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기자생활을 마감하며 갑자기 마음이 여유로와졌습니다. 오랜만에 동네목욕탕엘 갔는데 마침 켜져있는 텔레비에서 뉴스가 흘러나오더군요. 노무현대통령께서 우리나라 역사상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고소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한국일보와 같은 우리나라 언론 전체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단체와, 야당 국회의원 한 명을 상대로, 그것도 당신의 개인적 명예훼손에 대한 이유 때문에. 좀 황당해지더군요. 이제 세상 돌아가는 것, 될 수 있는대로 쳐다보지 말고 좀 덤덤하게 살아야겠다고 작심하는 판에, 이런 얘기가 또 귀에 들리면 웬지 허무해져요. 또 쓸데없는 넋두리를 늘어놓아야 하니까요. 이게 기자로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모양인데 서두가 참 신이 나지 않는 이야기로 장식되는 것 같군요. 아직도 '당선 바라는 정치인' 물론 우리나라 언론은 반성할 점이 많아요. 그리고 분명히 한국의 대다수의 언론이 노대통령이 주장하는 사안에 대해 잘못 보도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이러한 언론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이, 고소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참신하고 파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와 같이 위압적이고 비밀스러우며 비민주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고, 공개적인 법제적 절차를 취하겠다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우리가 생각해온 대통령답지 않은 방식의 파격성 속에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대통령을 모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장마로 집에 비가 새면 우선 큰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큰 구멍에서 비가 줄줄 새고 있는데 작은 구멍부터 안깐힘을 써가며 막으려 하고 있다면 참으로 봐주기 어려운 코메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인간이 자기의 포지션에서 해야 할 일에는 분명히 경중의 프라이오리티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노력의 배분에도 가중치에 대한 전체적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노무현 그대는 세속적 의미에서의 정치인이기에 앞서 대한민국 국정의 최고의 책임자이며 운영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당선을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을 벗어나고 있질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애를 쓰며, 자기의 개인적 명예훼손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동이 있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람들이 염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올 냉가슴 이해 하실런지 노무현 당신은 법제적 질서에 대한 대단한 신념이 있으신 것 같군요. 역시 변호사이시군요. 변호의 변(辯)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시비를 가린다는 뜻이죠. 그런데 법제적 절차를 통하여, 한국의 언론을 상대로 시비를 가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장자(莊子)는 대변(大辯)은 불언(不言)이라 말했습니다. 위대한 변론은 언어를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리고 사물은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物無非彼),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物無非是)고 말했습니다. 저것이 이것이 될 수도 있고, 이것이 저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 그래서 내가 이겼다는 것을 법제적으로 확정짓는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단지 하나의 관점의 고착일 뿐인데. 나의 옳음은 곧 나의 그름이 될 수도 있고, 너의 그름은 곧 너의 옳음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인간의 시비는 끝이 없습니다. 시비를 법으로 가린다는 것, 그것은 인간세의 국부적인 방편은 될 수 있으나 인간세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개혁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래서 공자도 이렇게 말했어요. 법으로 이끌고 형으로 다스리려고 하면, 사람들이 오직 면하기만 하려하지 부끄러움을 알지 못한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이제 5년임기 내내 끌 법한 고소의 과정을 통해 언론의 잘못을 가르쳐주신다고 하는 것이 과연 ‘면이무치’(免而無恥)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 우리사회에 근원적인 도덕적 성찰은 사라져가기만 한다는 것이죠. 장자는 말합니다: “시비를 내세우는 것은 명지(明智)에 처하는 것만 못하다. 이것과 저것을 없애버린 경지, 그것을 도추(道樞)라 한다. 도추만이 비로소 그 환중(還中)을 얻을 수 있고, 무궁(無窮)에 응할 수 있다.” 도추(道樞)의 추(樞)라는 것은 문짝이 돌아가는 돌쩌귀를 말합니다. 환중(還中)이란 직선의 가운데가 아니라 원의 중심 같은 것이죠. 장자는 한마디로 일국의 통치자는 시비의 일각에 서있는 자가 아니라, 원의 중심과 같은 환중의 자리에서 무궁한 상황적 변화에 응(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당신은 기존의 담론에 대하여 시비를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담론에 대한 모든 시비를 묵살시킬 수 있는 새로운 담론의 생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세칭 ‘리더십’이라 부르는 것이죠. 