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평생동안 좋아하고 찬양한 사람이 이마누엘 칸트다. 그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인간의 양심이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것이라며 늘 감탄해 왔다. 인간 양심의 절대성을 인정한 그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행위자체의 도덕성에 무게중심을 뒀다. 따라서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벤덤, 밀 등이 주창한 공리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칸트의 윤리관에 따르면 언론행위에 있어 취재원에게 알리지 않고 이른바 몰래카메라를 동원한 취재의 경우 아무리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든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같은 칸트적인 해석은 예외나 상황논리를 일축한다는 점에서 언론 취재행위에 있어 일관성있는 윤리기준을 제시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인들은 이같은 칸트의 윤리관을 융통성 없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수긍하기 힘들다고 한다. 현대사회는 여러가지 규범이 복잡하게 혼재돼 있어 취재윤리의 절대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이다. 방송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방송심의규정 개정안은 몰래카메라를 원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19조 3항은 ‘방송은 흥미를 목적으로 특정인의 사생활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있었으나 개정안에는 ‘흥미를 목적으로’라는 문구를 삭제,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뉴스나 시사교양 프로에서도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될 경우 ‘카메라출동’ 등 사회고발 뉴스나 프로그램에서 탐사보도를 할 수 없게 돼 권력에 대한 감시나 비리고발 기능은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이 우려된다. 이것은 결국 절차가 우선이냐, 결과가 더 소중하느냐, 즉 공리주의가 우선이냐 아니면 취재윤리의 절대성 추구가 우선이냐의 차이에서 비롯된 논란이다. 몰래카메라를 사용한 취재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대형 슈퍼체인 ‘푸드 라이언’ 사례가 상징적인 예가 된다. 1997년 미국 ABC 방송은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스보로에 있는 푸드 라이언 체인점이 유효기간 표시를 고쳐 유효기간이 지난 고기를 판다는 정보를 입수해 자사의 기자와 PD를 이른바 위장취업시키는 수법으로 들여보낸다. 이들은 유효기간 표시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을 몰래카메라에 낱낱이 담았고 ABC 간판 고발 프로그램인 ‘프라임타임 라이브’는 이를 특종 보도한다. 전 미국이 발칵 뒤집어졌음은 물론이다. 미 전역의 푸드 라이언 체인점에는 시민들이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며 사법당국이 수사에 나서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푸드 라이언은 되레 ABC를 사유재산 침해(trespass)로 고소했고 지방법원은 5백50만달러라는 거액을 ABC가 지불하라며 푸드 라이언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몇년에 걸친 엎치락뒤치락 재판끝에 연방법원이 ABC의 손을 마지막에 들어줌으로써 재판은 종지부를 찍었다. 몰래카메라의 취재기준을 정하는 일은 지난한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ABC의 과정을 살펴보면 정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도덕적 명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도덕한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경우가 언론에서는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테러범이나 인질범의 취재 과정에서 몰래카메라를 동원할 때 과연 그러한 행위가 비윤리적이고 개인의 사생활 침해이므로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방송위원회의 사려깊은 결정이 아쉽다. 〈김동률 언론학 박사·매체경영학〉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