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어느 기사든 소중하다. 특히 고발기자로 살아가겠다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경우에 따라 모든 기사가 '유고작'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YS 정권의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던 지난 97년 쓰여진 이 기사는 여러 기사들중 특히 기억에 남고 또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우리나라 사회작동 원리는 단 하나 '반공'이었다. 경제도 반공, 정치도 반공, 사회도 반공, 문화도 반공이었다. 일상을 지배하던 백색테러의 전면에 '자유총연맹'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일제이후 우리사회 주류를 차지해온 반공집단의 아성! 그들은 전국적 조직을 운영하며 정부와 지자체 등으로 부터 엄청난 예산지원을 받는 법률기관, 아니 초헌법적 기관이었다. 우리사회 '비이성'의 큰 바퀴를 굴려온 문제의 자유총연맹에 대해 언젠가 기자가 되어 기사를 쓰게 되면 반드시 깊이 있는 취재를 해보리라 다짐해왔던 터였다. 97년 초여름이 되자, 벌써부터 자유총연맹의 '활약'은 시작됐다.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예의 빨갱이 만들기에 나선 것이었다. 후보들의 사상검증을 해야한다며 '색깔론' 공세에 날이 새는 지 모르고 있었다.   기자생활 만 2년 째던 97년 7월. 찜통더위 속에 나는 드디어 자유총연맹 해부에 착수했다. 회사에 취재착수 보고를 하면 '취재불허' 결정이 나올 것이 뻔했다. 우선 사전취재를 벌였다. 구체적인 비리사실이 확보되고 나서 가까스로 정식 취재허가를 받았다. 다른 어느 조직보다 관료적이고 폐쇄적인 단체의 특성상 자유총연맹의 취재는 쉽지 않았다. 물불을 가릴 '생각조차 없었던' 사회부 초년기자.. 그랬기에 가능한 취재였다. 자유총연맹이 그야말로 돈벌이에 급급한 돈벌이연맹으로 전락한 현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재 보다 어려운 것은 보도였다. 당시 우익의 거두인 이철승씨가 몇일이고 보도국장실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취재가 완결된 기사가 보름 가까이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편집부에서 방송 허가가 떨어졌다. 무슨 영문인줄 모르고 방송이 나갔다. 선배들은 준비한 기사가 빵꾸나는 바람에 임시변통으로 내 기사가 보도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과연 '불의의 빵꾸'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당시 부장은 지금은 미국에서 목사님의 길을 걷고 있는 조정민 선배였다.   우선 문제의 기사를 감상(?)하시라. 기사 말미에는 보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웃어버리기엔 씁쓸한 한편의 시대극이 뒤따릅니다.   ◀ＡＮＣ▶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와 안보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자유총연맹이 정부지원이 미비하다는 구실로 영리추구에만 급급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자유총연맹의 무분별한 돈벌이 세태, 이상호기자가 취재했습니다. ◀ＥＮＤ▶ 서울 강남의 한 사설 경비회사. 사세확장에 따라 올들어 신규 대리점을 추가 모집하고 있는 이 회사는 신문광고를 통해 한국자유총연맹이 후원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문의 결과, 회사측은 자유 총연맹이 회원가입에서 관공서 로비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다고 설명합니다. ◀ＩＮＴ▶ 경비회사 관계자 "자유 총연맹이 사실상 우리랑 같은 조직이다. 팍팍 밀어준다." 자유총연맹측은 이미 상당수 지부가 이 회사의 대리점 영업에 뛰어들었다고 털어놓습니다. ◀ＩＮＴ▶ 자유총연맹 간부 "자금조달을 위해 영업을 한다. 건당 개인들에게도 얼마씩 나눠준다." 수도권의 한 자유총연맹 지부. 한 직원을 통해 연맹본부가 이 회사의 후원을 위한 설명회까지 개최한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ＩＮＴ▶ 자유총연맹 회원 "도움을 받았지요. 연맹이 나서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요." 자유총연맹의 무분별한 돈벌이 행태는 쓰레기 수거사업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법인의 설립목적과도 무관한 이 사업에 각 연맹 지부는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ＩＮＴ▶ 쓰레기 도매상 "자유총연맹 때문에 장사를 못한다. 아니 떼로 몰려다니는데.." 스탠드-업 "이곳 서울 장충동에 있는 한국 자유총연맹 본부에도 역시 갖가지 수익사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맹 건물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유 웨딩홀. 웨딩홀 안엔 길이 4미터가 넘는 초대형 조명과 첨단 음향 시설이 눈길을 끕니다. 사방이 수입대리석으로 장식된 복도도 빼놀 수 없습니다. 이 예실홀은 이번달 말 개장 예정으로 이미 예약을 상당수 받아 놓은 상탭니다. 예식장 관계자 sync "예약 접수중이다, 주말은 거의 다 찼다" 하지만, 취재결과 이 예식홀은 구청에 허가조차 받지 않은 채 무허가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ＩＮＴ▶ 중구청 가정복지과 "예식장 영업을 하고 있다구요? 그럴리가 없는데요." 다른 건물 한쪽의 1층과 지하에는양담배 회사, 필립 모리스 社의 국내 마케팅 법인, 머천다이징 코리아社가 입주해 있습니다. 국내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양담배 판매 거점확보를 주임무 로하는 이 회사는 2년전부터 자유총연맹 건물을 아예 창고로 쓰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전국의 자유총연맹 각 지부의 사업까지 합치면, 수익사업의 수는 수십가지가 넘습니다. 하지만, 연맹의 지휘감독 기관인,공보처는 연맹의 수익사업 내역을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ＩＮＴ▶ 공보처 담당자 "사단법인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올 10억원의 정부예산에 이어, 내년 15억으로 예산을 증액받은 자유총연맹. 하지만, 오늘도 정부지원 부족을 이유로 돈벌에 급급하고 있는 자유총연맹은 과연 공익법인인지 주식회산지 이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할 시점입니다. 카메라출동입니다. [후기] 이 방송이 나가자 다음날 보도국으로 두명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기관원을 연상시키는 이들은 자신들을 자유총연맹의 기관지, '자유신문'의 기자라고 소개했다. 그리곤 다짜고짜 취재의 배후를 대란다. 배후를 대지 않으면 당장 어떻게 할 기세였다. 주위에 선후배들이 있었지만 어느누구 이들에게 따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배후가 누굴까? 생각해봐도 알량한 나의 자의식만이 배후라면 배후였다. 그렇지 않고서, 암흑의 시기 누가 누구에게 이런 위험천만한 기사를 사주하겠는가. 가슴을 열어보일 수도 없는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이들은 배후를 밝힐때까지 내가 취재했던 것 처럼 자신들도 취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그들이 나의 주변을 탐문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귀가길 밤거리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를 보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인으로 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자유총연맹에서 전국 지부로 팩스가 돌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비, 용공 기자 이상호 추방결의대회' 대충 이런 이름의 규탄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라는 지시문이었던 것이다. 몇군대 지부에서 중소규모의 규탄대회가 열렸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하는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불과 몇년전의 일이지만 바로 어제의 일처럼 느껴진다. 오늘의 언론자유는 당시에 비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상황이다. 언론의 자유에 비해 오히려 언론과 언론인의 책임이 너무 작아 문제일 정도다. 자유의 한계를 깨뜨려나가는 용기있는 기사를 앞으로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