당신은 이 땅의 언어를 선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언어를 조작하는 자들에 의해 조작당하고 있습니다. 이 딱한 심정을 제가 뭐라 말할 수 있겠나이까? 결국 이 시대의 한 지성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침묵이었습니다. 나 도올은 당신이 증오하는 언론의 한 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나 도올이 언론인으로서 당신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이 ‘침묵하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도올의 벙어리 냉가슴을 과연 노무현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런지요? 사상가로서 문화일보 계속 만날 것 언어의 생산은 오로지 그 언어가 사회적 효능을 가질 때, 그 생산자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데 사회적 효능이란 그 사회가 무엇인가 일관된 목표를 향해 건설적인 구성을 시도할 때 극대화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지금 아무런 지향점이 없이 근원적인 스트럭쳐가 붕괴되고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벽돌 한 장 쌓아올리는 언설의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겠지요. 더구나 그 무기력한 행위의 반복의 무의미성, 그리고 그 무의미성이 초래하는 신체적 피로의 누적은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지요. 퇴로라도 있으니 다행이지요. 퇴로가 없다면 나 도올도 나의 후학인 정몽헌처럼 자살의 길을 택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절박한 심정을, 명예훼손 때문에 고소를 일삼고 있는 여유로운 당신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노무현 당신의 정치의 목표는 이 사회의 해체와 혼돈입니다. 비젼을 강요하지 않겠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민주적 절차라고 과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각 분야가 이러한 해체와 혼돈의 과정을 통하여 자율적으로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내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당신의 도덕적 정당성의 근원이 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사회는 당신이 기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자율적인 게임을 할 수 있을만큼 성숙해있질 못한 것 같습니다. 당신이 지향하는 건전한 해체는 단순한 방기(放棄)를 의미할 뿐, 적나라한 늑대와 늑대의 싸움판만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지요. 당신은 정치검찰을 혐오했습니다. 그래서 취임 직후부터 용감히 그들과 공개토론을 벌이고,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그들을 ‘대적적으로’ 독립시켰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폭력화되었습니다. 이러한 폭력화과정에서 정몽헌이 희생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검찰의 폭력적 독립이 대자적인 세력과의 균형 속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논리를 적립해갈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 혼돈의 과정이 너무 큰 희생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 딱하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서 당신의 해체와 혼돈의 정치에 우리사회가 과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가? 그 근원적인 자생력의 손상이 없이 새로운 스트럭쳐를 건설해낼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의 소망이지만 지금의 전망으로는 너무도 가혹한 실험의 장(field of experimentation)이 될 것만 같군요. 한국 언론혁명 독자들께 부탁합니다! 도올의 사표가 정몽헌충격 때문이라구요? 그것은 우리 시대의 한 지성의 결단을 너무도 협애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문화일보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기자생활을 마감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기자생활을 마감하는 것은, 기자로서의 나의 담론의 생산을 허무하게 만드는 시대상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기자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9개월 동안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일보 동료들과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공감과 상조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표를 낸 후에도 우리는 모든 것을 깔끔하게 마감하기로 했습니다. 끝이 아름다워야지요. 내주말엔 멋드러진 송별파티 한판을 벌이기로 했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혹 잘못 생각하실지도 모르는 독자 몇분들께 한마디! 제가 문화일보를 사직한다고 저 때문에 신청한 구독을 반환하는 그런 야박한 짓일랑 하지 마세요. 저는 자유로운 사상가로서 가끔 글을 문화일보에 기고할 것이구요, 또 여러분들이 문화일보를 계속 사랑해주시는 길만이 제 뒤를 이어 저를 능가하는 멋있는 필자들이 문화일보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길이구요, 또 한국의 언론 전반을 키워주시는 첩경입니다. 지금 이 자리를 떠나면서 여러분께 확언합니다. 문화일보는 혁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