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흔히 청년기의 여행은 영혼의 풀밭을 기름지게 하는 훌륭한 거름이다. 대학을 다녀본 분들은 거의 다 ‘모꼬지(M.T)’라는 것을 다녀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모꼬지의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집단성’이다. 그 집단성은 곧 ‘공동체’를 의미한다.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과 마주한다. 그 일이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우리는 기꺼이 그 일을 한다. 그리고 평가 받는다. ‘저 놈 참 괜찮은 놈이야’라고. 그런데 만약에 말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본질이 우리가 꿈꾸고 바라는 것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면 어찌하겠는가. 그냥 참고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오류를 시정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겠는가. 전자에 속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권력지향적이고 물질숭배적인 경향을 보인다. 반면 후자에 속한 사람은 그 눈높이가 위쪽보다는 아래쪽을 향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들이 대개 가지고 있는 보잘 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榮辱)은 우리 자신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강제된 측면이 강하다. 그것은 우리가 무인도에 혼자 살아가는 로빈슨크루소가 아니라, 이 사회에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체 게바라의 눈높이는 언제나 자신 주위의 낮고 궁핍하며 잊혀진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가 왜 조국 아르헨티나를 놓아두고 말 그대로 ‘배 타고 물 건너 마다 건너서’ 이역만리 쿠바로 향했을까. 변화는 언제나 변방에서 태동하는 법이다. 중심이 공고한 곳에서는 혁명도 변혁도 할 수 없다. 당시 중남미에서 쿠바는 변방 그 자체였다. 더구나 그곳에는 체 게바라와 같이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와 그 친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고작 백 명도 되지 않는 인원, 더구나 무기조차 변변치 않은 그들이 바로 오랜 세월 공고하게 쿠바를 지배해 온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자신의 조국이 ‘해방’된 것에 만족해했지만, 체 게바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또 하나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왜? 어차피 게바라는 ‘체질적인 변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콩고로 여행을 간다던 그가 정작 자신의 몸을 드러낸 곳은 남미 최고의 오지국가, 볼리비아였다. 그는 ‘무쇠와 같이 단단한’ 볼리비아 농민들의 무관심의 벽을 저항의 수액으로 적시려 했다. 그러나 적들은 너무나 강고했고, 자신의 안마당을 빼앗겼다는 사실 때문에 이미 이성을 포기한 미국의 제국주의자들은 그의 목에 거액을 걸었다. 그리고 전문 추격부대까지 만들어서 그의 목숨줄을 조여갔다. 그리고 그는 볼리비아 밀림 속의 어느 허름한 학교에서 총살당했고, 그의 시신은 암매장되었다. 그의 무덤을 알고 있다는 주장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체 게바라는 ‘죽어서 살아난’ 영웅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혁명 성공 후의 쿠바에서 제공하는 알량한 지위에 만족하며 살아갔다면, 우리 마음속의 ‘체 게바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모든 기득권과 영욕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껏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체 게바라가 가고자 했던 길은 사회주의니 뭐니 하는 말로 단정지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 길은 바로 ‘전 인류가 하나의 공동체적 자유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그 자유를 어떻게 쟁취하며, 유지하고 보수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반 고민하지 않는다. 마치 열린우리당의 당의장 경선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안티를 유일한 전략과 전술로 들고 나온 저 잘난 386들처럼 말이다. 주어진 것에 대해서만 고민하지 말고, 쟁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 가슴 뜨겁게 고민하라. 그럴 때 그 사람의 삶은 보석처럼 빛날 것이다. 마치 체 게바라가 남겼다는 이 한 마디처럼 말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체 게바라의 연설 중에서 ⓒ 데일리서프라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