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113회, 2003년 10월 3일 보도] 이상호 기자의 미디어 속으로 - 족보조작과 탐사보도 ⊙ 신강균 기자  : 종가집 맏며느리가 자신이 속한 종중 간부들이 족보를 위조해 끼어 들어와 수 백억 원대의 선산을 팔아치웠다며 벌여온 20년 가까운 진실싸움이 언론의 탐사보도를 통해 베일을 벗고 있습니다. 오늘 이상호 기자의 미디어속으로 에서는 검찰과 법원도 손을 놓은 족보위조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취재기자들의 활약상을 통해 탐사보도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호 기자, 도대체 어떤 사건이길래 소송이 20년 가까이나 계속됐는지 궁금하군요. ⊙ 이상호 기자  : 정확하게는 올해로 17년째를 맞는데요. 온양 정씨 가문의 맏며느리인 장금자 할머니가 그 주인공입니다. 남편과 사별을 하고 3남매를 키우던 중에 장금자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가문의 내력을 알려주기 위해서 족보를 살피던 중에 이상하게 자기 문중사람들이 조상들의 묘를 함부로 없애는 그런 광경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조상을 찾겠다고 나선 길은 그러나 생각보다 멀고도 험한 길이었습니다. 장금자 할머니는 일제치하에 오늘날 검찰총장에 해당되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정슬교 가문의 맏며느리입니다. 의금부 도사가 항일운동에 나서면서 지방이 풍비박산됐고 후손이 각지로 흩어졌습니다. 수 십 년이 지난 뒤 다시 조상 묘를 찾았을 때 묘소는 대부분 사라진 뒤였습니다. 조상들의 묘소가 있던 자리에는 대신 어김없이 아파트나 운동장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 천안시청 직원  : 거기가 온양 정씨 집안, 그걸 자기들이 다 이전해 가지고 무연고 묘가 있었는데 그거는 우리가 공분 해 가지고 이전했고요. - 무연고 분묘가 몇 개나 됐는데요? 그때 한 10개 정도 됐을까요? - 그것은 어떻게 했나요? 종중에서 자기들 묘가 아니라고 해서... 그렇죠. 소유자 파악이 안됐죠. 조상 묘를 함부로 없애버린 종중을 의심한 끝에 장 할머니는 급기야 현재의 종중이 가짜라며 소송을 내게 됩니다. 그러나 거대 문중을 상대로 한 할머니의 외로운 싸움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는데요. 할머니가 법을 통한 권리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탐사기자들의 끈질긴 심층보도가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 이창수 / 천안신문 편집국장  : 어쨌든 저희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그 확신이 여러 가지 법적인 과정든 이런 걸 통해 가지고 무너지고 무산되고 좌절되고 사연이 있을 때마다 저희가 나름대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어떤 재판부나 법정에서 새로운 판단이 내려지고 그러면 그런 계기 때마다 저희가 보도했던 거죠. 할머니의 싸움을 주목한 언론은 종중이 족보는 물론 호적까지 위조했다는 등 새로운 기사를 발굴했고 할머니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장 할머니는 현재의 종중 대표들이 부당하게 호적에 끼어 들어 온 사람이라는 내용의 호적말소명령을 법원으로부터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 신강균 기자  : 네, 천안신문의 추적보도가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혼자 싸웠던 할머니에게는 아주 큰 원군이 됐겠어요. ⊙ 이상호 기자  : 그렇죠. ⊙ 신강균 기자  : 그리고 시사매거진 2580도 이 사건을 취재했었죠? ⊙ 이상호 기자  : 그림에서도 조금 보셨습니다만 천안신문의 취재가 시작된 즈음에 장 할머니의 제보다 저희 MBC에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취재가 이루어졌는데요. 족보와 호적, 재산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와 몇 몇 탐사기자들의 노력은 법원에서 호적 정정 결정을 받아낸 뒤에도 계속 됐는데요. 최근에는 문중 주요 간부가 아예 성씨조차 정씨가 아닌 다른 성씨의 사람이라는 사실까지 추적보도해서 진실싸움은 이제 막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MBC 시사매거진2580 / 01.8.19  : 천안지원은 8개월 만인 지난달 직권으로 이들의 호적말소를 결정했습니다. 족보에서 호적 정정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운 긴 시간을 버텨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할머니의 부단한 노력도 있었지만 그 뒤에는 진실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해온 언론의 역할도 컸습니다. 특히 지역신문의 경우 열악한 지역언론환경 속에서 탐사보도를 지속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 이창수 / 천안신문 편집국장  : 문중으로 외압도 있었고 지역사회니까 더 그게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 같고 그리고 상당히 권력핵심부까지도 연결이 돼 있는 게 저희들한테 감지가 됐었고 그리고 직접적으로 경험도 했었고. 장 할머니의 족보사건을 10년 가까이 취재해온 또 다른 기자는 족보위조를 밝혀내는 일이 잘못된 근대사를 바로잡는 첫 걸음이라는 믿음에 외압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외압을 받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 박종진 / 주간한국 기자  : 잘 아시겠지만 그쪽 문중에는 국회의원도 있고 또 국정원 관계자도 있다 보니까 이런 식의 기사가 나간다면 법적인 그런 또 다른 방면에 대응할 것이다 이런 식의... 이들 탐사기자들은 호적변조 사실을 밝혀준 법원서류가 뒤에 누군가에 의해 무단 변조된 사실을 확인 고발했는가 하면 최근에 종중 주요간부의 성씨가 아예 다른 성씨였음을 특종 보도하는 등 탐사보도의 성과를 높이고 있습니다. 