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을 놓고 해법이 제 각각이다. 하루 아침에 공당의 주장이 뒤집히는 것은 물론이고 언론사도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만큼이나 입장이 바뀌고 있다. 국민이 불안한 것은 재신임투표 그 자체라기보다는 줏대도 소신도 없는 여론 선도가들의 조변석개식 주장이다. 재신임의 해법은 전적으로 이러한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계기는 노대통령이 측근의 비리 연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을 한 데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이같은 중대결심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행자부 장관 해임안 가결,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야당의 대통령 흔들기는 국정혼란의 시작이지 결코 끝이 아니었다. 낮은 대통령의 지지도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로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야당이 반대하는 한 대통령 홀로 국민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은 ‘선(先) 진실규명 후(後) 재신임’을 주장하고 있고, 민주당은 위헌임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학자들도 합헌 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국민투표가 관철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투표를 포기할 경우 리더십이 훼손될 것이므로 강행해야 한다고도 한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이사기자도 “재신임의 ‘여론’이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시점에서 그와 그의 세력에게 후퇴와 대타협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라며 재신임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길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길밖에 도리가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2003년 10월15일자). 김기자의 예측은 빗나갈 것 같다. 노대통령은 아·태정상회담에 다녀와서 4당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정치적으로 타결할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여론조사에서 재신임 비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상세 결과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국정 수행·운영에 불만은 있지만 불신임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불신임으로 초래될 국정혼란을 피하고자 하는 현명한 유권자의 지혜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노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 이미 재신임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재신임투표를 강행한다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달라질 것도 없지만 그것으로 해서 더 얻을 것도 없다. 이에 따르는 찬반 선거운동은 대통령 선거를 한번 더 치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재신임투표 결과로 정국이 평정된다면 천문학적인 비용도 아깝지 않겠지만 정국이 안정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김대중 기자가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결과는 신임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갈등과 대립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누구도 국민투표의 결과에 심정적으로 승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하기도 전에 승복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국민이 있는 한, 정국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결국 현재의 위기상황의 본질은 재검표 소송까지 갔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는 세력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과반수가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이 적절했다고 평가한 데 비해, 조선일보는 부적절했다고 비난했다. 현재 여론의 다수가 재신임투표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데 비해 김대중 기자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한국정치의 앞날을 “이기거나 지거나 노무현 정치는 결국 ‘과속’하거나 ‘엥꼬’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것까지 우리 정치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라며 저주하고 있다. 김기자가 그동안 보여준 예측력에 비춰볼 때 이러한 숙명론이 들어맞을 확률은 희박해 보인다. 총기가 빠진 언론인은 더 이상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언론인이 갈 곳은 낚시터뿐이다. 낚시터가 호황을 누릴 때 한국정치의 미래도 밝아질 것이다. 〈조기숙/이화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