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문화일보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칼럼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도 지금의 분노 그 다음의 행동에 대해서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함께 생각해보시죠.) 최근에 유승준의 입국 문제를 논하는 한국 네티즌들의 편지를 여러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법적인 차원에서 아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포기의 시기나 동기와 무관하게, 한국 국적의 포기 그 자체가 범죄행위는 아니다)의 입국을 대다수가 반대했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유승준의 입국 반대 이유가 ‘약속 위반’이라는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공분의 차원이었다면 필자로서도 뭐라고 할 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네티즌의 글에서 느낀 것은, 유승준의 죄(?)도 아닌 유승준 개인에 대한 뜨거운 - 거의 물질적으로 느껴질 만한 - 증오심과 거부감이었다. 전두환 같은 대량 학살의 주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다수 네티즌에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 그 혐오감은, 왜 하필이면 유승준이라는, 별다른 중대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젊은이에게만 유독 쏟아지는가? 병역기피 의혹(그의 한국 국적 포기와 미국 국적 취득이 의도적인 병역 기피 행위라는 것이 법정에서 입증되지 않는 한 ‘의혹’이라는 명사를 꼭 붙여야 한다)? ‘지도층’(지배층의 상층부) 자제들 중에서 30∼40%가 병역 면제된다는 통계도, 그 면제자의 상당수가 각종 방법으로 그 부모의 지위와 돈에 힘입어 사실상 병역을 기피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들을 군대에 안보낸 국회의원들을 일차적인 낙선운동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사장이 아들을 군대에 안보낸 일간지에 대해 절독운동을 펼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술자리에서 ‘저 썩은 오야붕’을 욕해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도층’의 일반화된 병역 기피에 대한 분노를 그냥 참고 있다. 참지 않으면 계급사회 질서와의 정면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충돌은, 한 소시민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빈민개병제’로 전락하고만 국민개병제라는 엄청난 부담, ‘할일 없이 썩어야 할 잃어버린 3년’에 대한 쓰라린 기억, 그리고 ‘나처럼 썩는 대신 미국에서 공부나 즐겁게 한, 돈과 빽이 있는 놈’에 대한 분노 등은 어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쌓여 있는 그 압박감과 쓰라림과 분노는, 분출할 적당한-병역을 가시적으로 기피했음에도 ‘지도층’에 속하지 않고 쉽게 공격할 수 있는-대상을 기다린다. 필자가 보기에는, 유승준이 바로 이와 같은 대상이 되고 말았다. 가시적으로 병역을 면하게 된데다 ‘우리’의 울타리를 벗어나 ‘남’이 됨으로써 ‘우리’의 집단주의적 감정을 건드린 그는, 국민개병제의 억압으로 인한 원한을 풀 수 있는 최적의 희생양이 되고 만 셈이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유명한 현대 사상가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이야기했던 ‘억압의 이양’의 좋은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윗사람들로부터 받는 억압감을, 우리는 외부자가 돼버린 유승준에게 푸는 셈인 것이다. 그러나 유승준을 왕따시켜봐야 국민개병제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군 안에서의 인권 유린, 장기 복무로 인한 고학력자의 수학 능력 저하, 지배층의 고질적 병역기피 문화 등-이 해결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유승준에게 분노를 퍼붓는 것보다는, 군축과 모병제로 점차적인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해결법일 것이다. 모병제로 가야 약자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회 전반의 군사문화가 결국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