결국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천안지청은 법원서류를 변조한 일당 검거를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제기된 종중의 각종 문제점과 의혹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할 방침으로 알려져 20년 가까이 끌어온 족보의 진실은 이제 조만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신강균 기자  : 일회성 보도가 주류를 이르는 요즘 언론상황에서 이런 탐사보도가 이뤄낸 큰 개가다 이렇게 볼 수 있겠군요. ⊙ 이상호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취재를 담당했던 탐사기자들을 만나보니까요 검찰에서 경찰로 또 경찰에서 법원으로 사건이 옮겨가면서 이른바 핑퐁게임이 이어지면서 진실이 많이 묻혀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기자적 오기가 발동했다 그런가 하면 또 우리사회에 이런 진실이 묻혀 가는 상황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서 한결같이 입을 모으더군요. ⊙ 신강균 기자  : 그렇지만 이렇게 오기 있는 기자, 그리고 추적 보도하는 언론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안이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많이 있을 텐데, ⊙ 이상호 기자  :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의 취재시스템이 출입처의 속보경쟁에 꽉 묶여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런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탐사보도를 기대하기는 사실 쉽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사보도의 전통은 미궁에 빠질 뻔한 수지 킴 사건이라든가, 사이비 종교의 추적고발 등을 통해서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최근 주간 동아의 수지 킴 사건 추적기는 빼놓을 수 없는 탐사 보도의 모범을 제시했습니다. ⊙ 이정훈 / 前 주간동아 기자  : 한 가족 중에 한 명이 죽음까지 당했음에도 고스란히 그것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안됐고 답답하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여러 기관이 개입했지만 그 중에 언론이 간첩으로 보도한 것도 한 이유가 되겠다. 간첩 수지 킴의 의혹의 제기한 일련의 추적기사는 한 평범한 여인의 기막힌 누명을 풀어주고 당시 권력의 부도덕성을 통렬히 고발했습니다. 특히 방송의 탐사보도는 생생한 현장화면을 담을 수 있다는 특성 때문에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미쳐왔습니다.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JMS교주의 여성문제와 신도들에 대한 앵벌이 행각 등을 추적 고발해 사회적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또 MBC와 KBS가 함께 했던 영생교 신도살해 암매장 사건이나 MBC ?PD수첩?의 소쩍새 마을 승려 일력의 비리고발 등도 성역을 뛰어넘은 언론의 탐사보도의 수작으로 평가되고있습니다. 보도에 따른 민·형사 소송이나 언론인 개개인에 대한 협박은 탐사보도 취재를 어렵게 하는 현실적 조건들입니다. - 영생교 하셨지 않습니까? 취재의 어려움에 대해 인터뷰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 현직 탐사보도 언론인  : 죄송해요. 왜냐하면 가족들이 불안해하고 있고... 전도관에서 영생교까지 분파 나오는 것을 취재해서 넣었다가 그 집으로 전화 오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부인이 유산인가 우울증 걸리고 그랬을 거예요. 충격을 받아서 굉장히 고생을 했을 거예요. 특히 출입처의 보도자료에 의존한 속보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대부분의 기자들에게 탐사보도는 점점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고 있습니다. ⊙ 정지환 / 탐사전문 기자  : 우리 언론이 이제 속보성에 어떤 신화에서 이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빨리 넓게는 보도하는데 그 한 주제에 대해서 아주 깊게 심층적으로 의미 있게 보도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보거든요. 올해 언론계를 강타했던 현대 비자금 사건이나 굿모닝시티 사건만 보더라도 숱한 의혹만 제기했을 뿐 정작 본질규명을 위한 탐사태도는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탐사보도는 하지만 사회적 진실을 밝히고 약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언론이 반드시 가야할 길임이 분명합니다. ⊙ 박종진 / 주간한국 기자  : 감춰진 부분들, 또 힘없는 자들, 그들의 목소리를 좀더 대변해 줌으로서 언론인이 제대로 공기로서 대접받고 인정받는 그런 풍토, 언론 환경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 신강균 기자  : 그 기자의 말대로 언론이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려면 지금의 속보경쟁에서 좀 벗어나서 심층보도, 추적보도 이런데 기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 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 이상호 기자  : 네, 그렇습니다. 최근에 한 시민단체인 민언련에서도 세미나를 열었는데요. 최근의 언론 특히 방송 뉴스가 너무 짧고 깊이 있는 뉴스가 많이 부족하다 하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날 공통적인 대안으로 제기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탐사보도 기능강화였습니다. 언론의 신뢰회복이 시급한 이때에 언론이 원칙을 지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