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 동안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죽기로 싸워 막아냈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대해 솔직히 부안군민은 큰 관심 없이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부안의 이웃, 영광과 고창에서 몇년을 처절하게 싸울 때도 그 지역의 일인 줄로만 안 채 강건너 불구경하듯 외면했다. 그러나 지금 부안군민들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 싸워가면서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게 되었고, 왜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싸웠는지 알게 되었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발전 등 핵산업계가 국민의 안전은 무시한 채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핵정책에 관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다.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는 부안 지역의 문제만이 아닌 전국민과 전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부안은 지금 제2의 광주를 연상케 한다. 1980년 군사정권은 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 학살하고, 자본과 언론은 이에 협조했다. 오늘의 부안 사태는 독점자본(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이 정권과 연합하고 언론을 끌어들여 부당한 정책에 항의하는 부안군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무려 7천명 이상의 전투경찰이 부안 곳곳에서 군민들의 시위와 집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22일 평화적인 군청 앞 시위 때만 해도 80여명 이상의 군민이 곤봉과 방패와 군화발에 찍히고 밟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군민이 이런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언론은 부안 군민을 폭도로 호도하고 있다. 오늘 부안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에 둘러 싸인 고립된 섬과 같다. 우리 부안 군민들은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이 홍보를 명분으로 핵폐기장 유치에 찬성 서명을 받는 일과 언론인의 외유성 해외여행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분개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 언론은 부안 군민과 국민 앞에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숨겨진 위험과 문제점을 숨김 없이 밝혀야 한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해야 한다. 지금 부안 군민은, 천문학적인 자금력으로 정치권력, 언론을 등에 업은 핵산업계와 정말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 동학 농민들이 학정을 일삼은 고부 군수 조병갑에게 봉기해서 싸웠듯, 우리 부안군민도 목숨 걸고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저지를 위해 싸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께 간절히 부탁한다. 부안 군민은 지역구도 타파와 정치발전을 위해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을 선택한 노 대통령의 용기를 사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랑은 차츰 분노로 변하고 있다. 부디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를 해결해 부안 군민이 다시 노 대통령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안 군민의 요구 사항은 다음과 같다. 우선, 부안군 의회가 지난 7월9일 제적의원 13명 중 12명이 참석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유치신청 안건에 대해 표결한 결과, 다수인 7명이 반대해 부결시켰다. 따라서 의회 표결 전날까지 유치신청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김종규 부안군수의 독단적인 유치신청은 원천 무효다. 당연히 정부의 부안군 위도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지정도 무효다. 미국 네바다 주에서는 방사성폐기물 저장소 최적지를 찾기 위해 지난 24년 동안 490군데에 시추작업을 하고 지질조사를 벌였다고 한다. 위도의 지질조사를 단 10여일만에 끝내고 안전 지역이라고 발표한 정부의 엉터리 지질조사 또한 원천 무효다. 우리 부안 군민은 79년 미국 트리마일 핵사고와 86년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핵산업이 천덕꾸러기 사양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정부는 2003년까지 추가 건설하기로 한 18기의 핵발전소 추진계획을 백지화하고, 원자력발전에 관한 막대한 홍보비와 건설비용을 재생가능한 대체에너지(풍력, 태양력 등)를 이용하는 전력 생산에 적극 활용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발전단가가 저렴하다고 주장하는 ㈜한국수력원자력발전은 핵폐기물 처리비용,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해체 비용, 천문학적인 홍보비용 등 핵원자력 발전에 관한 모든 비용을 빠짐없이 밝히고, 발전단가의 원가를 정확하게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한동오/핵추방을 위한 부안 천주교회 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