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글은 이화여대 조기숙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을 다시 옮긴 것입니다.) 난생 처음 검찰청에 불려갔다. 정몽준 대표의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 선언을 접하고 노·정 단일화에 찬성했던 사람으로서 대선일 새벽 오마이뉴스에 반성문을 올린 것이 문제가 됐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국회 상임위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지 않은 경찰청장을 질책하자 경찰이 인지 수사하게 된 것이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그 글을 썼는지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내가 노후보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를 선동할 만한 인물은 못된다. 노후보가 YS를 찾아갔을 때나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도 가혹하게 노후보를 비판했다. 게다가 한나라당 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만큼 보수적인 내가 노후보에게 유리한(?) 글을 쓰게 된 것은 균형감각을 발휘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의 발로였다. 당시 주요 언론은 노골적으로 이회창 후보 편들기를 하면서 대선의 의미를 알리는 내 칼럼은 거절했다. 그래서 그 글을 오마이뉴스에 실었다.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조선일보 사설이 버젓이 나온 상황에서 내 글이 선거법을 위반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담당 검사는 형평성을 위해서는 모든 언론, 특히 조선일보를 조사해야 하는데 공소시효가 끝나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후 ‘기소유예란 범죄는 성립되나 여러가지 정상을 참작하여 피의자를 처벌하지 아니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처분을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귀하께서 또다시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위 사건이 재기되어 새로운 행위와 함께 처벌될 수도 있음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영향력을 따진다면 오마이뉴스가 열독률 1위를 자랑하는 조선일보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 내가 만일 법을 위반했다면 처벌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양식 있는 국회의원이라면 조선일보를 제치고 오마이뉴스의 필진만 수사할 것을 촉구할 수 있는지, 한나라당 의원이 찍어준 사람들만 수사하는 경찰과 검찰은 균형감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분명한 것은 검찰이 예전 검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의 활동기간 연장을 거부한 데 대해 한나라당이 초강경 대여투쟁을 선언했다. 사실 이번 사안처럼 여론이 팽팽하게 양분된 경우에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름대로 논리와 타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대통령은 박지원씨가 현대로부터 받았다고 알려진 1백50억원에 대해서는 검찰이든 새로운 특검이든 국회가 방법을 결정해서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라고 한 상태다. 한나라당은 노대통령이 독선·독주와 반민주의 길로 들어섰다며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상생의 정치를 먼저 거부한 쪽은 한나라당 아닌가. 수정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구두약속만 믿고 특검법안에 서명한 노대통령은 한나라당에 보기 좋게 배신당한 셈이다. 상생의 정치를 실천해보려는 대통령을 정쟁의 대상으로 먼저 이용한 쪽이 누구인가. 한나라당은 특검법을 재상정하겠다고 한다. 검찰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조선일보는 조사도 하지 않고 노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사람들만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겠는가. 노대통령도 검찰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거니와 검찰도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이토록 변화를 읽는 데 둔감하니 다 이긴 선거를 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지난 정권에서 민주당이 아무리 실수를 해도 한나라당 지지도는 제자리였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대들보를 못보면 창조적인 대안을 제기하기보다는 극한투쟁을 일삼게 된다. 노대통령에게 고개를 돌린 젊은 유권자들이 당대표 직선을 한다며 요란한 한나라당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두번이나 대선에 패하고도 한나라당은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 사실을. <조기숙/이화여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