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글은 지난 7월 15일,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작품 F 9.11을 사내 공개관람한 뒤, 본사 홍희경 차장이 회사 게시판에 올린 리뷰를 옮겨온 것입니다.) 늘 입는 야구모자와 헐렁한 티셔츠 대신 턱시도를 곱게 차려입은 마이클 무어 감독은 칸에서 황금종려상이라는 선물을 받아갔다. 덕분에 원배급사 디즈니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모종의 사유로 배급을 포기하는 위기 정도는 거뜬히 극복할 수 있었고,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화가 흥행에도 성공하는 우수사례로까지 기재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진실이 '정치'와 그 뒤를 버티는 '돈'에 의해 가려진다는 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부쉬의 낙선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다고 평가받고, 박스 오피스 상위에 랭크되기까지 하는 등, 그 자체가 오히려 '정치'의 힘을 발휘하고 '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은 흔치 않다. 마이클 무어, 그가 도대체 어떤 일을 해낸 것일까. "멍청한 그 - 그래서 결심했다. 남들처럼 놀기로" 영화감독에게 있어 가장 큰 재산이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이라고 한다면, 마이클 무어는 복받은 감독이다. '부쉬에게 올해의 최우수 코미디 배우상을 주고싶다'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의 심사평에 모든 관객들은 공감을 표하였다. 부쉬라는 코미디 배우는 '멍청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다. 영화는 그의 대통령 당선 시점으로 돌아가 '꿈이 아니었을까?'라고 내뱉는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환상'이 아니라 '악몽'이었다. 멍청한 부쉬는 대통령감이 되지않는, 아니 되어서는 안되는 인간인데, 대통령으로 뽑아버렸다는 회한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그게 악몽의 순간인지도 모른채 떠들석해 있는 '멍청한' 인간들의 모습 속에 밴에플랙, 드니로, 스티비원더가 보인다. '꿈'을 먹고 산다는 헐리우드 스타들, 그들이 '악몽'의 그 현장 속에 보인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헐리우드 스타들은 스크린에서 관객을 속이고 있지만, 그들은 정치판이라는 더 큰 연막 속에서 속고 있다. 진실은 과연 어디에?)    멍청한 부쉬에 대한 조롱의 백미는 이거다. 부쉬는 대통령 당선이 되긴 했지만, 각계의 저항에 직면하여 취임행렬부터 연일 계속된 시위대의 데모에 제대로 된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된다. 그 때 부쉬의 선택은 바로 이거란다. '그래서 결심했다. 남들처럼 놀기로!!!' -_-^ 취임 후 8개월 동안 그가 한 가장 큰 일은 휴가였다. 당시 재임기간의 반 정도를 휴가지에서 카우보이 흉내와 골프놀이로 보내는 부쉬의 모습은 헛웃음을 자아낸다.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무어가 했던 인터뷰 내용이 떠오른다. "부쉬에게 장점이 없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왜요.. 그는 아주 좋은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개도 잘 돌보고, 골프와 낚시를 아주 좋아하지요...."-_-;;;) 이렇듯 위트를 섞은 설득력이 강점인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부쉬라는 좋은 소재를 마음껏 주무르며 빛을 더 발한다. 정치풍자의 재미는 '헤딩라인 뉴스'가 최고인줄 알았더니, 긴 다큐멘터리에 그보다 더한 재미가 있을 줄이야! 때론 요즘 유행하는 패러디 같이 의도적인 재미를 노리기도 하지만, 존재 그 자체들이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많다. 9/11 사건 후 당연히 시행되어야할 빈 라덴 일가들의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채 오히려 당국의 보호 아래 당당히 출국한 의혹들은, 피의자의 집에 찾아와 가족들을 상대로 "당신들은 알고 있었지? 어디에 있는 거지?"라고 추궁하는 옛날 영화 속의 경찰들의 모습과 대비를 시킨 것은 의도적인 재미를 노린 사례이다. 한편 9/11 당시 한 초등학교에 방문한 부쉬는 사건 보고를 받고도 무려 7분동안 '내 친구 염소'라는 동화책을 펴든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는 모습은 사실이 주는 재미이다. 보고받은 순간 별 놀람도 없이 '정말 왔네..'