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라즈니쉬가 말하는 침술론
(주: 라즈니쉬가 말하는 침술론을 읽으며 두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라즈니쉬 철학의 깊이와 정교함이고, 다른 하나는 라즈니쉬와 상통하는 구당 선생의 선각적 혜안이다. 다시금 구당 선생의 감동적 인간 사랑의 실천에 감사드리며, 네이버에 오른 라즈니쉬의 글을 옮긴다.)


침술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침술은 전적으로 동양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양적인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에 접근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의 모든 접근 방식은 방법론적이고 논리적이며 분석적이다. 그러나 동양의 학문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그대의 에너지를 지력(知力)보다는 직관(直觀)에 쏟을 수 있는지, 그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양에서 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접근 방식에서 수동적인 접근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대는 수동적이고 수용적이 될 수 있는가? 오직 그 때에만 침술을 배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전혀 침술이 아닐 것이다. 그대는 침술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지만 침술 자체는 모를 것이다. 가끔은 침술에 관해서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침술을 알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의 침술은 요령이다. 단지 침술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동양의 여러 학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는다. 동양의 학문은 심오하기 때문이다. 서양은 동양의 학문에 관심을 갖지만 서양의 마음을 가지고 동양의 학문을 이해하려고 한다. 서양의 마음이 들어오는 순간, 동양의 학문은 기초부터 파괴된다. 그때 단편들만 남게 되며 이런 단편들은 결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침술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침술은 작용한다. 그러나 오직 동양적인 접근 방식을 지닐 때에만 작용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정말로 침술을 배우고 싶다면 침술에 대해 아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라.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우라. 그리고 나서 배운 것을 모두 잊고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라. 그대 자신의 무의식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환자와 일체감을 느끼기 시작하라. 그것은 다르다…….

환자가 양의(洋醫)를 방문하면 의사는 추리하고 진단하고 분석하며, 질병이 어디에 있는지, 질병이 무엇인지, 어떻게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는 마음의 한쪽 부분, 즉 이성적인 부분을 이용한다. 그는 질병을 공격하며, 질병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이제 의사와 질병 사이에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환자는 게임에서 벗어나 있다. 의사는 환자에 대해서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질병과 싸우기 시작하며, 환자는 완전히 무시된다.

그러나 침술사를 찾아가면 질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환자가 중요해진다. 질병을 만든 것은 환자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원인은 환자에게 있으며, 질병은 단지 증상일 뿐이다. 그대는 증상을 바꿀 수 있으며, 그러면 새로운 증상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그대는 한 가지 질병을 약으로 제압해서 질병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으나 그 질병은 다른 곳에서 좀더 위험하고 좀더 심하게 나타날 것이다. 나중에 생긴 질병은 처음 것보다 치료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대가 두 번째 질병도 약으로 제압한다면 세 번째 질병은 치료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역증요법은 이렇게 해서 암을 만들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질병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그때 질병은 다른 쪽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의사는 또 다른 쪽으로 질병을 밀어 놓는다. 이제 질병은 극도로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환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원인이 남아 있으므로 계속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침술은 원인을 다룬다. 결코 결과를 다루지 말라. 항상 원인을 다루라. 어떻게 하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는가? 이성(理性)은 원인에 다가갈 수 없다. 이성은 그저 결과를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원인은 이성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오직 명상만이 원인에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침술사는 먼저 환자를 느껴 본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모두 잊고 단지 환자와 같은 느낌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는 환자와 일체감을 느낄 것이며, 자신과 환자 사이에 다리가 놓였음을 느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질병을 자신의 몸 속에서, 자신의 에너지 체계 속에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느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원인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울이 되며 자신 속에서 그 반영(反影)을 찾아낸다.

이것이 침술의 모든 과정이다. 침술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술은 몰수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먼저 서양에서 2년 동안 침술에 대해 배우라. 그리고 극동의 나라로 가서 최소한 6개월 동안 침술사와 함께 있으라. 그의 현존 속에 있으라. 그가 작업하는 것을 지켜보라. 그의 에너지를 흡수하라. 그러면 그대는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힘들 것이다.

