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국신문의 스캔들 보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 언론처럼 스캔들을 좋아하는 언론도 없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스캔들 기사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스캔들은 있어도 제대로 된 스캔들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 언론은 스포츠지나 연예지는 말할 것 없고 내로라 하는 종합일간지들도 스캔들 기사에 목을 메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명색이 종합지고 권위지를 자임하는 신문들이 이럴 수 있느냐는 비난과 비판도 많다. 하지만 한국 신문들이 스캔들 기사에 재미를 붙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자 같은 말씀을 백날 해보았자 한국언론의 스캔들 취향은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 정작 문제는 제대로 된 스캔들 기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이것은 사건 기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격 스캔들 기사도 아닌, 정체불명의 미스터리 추리소설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언저리만 맴돈 고현정 스캔들 최근의 사례를 보자. 최근 단연 화제 집중의 스캔들 기사는 고현정 포르셰 도난 사건이다. 톱 탤런트 출신으로 재벌가의 며느리인 고현정씨가 심야에 고급 외제승용차인 포르셰를 도난 당했다가 찾았다고 한다. 그 자체만으로는 화젯거리가 된다해도 이른바 '휴지통' 감이다. 문제는 도둑들이 진술한 정황이 야릇한데다가 고씨의 진술이 도둑들의 진술과 엇갈린 것. 고씨는 10월 25일 새벽 3시경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한강 둔치에 세워둔 차를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도둑들은 10월 24일 저녁 10시경 고씨와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린 것을 보고 키가 꽂힌 차를 그대로 몰고 달아났다고 한다. 범인은 6일만에 검거됐다. 도난 사건만으로는 그리 커질 기사가 아니다. 그런데도 기사가 커졌다. 고씨의 해명에 의구심이 드는데다가 도둑들의 진술 내용에 따르자면 스캔들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11월 14일자 신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탤런트 출신 재벌가 며느리(가), 한밤에 한강 나갔다(가) 1억대 외제차(를) 도난(당했다가) 6일만에 되찾은(중앙일보) 별 볼 일 없는 이야기가 "새벽 3시… 한강둔치… 대리운전… 왜 그곳에… 누구와…"(동아일보) 함께 있었던 것인지 의문 투성이의 스캔들로 비화했다. 마침내 경찰까지 동원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물어보진 않았지만 우리기 보기에 K와 동승했던 '운전석 남자'는 대리 운전자는 아닌 것 같다"(문화일보)고 보도했다. 하지만 기껏해야 여기까지가 전부다. 이 기사가 본격적인 스캔들 기사가 되자면 이 남자가 누구냐가 중요하다. 고씨 진술대로 대리운전자였던 것인지, 아니면 고씨와 모종의 관계가 의심되는 그 어떤 사람인지 여부는 가려줘야 한다. 그래야 스캔들이 되더라도 말이 된다. 또 독자의 재미와 흥미를 위해서라면 도둑들한테서 확인하든, 고씨 주변 취재를 통해서건 어떻게든 그 남자가 누구인지, 더 나아가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주는 서비스 정신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사는 편하게도 경찰 말이나 인용하는 식으로 '아마도 그럴 것'이라는 개그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조루도 이런 조루가 없다. 화끈하지도, 정교하지도 못한 스캔들 보도 전두환씨 둘째아들 전재용 씨와 P모 탤런트 연루설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지난 11월 13일자 대다수 신문들은 일제히 P모 탤런트가 전재용씨 100억원 괴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배경이 궁금하다는 것인데, 지난해 3월부터 올 4월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쳐 전씨와 P씨가 출국한 일정과 행선지가 똑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일보는 한 때 "검찰이 자금 흐름을 쫓는 과정에서 A씨(조선일보는 탤런트 박모양을 A씨라고 이니셜 처리했다)에게 수표 등이 흘러간 단서를 포착, A씨의 행적을 쫒게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부인하자 "검찰이 A씨의 행적을 쫓게 된 이유가 재용 씨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단서가 포착된 것인지, 주변인사들의 전언에 따른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러다 보니 검찰 내사의 동기는 사라지고 스캔들만 남은 꼴이 됐다. 두사람이 싱가포르, 홍콩, 일본, 미국을 다녀온 기간이 일치해 검찰이 "이 탤런트가 단순한 친분관계인지, 사업상 연관도 있는지를 캐고 있"는데 "재용 씨의 자금흐름을 쫒는 과정에서 이 탤런트와 관련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경향신문)는 것이다. 결국 전재용 씨의 괴자금이 이 탤런트에게 들어갔는지, 검찰이 그 때문에 내사 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몇 차례나 해외를 같이 다녀온 '수상한 관계' 인 것 같다는 게 이들 기사의 포인트다. 하지만 이들 기사 역시 이 수준에서 그만이다. 고현정씨 포르셰 도난사건 때는 실명으로 보도해 그나마 궁금증이라도 풀어주었지만 전재용씨 탤런트 스캔들 기사는 모든 신문들이 철저하게 익명으로 일관해 언론계나 연예계에 별도의 소식통 없는 사람들로서는 궁금증만 더 하게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 기사가 사실은 주간지인 일요신문에 난 내용을 고스란히 베낀 것이라는 점이다. 일요신문은 11월 11일 발행된 지령 600호 기념특집 1면 머릿기사 <단독확인: 전두환 차남 전재용-톱탤런트 A양 "수상하다">에서 전씨와 이 탤런트의 수상한(?) 해외 나들이의 전모를 보도한 바 있다. 결국 이들 신문의 보도는 전혀 새로운 내용 없이 일요신문이 보도한 '전재용과 탤런트 P모양 스캔들'을 그야말로 스캔들 수준에서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화끈하지도, 그렇다고 정교하지도 못한 스캔들 기사, 그것도 주간지에 나온 것을 베끼거나 경찰의 수사 자료나 받아 적는 수준이 종합일간지의 스캔들 보도 수준인 셈이다. 또 어디 그것이 스캔들 보도 수준이기만 하겠는가? 종합 일간지 체면 살려준 한국일보 기사 사실 스캔들 기사라는 것이 그렇다. 읽는 사람, 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서 그렇지, 취재하고 기사 쓰는 입장에서는 여간 쉽지 않은 게 스캔들 기사다. 날카로운 센스, 집요한 추적, 번뜩이는 순간 포착, 열정 등 사건 기자에게 요구되는 온갖 덕목을 고루 갖춰야만 이른바 파파라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한국 신문에는 스캔들 기사는 있어도 정작 파파라치는 없다는 말이 나올 만 하다. 아무튼 이 글을 다시 쓸 때(사실 이 기사는 하루 전에 작성했지만 파일이 몽땅 날아가 버려 다시 쓰고 있다) 반가운 기사 하나를 접했다. 오늘(11월 18일)자 한국일보 기사다. 전재용 씨의 괴자금 가운데 세탁된 비자금이 탤런트 P모씨와 P모씨 가족의 계좌에 유입된 사실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는 무엇보다 스캔들 수준에 머물지 않은 기자의 관심과 취재력이 돋보인다. 평소에도 사건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국일보 사회부다. 어쨌든 한국일보의 이 기사는 베끼기 수준의 스캔들 기사를 사건 기사 반열로 업그레이드해 그나마 종합지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 한국일보는 전재용 씨와 P모 탤런트 연계설을 첫 보도할 때 유일하게 '일요신문'을 인용해 보도한  신문이었다. 다음날 다른 신문들이 한국일보의 이 기사를 일제히 받아쓴 것은 물론이다. 백명규/ 미디어오늘, 객원 논설위원 2003년 11월 19일 11:4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