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몇 개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진전이 있었지만 경제 분야에서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외람되나마 필자의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경제전망과 경기대책부터 말씀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2/4분기의 성장률 숫자를 짐작해 보고 향후 한국경제의 성장전망을 어둡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하반기가 시작된 지금, 참여정부의 허물이 아닌 과거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내년을 바라보고 경제정책을 펴야 합니다. 다행히 내년의 성장전망은 어둡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적어도 잠재성장률 부근의 성장이 가능할 것입니다. 주식시장도 전체적으로 상승할 것입니다. 반대로 물가여건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몇 년째 3%가 넘는 물가상승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체질화된 물가상승은 원화를 절하시켜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꿈을 거품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 확보를 위한 노사분규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추가적인 경기부양책은 득보다 실이 큽니다. 두 번째로 재정건전화 문제입니다. 필자는 재정전문가는 아니지만, 향후 재정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는 전문지식이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십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의 상환 때문에 재정이 적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세계잉여금이니 균형재정이니 하는 말에 현혹되시면 안됩니다. 지금 재정은 한 푼이 아쉬운 상황입니다. 법인세건 특별소비세건 감세를 주장하는 무책임한 관료가 있다면 그에게 현재 재정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금융감독정책입니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SK 글로벌의 해법은 편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적나라한 로비스트로 변신한 퇴직 관료들이 물만난 고기처럼 판을 흐리고 있습니다. 일부 신용카드사들은 3월의 아픈 기억을 벌써 잊은 듯 다시금 확장경쟁에 몰입하고 있습니다. 회계부정을 저지른 자들은 자숙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지금도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장에 규율이 없습니다. 규율을 정착시키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다음으로 재벌정책입니다. 현재 재벌들은 마치 경기를 부양하려면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다고 해서 경기가 부양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이 시장경제의 바른 모습도 아닙니다. 그리고 현 경제상황이 이런 파행을 정당화할 정도로 절박한 것도 아닙니다. 장사가 된다고 생각하면 과잉투자도 마다하지 않고, 돈 되는 일이 없을 때는 누가 뭐래도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기업의 생리입니다. 재벌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처음의 뜻을 그대로 밀고 나갈 때 시장경제도 바로 서고 정치적으로도 박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와 내각의 주변정리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여러 문제들은 모두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들입니다. 필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일부 청와대 비서관들의 거취가 언급되고 있는 지금이 정부부처 및 유관기관을 정비하고 새출발을 기약하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경제부총리와 한은 총재, 그리고 금감위원장이 과연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는 심모원려하고 멸사봉공하는 동량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또 감히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아직 주변을 지키고 있습니다. 입안의 혀처럼 감언이설을 일삼는 자들을 멀리 하시고 진심으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귀히 쓰셔야 합니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바른 길을 꿋꿋하게 걸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번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