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라디오뉴스 편집부에 온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매일 기사를 쓰던 입장에서 처음으로 남의 기사를 읽고 편집하는 일을 하다 보니 새롭게 느끼게 되는 점이 참 많다. 남이 힘들여 쓴 기사를 파란색 싸인펜으로 난도질해가며 기사마다 중요성에 따라 방송 순서를 정하는 일이란 때론 통쾌한 맛도 드는게 사실이지만,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사 한줄한줄이 현장기자의 땀이며 생활속 민초들의 핏방울일터.. 편집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다.
한동안 기사를 생산하지 못하다 보니 이곳 '상호생각' 컬럼이 개점휴업이다. 생각다 못해 철지난 옛기사라도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회사 메인서버에 97년 이후의 기사들까지는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의 기사들은 아직 컴퓨터가 상용화된 시점이 아니였기 때문에, 이미 대기중의 작은 울림으로 사라져가고 없었다.
새로운 기사를 만들어내게될 그날까지 비록 과거의 기사지만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발굴과 탐사기사를 중심으로 이곳에 소개해볼 작정이다. 햇병아리 기자시절 부끄러운 현장 기록들이지만 기사 하나 마다 다시 짚어봐야할 뒷이야기들이 있다. 고발뉴스 가족들도 함께 해주길 바래본다.
◀ＡＮＣ▶
박태중씨는 서울 청담동의 140평짜리 호화빌라를 강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박씨는 이과정에서 정부기관을 통해 전화도청과 협박등
갖은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호기자가 취재했습니다.
◀ＥＮＤ▶
박태중씨 소유의 시가 20억원 상당의 두손빌라 301호.
이 빌라는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사조직이었던
나라사랑 본부의 김양수씨 등 3명의 명의로 돼있었습니다.
박씨는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한지 얼마안된 93년 9월
김양수씨에게 12억원을 주고 이 빌라를 매입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양수씨는 현재, 미국에 도피중이고, 나머지 두명의 소유주들은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적도 빌라를 판 사실도 없다고 증언합니다.
◀ＩＮＴ▶ 두손 빌라 관계자
"판 사실 없다, 상당한 괴로움을 겪었다.."
박씨측은 이들이 소유권을 넘겨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민사소송까지 제기했고, 이때부터 안기부와 경찰 등을 동원한
전화도청과 협박전화가 시작됐다고 소유주들은 말합니다.
더구나, 소유주들은 이사건을 계기로 세무사찰까지 시작되
배후에 박태중씨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ＩＮＴ▶ 두손빌라 관계자
"도장찍고 편하게 살라고 하더라..."
이들은 심지어 정보기관으로부터 딸과 재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받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ＩＮＴ▶ 두손 빌라 관계자
"딸과 재산중 하나를 택하라고.. 정말 힘들었다.."
김현철씨는 1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행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 김현철씨의 최측근 박태중씨의 두산 빌라 강탈의혹은 권력의
어두운 측면을 짐작케합니다.
mbc news 이상홉니다.
[후기] 이제 보니 참 짧고 대수롭지 않게만 느껴지는 이 기사. 하지만 이 짧디짧은 기사 하나를 방송하기 위해 적지않은 산고를 치뤄야했다. 97년 당시만 해도 신문도 그러했지만 더구나 방송은 언론자유가 매우 희박할 때였다. 문민정부가 붕괴 직전에 다다른 상태였는데도, 문민정부의 황태자 김현철의 집사장 박태중의 개인비리 조차 보도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랬었다. 정녕,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김현철이 검찰에 불려가고 본격적으로 김현철 주변의 비리가 터져나오던 당시, 나는 대학 후배 친척으로부터 '카사두산 빌라 강탈사건'을 제보받았다. 고생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선배들은 슬금슬금 등을 보였다. 결국 내가 속해있던 경찰팀이 아닌 검찰팀 데스크를 맡고 있던 당시 신경민 차장이 나서주었다. 신 차장과의 상의를 거쳐 취재가 시작되었고 기사는 어렵사리 메인뉴스의 전파를 탈 수 있었다.
보도가 나가자 갈곳을 모르던 김현철 관련 비리제보가 일제히 나에게 몰렸다. 한동안 격무에 시달렸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당시 만 2년차 경찰기자에 불과하던 나로선 혼자만의 힘으로 그 버거운 내용들을 취재하기도 또 방송에 관철하기도 어려웠다. 대부분 기사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감사원 원준희 주사가 효산비리 의혹을 담은 서류 보따리를 들고 찾아온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연일 밤을 새우던 나는 끝내 졸도하고 말았다. 회사 편집국 바닥에서 발견된 나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 지금까지 이름모를 속병에 시달리고 있다. 병마는 그러나,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만 날뛰던 내게 기자의 초심을 일깨워주었고 또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준 은인이 되었다. 그래서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