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사태는 언론과 미디어가 문제다. 작은 공동체의 자주적 의사가 무시되고, 자발적 여론이 매스 미디어에 의해 체계적으로 왜곡되는 것이 사태의 핵심이다. 검정 고무신 할머니를 포함한 보통 사람들의 일리 있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곡해하는 신문과 방송이 불량함의 원천이다. 고통 겪는 평범한 이웃과의 공감을 가로막는 단절의 언어 체계가 원인인 것이다. 시골 ‘촌사람’들의 선택에 대한 합리적 판단을 방해하는 서울 중심 일방적 담론구조 때문에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무엇보다 신문과 방송은 부안에 대해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아무리 호소해도 거들떠보지 않아 힘들다는 부안 초등학교 아이의 항변은 현실을 잘 예증한다. 그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미디어는 한마디로 무식하다. “전북 부안은 지금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의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의 상황이다”라고 할 때 <매일경제>는 사태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부안이 외부 시민단체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발언은 그곳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이들의 선택을 두고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약삭빠른 “집단 이기주의의 악취” 정도로 비아냥거릴 때에도 현실에 관한 무지함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렇게 제 멋대로 판단해 버린다. 일제히 신문들은 부모가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비난한다. “학생들이 핵폐기장이 싫어서 자발적 의사에 따라 학교에 나가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고 단정하는 <경향신문> 기사는 압권이다. “초등생 상경 시위, 빗나간 시위 문화”라는 의 보도에도 가치 판단은 숨어 있다. 이러한 편향적 시각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는 철저히 이중적이다. <중앙일보> 사설은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매우 잘못된 풍조”, “툭하면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악습”, “전근대적인 발상”을 문제로 지적한다. 부안의 어른들을 몹쓸 부모의 전형쯤으로 흉보면서, 일방 결정과 언론 왜곡의 불량 시스템이 부안 청소년들에게 끼칠 훨씬 더 반민주적인 교육 효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실 신문과 방송은 표피적이다. 좋은 그림에 집착할 따름이다. 그리하여 시위 충돌 장면은 부각되는 반면, 중요한 원인 분석의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겨레>도 예외가 아니며, 이는 미디어 보도가 권력의 목소리 일색이라는 점과 연결된다. 주민들의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홍보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처리장 책임자와 인터뷰한 <문화일보>는 일례에 불과하다. 각종 미디어가 정부의 지원 계획들을 충실히 소개한다. 지역신문의 경우에도 일방적인 홍보·선전은 마찬가지여서, 권력과의 유착 관계는 결국 군민들에 의한 거부와 배척의 이유가 된다. 여기서 우리는 해당 기관들이 80여억원을 들여 신문과 방송사에 광고를 주고 ‘언론인’ 해외시찰을 지원한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신문과 방송은 사태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부안 주민들 잇단 관공서 습격”을 말하면서, <동아일보>는 평화로운 수만명 대신에 불과 수명의 ‘괴한’에 주목한다. 도 “‘핵 반대’ 부안 주민, 관공서 습격 잇따라”라고 공포심을 조장한다. “부안 군청 청소미화원 대기실 방화용의자 검거,” “원전센터 시위 주동자 엄단방침”, “부안 시위대, 형사 처벌 불가피”를 말하는 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일보>는 “사생결단식 시위”를 중지하고, 시민단체들도 “주민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즉각 그만두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렇지 않으면 공권력의 “신속하고 엄정한 대처”라도 요구할 참인가 고립·봉쇄된 부안을 대하는 미디어의 태도는 이렇게 80년 광주의 상황을 빼닮았다. 그때는 국가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더니, 지금은 대체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시인 고은은 말했다. “뒤진 나라 작은 나라에의 무지와 경멸이야말로 큰 나라에의 굴종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이렇게 말을 바꾸자. 후진 지역 작은 시골에의 무지와 경멸이야말로 큰 권력에의 굴종이다. 자율 민주주의를 짓밟는 큰 미디어 권력의 폭력 시위, 한가위 슬픈 오늘의 초상이다. 전규찬/강원대 신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