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경향신문에서...펌) 문학평론가 박철화씨가 조선일보 7월1일자에 쓴 ‘5년마다 반성문 쓰는 KBS’라는 칼럼을 읽으면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왜? 박씨는 6월28일에 첫 방영된 KBS의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가 KBS에 대한 자기 비판을 한 걸 보고서 두가지 이유에서 착잡했다고 한다. 하나는 ‘5년 만에 또 시작이군!’ 하는 냉소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청춘의 한 자락을 암울하게 뒤덮던 언론의 왜곡보도에 대한 기억이라고 한다. -적반하장격 ‘KBS 때리기’ 계속 박씨는 KBS의 추악했던 과거에 대해 회상한 뒤 이번 만큼은 KBS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한 면피용 반성이 아니라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공영방송의 자기 자리 찾기를 위한 첫걸음이 되기를 정말 바란다는 기대를 피력했다. 얼른 보아선 시비걸 게 없는 칼럼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의 빈혈증’이라고나 할까? 박씨는 이른바 ‘땡전 뉴스’와 시청료 거부운동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1987년 6월항쟁 이후 KBS 사원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피눈물나는 투쟁과 그 투쟁에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신문들의 방해 공작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근 집요하게 시도되고 있는 조선일보의 KBS에 대한 일련의 왜곡보도는 전혀 아는 바 없으며 나는 내 칼럼만 쓰면 그뿐이라는 박씨의 속 편한 생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조선일보가 흠집내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정연주 사장에 대해 박씨가 “두 자식의 병역 문제가 시빗거리가 되고 있는” 운운한 것에 대해선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박씨의 주장이 새로운 건 아니다. 그간 조선일보가 수없이 반복해온 주장이다. 공영방송의 매체비평 프로그램이 수구 신문의 왜곡보도를 비판할 때마다 조선일보는 공영방송의 ‘돌 던질 자격’을 문제삼곤 했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선동에 휩쓸리는 것 같아, 이 지면을 빌려 KBS와 조선일보의 차이에 대해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첫째, KBS와 조선일보 모두 5공의 주구로 활약했던 건 똑같지만, 그게 KBS에는 ‘과거’인 반면 조선일보에는 ‘현재’다. 주구의 대장 노릇을 했던 사장들은 모두 KBS를 떠나갔지만, 조선일보는 족벌세습체제라 그런 청산이 불가능하다. 조선일보는 변형된 형태로 여전히 박정희와 전두환 체제의 옹호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둘째, KBS는 추악했던 과거에 대해 사과와 참회를 한 반면, 조선일보는 하지 않았다. KBS의 사과와 참회가 5년마다 반복되며 불철저하다는 박씨의 비판은 타당한 일면이 있지만, 그런 비판을 조선일보 지면에서 한다는 건 적반하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셋째, KBS 사원들은 경영진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성을 누리고 있는 반면, 조선일보 사원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KBS 사원들이 누리는 독립성이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한번 찍히면 끝장’이라는 식의 굴종을 하지 않는 건 분명하다. 사장은 돌고 돌기 때문이다. 족벌세습체제를 자랑하는 신문에서 기자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최근 KBS 사원들이 청와대의 개입이 작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동구씨의 사장 임명을 무산시킨 것에 대해 경외감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과 정부가 KBS의 ‘실질적 소유주’라는 박씨의 주장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단결력, 공정성 재앙될수도 넷째, KBS 사원들은 이념 및 정치적 성향에서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는 반면, 조선일보 사원들은 대단히 동질적이고 획일적이다. 이는 일사불란한 단결력이라고 하는 점에선 KBS의 약점이요, 조선일보의 장점이 되겠지만, 언론에 일사불란한 단결력은 공정성을 해치는 재앙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박씨나 조선일보의 적반하장이 KBS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KBS는 박씨의 염원대로 이번 만큼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의 자기 자리 찾기를 위해 혁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활발하고 왕성한 내부 토론 문화를 정착시켜 주기를 바란다. 뉴스의 의제 설정에서 조선일보의 의제를 따라 다니는 바보같은 짓도 이젠 그만둬야 한다. <강준만/전북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