서서히 자신의 에너지를 느끼기 시작하거나 몸 속에 있는 에너지의 작용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침술은 기술에 멈루지 않고 도구가 될 것이다. 침술은 통찰이며―그대는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그것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예술이라기보다는 직감에 가깝다. 고대의 기술들이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고대의 기술들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견해를 가지고 고대의 기술에 접근한다면 약간의 지식은 얻겠지만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을 것이고, 그대는 실망할 것이다.

고대의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좀더 여성적이고 좀더 직관적이며 비논리적이다. 그것은 과학적인 마음이 생각하듯이 삼단 논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에 깊이 참여하고 있기에 오히려 꿈이나 몽상에 가까우며, 자연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과 신비를 드러내도록 한다. 그것은 자연을 공격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연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면으로부터 접근한다.

그대는 가장 깊은 중심에서부터 자신의 육체로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 7백 군데의 포인트는 객관적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깊은 명상 속에서 알려진 것이다. 그대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서 내면으로부터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마치 별들로 가득 찬 밤하늘을 보듯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침술의 포인트를 볼 수 있다. 이것은 굉장한 경험이다. 포인트를 보았을 때 비로소 그대는 준비가 된 것이다. 이제 그대는 내면을 이해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몸을 만져 봄으로써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에너지가 빠졌는지, 어디에 에너지가 흐르고 어디에 흐르지 않는지, 어디가 차갑고 어디가 따뜻한지, 어디가 살아 있고 어디가 죽어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포인트 중에는 감응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전혀 감응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대는 자신을 아는 정도에 비례해서 침술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알고 침술을 알게 될 때 거기 위대한 빛이 있을 것이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대는 자신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제3의 눈이 열린 것처럼 새로운 비전이 보일 것이다.

침술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모든 예술은 깊은 내맡김을 요구한다. 침술은 기술자가 조작할 수 있는 다른 기술과는 다르다. 침술은 가슴을 필요호 한다. 그대는 마치 화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시인이 시를 쓰거나 음악가가 연주를 할 때 자신을 잊어버리듯이, 그대 자신을 잊어버려야 한다. 침술은 그런 것이다. 기술자도 침술을 시술할 수 있지만, 결코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물론 몇몇 사람을 도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침술은 위대한 예술이며 위대한 기예다. 그대는 침술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그 비밀은 내맡기는 것이다. 그대가 침술 속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길 수 있다면, 그대가 자신을 바쳐 침술에 몰두할 수 있다면, 침술 속으로 뛰어들라. 기쁘게 온 힘을 다해 침술 속으로 뛰어 들라.

그대 자신이 되기 시작하라. 그대 자신만의 비법을 발견해야 한다. 침술은 비법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침술에서는, 누군가를 규칙처럼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침술에는 아무 규칙이 없다. 단지 통찰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대 스스로 시작해 보라……. 처음에는 다소 확신이 서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자꾸 걱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렇게 헤매며 시작하는 것이다. 조만간 그대는 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일단 문을 찾아나서게 되면 헤매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당장 시작해 보라!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거나 침을 놓을 때 그대는 신을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매우 공손해야 하며 신중해야 하다. 그대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시술해야 한다. 지식은 결코 적절하지 않으며 충분하지도 않다. 지식으로 사람을 대하면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지식은 한계가 있는 데 반해, 상대방은 하나의 온전한 세계이며, 거의 무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대를 건드리지만 결코 그대를 건드리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표면을 건드리지만 그대는 사랑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깊은 중심 속에 있다. 인간은 신비이며, 영원히 신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신비인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신비가 바로 그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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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자리님, news@leesangho.com로 메일주세요. 좋은 하루.. 2006/10/17
자리 이상호기자님 함 만나뵙고 싶군요. 200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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