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동시에 지난 대선자금을 밝히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한나라당의 반응은 차가웠다. ‘정략적 물타기’ 혹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모두 낡은 정치세력이라고 매도하면서 신당 출범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혹평했다. 언론은 한술 더 뜬다. 조선일보는 노대통령의 제안을 ‘사실상의 대야공세’라고 폄훼했다. 대야공세면 어떻고 정략적 물타기면 어떤가. 어떤 제안의 가치는 의도가 아니라 그 제안이 가져올 정치적 결과에 따라 평가받아야 한다. 지구상에 정략적인 의도가 없는 정치인이 존재하는가. 한나라당 의원들은 모두 살신성인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가. 어차피 정치인은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공감을 얻는 제안이나 행동을 하면 살아남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결국 명분 싸움이 된다.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하루 빨리 출두해서 굿모닝시티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비록 검찰이 과잉수사를 하는 면이 있더라도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 보인다. 살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죽어야 다시 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주장처럼 민주당의 불법 비리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는 것만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정치인들이 교도소 담 위를 걷지 않고도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굿모닝시티 비리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 중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을 위반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있게 나와서 민주당에 돌을 던져라. 과연 몇명이나 자격이 있겠는가. 법정 선거비용 한도 내에서 선거를 치른 국회의원도 찾아보기 힘든 마당에 대선자금에 문제가 없다고 항변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사실 지난 대선 때에는 전통적인 조직보다 자발적인 참여자에 의한 선거운동이 있었고, 사상 초유의 돼지저금통 성금이 이어졌기에 비교적 깨끗한 선거를 치렀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주당의 대선자금 액수가 턱없이 많이 나오니 자연히 한나라당에도 의심의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회창 후보는 지난 5년간 반(半)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랫동안 당선 가능성 1위의 후보였다. 민주당 대선자금이 법정 한도를 넘었다면 한나라당인들 문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문제가 민주당에서 터졌으니 민주당이 먼저 공개하라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다. 먼저 공개했다가 법의 심판을 받은 김근태 의원을 보고 그의 전철을 밟을 어리석은 정치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모처럼 맞은 정치개혁의 기회를 놓치고 말 것이다. 원래 개혁은 이런 우연한 사건이 기폭제가 돼 이루어지는 법이다. 과거의 책임을 묻는 방식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할 때 소모전을 지양하고 국민적 화합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법자금에 대한 수사에 앞서 두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남아공에서 시도했던 ‘진실과 화해법’ 같은 ‘진실과 부패방지법’을 한시적으로 제정하자. 고백한 죄에 대해서는 일제히 사면하자. 이후에 발각된 비리에 대해서는 용서없이 엄벌에 처하면 된다. 고백한 자는 사면하고 침묵한 자에게는 벌을 줘야 진실을 밝힐 동기를 갖게 되고, 결국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둘째, 법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잘못된 법과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우리의 법은 너무 이상적이다. 법은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제의 수단이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인 푯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상적인 법이 이중잣대와 위선을 부추기는 주범이다. 정치자금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이번 사건을 악순환의 고리를 깨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조기숙/이화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