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를 보면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 다 정치랍시고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구닥다리 풍으로 말하자면, 정치란 사람들을 다스리는, 그것도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이다. 이때 ‘사람들’이라고 하면 대체로 정치‘인’들 자신을 제외하고 이들의 지배 대상이 되는 백성들, 곧 일반 국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 나는 정치가와 국민 사이에 이런 위계적 지배관계를 설정하는 정치관에는 반대하지만 정치에서 없어서 안 될 요인을 내 자신에게나마 상기시키기 위해 이런 보수전통적 정치관으로 원론적인 사고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뭘 말하려고 하는가 우선 정치하는 사람의 사고틀은 자기보다는 ‘남’을 생각하도록 짜여야 한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바라는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도 그의 정신은 타자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 타자의 범위는 정치인이 직접 그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사회집단, 그 자신의 활동 터전으로 지켜야 하는 이 국가의 국민, 나아가 이 지구에서 공동으로 살아갈 인류까지 뻗어나간다. 이런 타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이윤과 부를 짜내도록 생각하는 일에 열중하는 이들이 경제인이다. 같은 타자들을 대상으로 정치인은 이 타자들에게서 생겨나는 여러 문제들이 그들의 삶을 방해하거나 파괴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해법을 창출하거나, 나아가 이들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큰 목표를 제시하여 추진하는 일에 골몰한다. 이 점에서 정치인의 사고방식이나 방향은 경제인과 구별된다. 정치인은 대국적 판단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이 판단이 제대로 맞아떨어져 관련된 집단이나 국민, 나아가 인류로부터 충성이나 동의나 호응을 받을 때 올바르게 다스렸다는 말을 듣는다. 다시 말해 정치인의 직업적 능력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판단할 줄 아는 것’이다. 1989년 11월9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날이다. 당시 폴란드에 가 있던 독일 총리 헬무트 콜은 바르샤바에서 야밤에 헬리콥터를 타고 베를린 쇠네베르크 시청사에 날아와 열광하는 동서 베를린 군중에 합류했다. 이미 그 20년 전에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는 마침 본에서 이사하던 중이었는데도 이삿짐을 팽개치고 베를린으로 날아왔다. 100㎏이 넘는 거구의 콜이나 70이 넘은 고령의 브란트가 그렇게 빨리 역사의 흐름이 뒤바뀌는 현장에 날아와 거대한 시민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보고 사람 겉만 봐서는 얼마나 빨리 움직일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야말로 2차대전 후 전범국가로 낙인찍혔던 독일에 단 한번 주어진 호기라고 ‘판단’하여 1년도 채 안 된 90년 10월3일 마침내 동서독 통일이라는 불가능의 ‘위업’을 창출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들은 물러나거나 숨질 때까지 ‘권력자’였고, 단순한 정치인의 차원을 넘어 무엇보다 정치로 일가를 이룬 정치‘가’가 되었다. 우리에게 정치가가 있는가 우리 정치인들은 이렇게 남을 두고 올바로 판단하고 있는가 10월에 우리는 해방 이래 최대 간첩 사건이 터졌다는 말에 공포스러웠다. 10억원 단위로 돈 먹은 측근 때문에 현직 대통령이 재신임을 묻겠다는 말에 놀랐다가, 그것으로 즉각 대통령 ‘탄핵’을 하겠다고 나서는 거대 야당의 호기에 숨을 죽였다. 그런데 100억원을 갖다 쓴 이 야당은 자기가 받은 사실을 수긍했으면 됐지 왜 자꾸 캐느냐고 짜증내고는 빨리 남이나 파헤치라고 졸라댄다. 이젠 놀라지도 않고 냉소만 나온다. 자기 일을 두고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이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현재의 정치권을 대폭 갈아치워야 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단지 나이가 많거나 과거 행적이 부도덕해서가 아니다. 여야 또는 지방이나 중앙을 막론하고 정치인으로서 직업적 기본 자질, 곧 판단과 분별력이 문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공급해 지도력을 확보하기보다 유권자에게 돈이나 편익, 또는 지역감정이나 건네는 얼치기 봉사정신으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곤란하다. 정치 안하는, 아니 정치 못하는 정치인은 제발 물러가라!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