정도의 반응만 보이고, 눈만 꿈벅거리고 앉아 동요를 따라 부르고만 있는 부쉬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다. 무어의 나레이션은 '부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신속히 대피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보좌관도 없었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쪽팔리다였나?'로 이어진다. 영화 속 부쉬의 모습은 쪽팔리는게 뭔지 알기나 할까도 의문스럽게 보인다. "거짓말하는 자 - 남을 죽이는 자는, 자신이 죽는다" 부쉬의 멍청함으로 인한 재미로 이 다큐멘터리가 그쳤다면, 몰래 카메라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화씨 9/11]은 부쉬의 '거짓말'과 그 뒤의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대형살상무기의 존재를 시종일관 주장하고, 이라크인의 자유를 원한다는 명분을 외치는 부쉬와 그 일당-_-;;들의 거짓말은 백악관을 떠난 현장에서 어김없이 드러난다. 폭격이 가해지는 순간 해맑게 웃고있던 이라크 어린이들의 모습과, 복면을 쓴 채 조롱당하는 이라크인 포로들과, 이유없이 죽어가는 이라크인 여자들이 스크린에 차례로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팔다리가 잘려진 미군 병사들, 아직도 모르핀을 맞아야만 고통이 멈춘다는 부상병들, 자식을 잃고 눈물짓는 미군 전사병의 부모들의 모습도 보여진다. '나는 아들과 남편과 부모를 잃어버린 슬픔이 뭔지는 모르지만...'이라는 부쉬의 기자회견과 '애국법이 뭔지 읽어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엔 우리는 매우 바쁘거든요.'라는 의원의 인터뷰는 전쟁터의 참상과 대비되어 분노를 자아낸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도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겁니다'라는 참전병의 목소리를 그들만 못듣는 것일까? '남을 죽이는 자는 자신이 죽는다'라는 말을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까. '조국의 미래를 위해 전장으로 나아가자'는 선동은 실제 참전병사들의 깎인 봉급과 줄어든 의료지원이라는 현실과 대비되고, 테러의 위험에 인권까지 양보하는 국민들의 불편함과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라이터 소지가 허용되게 만든 담배업체의 로비가 대비된다. 군수업체의 배를 불리게하는 막대한 참전비용과 예산삭감으로 무주공산으로 무방비하게 비워놓은 국경의 허술한 경비실태가 대비된다. [화씨 9/11]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테러의 위협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아니라, 테러의 위협으로 인한 공포로 국민들이 정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뒤의 진실 - This is a good chance" 부쉬의 멍청함과 부쉬의 거짓말을 보여준 무어는 이제 멍청한 부쉬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진실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부쉬의 경제적 배경에 있는 사우디의 자금줄과, 정치적으로 뒤를 받쳐주는 군수업체의 이권 등이 '미국을 침략한 적도, 침략하겠다고 위협한 적도 전혀 없는, 주권국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침략하게 만들었다고 고발한다. 미군의 철저한 호위를 받고 진행되는 석유 시추 장면은 그 핵심이다. 한 군수업체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몰라도, 전쟁은 우리에겐 좋은 기회입니다.' 전쟁터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대부분의 병사들은 미국 내 빈민층 출신이다. 일자리도 없고, 배우지도 못한 그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부쉬는 선상에서 승전파티를 연다. 375명의 의원 중 단 한 명만 자식을 이라크로 보냈다는 자료를 들고 무어는 의사당으로 무조건 돌진한다. 조국을 위해 자식을 참전시키라는 무어의 제안에 의원들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한다. '전쟁이 자기 조국의 승리를 위한 것이라는 건 거짓말이다. 전쟁은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미군 전사병의 어머니는 그들 대신 내 아들이 죽었다고 울고, 이라크 어머니는 알라신을 향해 살려달라고 외치는 동안 부쉬는 골프장에서 드라이버샷이 잘 안맞았다며 투덜거리고 있다. "두번은 안 속아 - 남을 속이는 자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 영화가 진실을 알리는 차원을 넘어서 당리당략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무어는 노골적으로 부쉬의 낙선을 위해 뛴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 부쉬가 낙선할 경우 가장 큰 공신으로 벌써부터 얘기되고 있다. 칸영화제가 아니라 국내 영화제라고 해도, 이렇게 뚜렷한 '편파성'을 지닌 영화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이의의 여지가 있다. 영화가 말하는 바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철저한 공화당원이었는데, 다음엔 민주당을 지지할 겁니다'라는 인터뷰가 나올 때는 다소 거북스럽기도 하다. 부쉬 배경에 있는 사우디 세력들에 대해 칼을 꺼냈는가 싶더니 슬쩍 다른 아이템으로 넘어가는듯한  부분도 마음에 차지는 않는다. '신강균의 사실은'이었다면 이보다 더 철저하게 따져줬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미국인에 의해 이런 이야기가 파헤쳐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칸영화제의 수상은 미국을 티껍게 보는 프랑스인들의 후원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미국 내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R등급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가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반증이다. 무어는 '남을 속이는 자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부쉬에게 '한번 속지 두번 속으랴'는 말로 대꾸한다. 부쉬(사실은 부쉬를 조정하는 그 배후)에게 속고 있다는 걸 아는 미국인이 제발 많길 바란다. 영화가 끝난 후 함께 본 후배가 나에게 묻는다. "저기.. 언니.. 이 영화.. 사실이에요?" 그럼.. 다큐멘터리잖어.. "아니. 그건 아는데요.. 그래도 좀.. 이야기를 만든 부분도 있겠죠? 설마 정말 저렇진 않겠죠?" 아.. 한 쪽을 강조해서 얘기를 풀어나간 점은 있겠지... 하지만 없는 걸 만들거나 그러지는 않지.. 장면들도 다 있는 그대로고.. 편집은 자의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 대답에 이 후배 기가막히다는 듯이 대답한다. "정말이에요? 진짜 이 영화가 사실이라면.. 부쉬 진짜 개새끼네!!!! ㅡㅡ;;;"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은 너무 많다. 공정성이니 편파성이니를 운운하기 전에, 우선 알리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80년 광주의 일이 세상에 드러날 때 그 참혹한 진실 앞에 편파성이란 단어가 떠오를 여지가 있던가. 우리도 역시 아직도 얼마나 많이 속고 살고 있단 말이던가. 한번은 속아도 두번은 속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미국에서만 필요한건 아니다. p.s) 1. 이 영화에서 발견한 또다른 진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것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부쉬가 당선이후 처했던 상황에 있었다. 하원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그럼에도 어떤 상원의원도 서명에 동참하지 않아 모두 기각되고, 그것이 당시 상원위원장의 직함을 갖고 있던 앨 고어의 손에서 의사봉이 두드려지고.. 시위대로 인해 취임행렬도 제대로 치뤄지지 못하고.. 이런 정황이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나? 우리 나라에선 이런 건 관심에서 제외된 거였나? 아니, 권력에 도전하는 이런 행위는 남의 나라 일이지만 차단해버리는 건가? 혹시 다들 알았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2. TV 앞에 서는 정치인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이어 마이크를 끼고, 분첩을 바르고, 카메라 앞에 선 그들... 시금치를 먹을 때만 뽀빠이 힘이 세지듯, 그들도 미디어를 먹고 살아가는건가하는 생각이 퍼뜩! 3.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만드시는 분들.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아.. 제가 좋아하는 "신강균의 사실은"도요.. ^^ (진실을 진실이라 말하고 거짓을 거짓이라 말하는 호진호거가 어찌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압니다요..) (주: 홍희경씨는 본사 차장으로 mbc 프로덕션에 근문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