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호 기자  : 이처럼 1,200여 건의 군의관 진술서를 확보하고서도 수사결과가 미흡한데는 군과 검찰 내부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합동수사를 벌여온 검찰과 군 수사기관은 서로의 수사내용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며 군 수사기관 내부도 사분 오열 돼 서로가 수사를 축소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2580은 지난 2년 여 동안의 취재를 통해 군의관들의 진술서를 입수했고 수사 관계자들의 증언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병무비리 수사의 난맥상과 알맹이 없는 수사의 진짜 이유를 파헤쳤습니다. 영상취재 김상진 / 영상편집 방완규 / AD 박수경·김은영 병무비리 수사축소에는 기무사가 작용했다는 의혹이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지난 98년, 당시 군검찰 쪽 합수부 팀장을 맡았던 이명현 소령의 진술도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합니다. 이 소령은 군의관들의 자백이 쏟아져 나와서 수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99년 초부터 기무사의 조직적 방해에 직면했다고  말했습니다. ⊙ 이명현 / 당시 수석 검찰관 (현재 미국 유학 중)  : 1월 말경, 그때부터 군의관들을 부르면 군의관들이 무서워서 무언가 상당히 겁나는 표정으로 왔었거든요. 기무사 요원들이 자신들을 찾더라, 그래서 갔더니 너 어디서 조사 받았는지 다 적어라, 기무 요원들하고 관련 있는 군의관들은 그 사람들이 불러서 회유와 협박을 한 거죠. 이 소령은 지난 99년 7월에도 기무사의 수사 방해를 고발하는 보고서를 국방장관에게 올렸습니다. 이 소령은 당시 기무사를 개혁하고 수사 방해 상관들에  대한 조치 없이 병무비리 수사는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동안 수사과정을 감시해온 참여연대도 병역비리 수사에 대한 기무사의 개입여부를 포함한 전면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 우필호 /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간사  : 수사는 계속 됐지만 정말 드러난 건 몇 건 안되잖아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뭐냐하면 사회 지도층, 소위 정치인이나 권력층들의 병역비리 같은 경우는 기무의 특별관리 대상이라고 하더라구요. 그건 알고 있었잖아요. 잘... 그죠? 이 사람들이 병역비리 저질렀다고 했을 때는 기무가 몰랐다면 정말 직무유기라고 생각이 들고 최소한 묵인 아니면 방조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희들이. 군 검찰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아 민간인에 대한 수사를 벌여온 검찰을 거치면서 수사는 다시 한번 굴절됩니다. 한 고위공직자의 아들의 사건에 대해 검찰은 조사결과 무혐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고위공직자는 청탁하거나 돈을 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대신 수사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병무청 직원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군의관에게 200만 원을 주고 문제의 청탁을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해 돈을 건넨 것입니다. 취재팀이 입수한 이 병무청 직원의 공소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혐의만 접수돼 있을 뿐 이 고위공직자 아들과 관련된 혐의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 당시 수사검사  : 그게 자기를 위해서 한 게 아니고 타인을 위해서 하게 했던 거고 그리고 군의관도 그때 입건을 안 했던 것은 액수도 작고 해서... 누구보다 군 검찰 관계자들이 검찰의 병역비리 수사태도에 불만입니다. 2580은 최근 병무비리 수사 초기 군 검찰부장을 맡았던 고석 대령을 만났습니다. 고 대령은 검찰의 비협조가 병무비리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 고  석 / 당시 군검찰부장  : A군의관이 처음에 한 건만 불겠어? 처음엔 한 건만 불겠지. 딱  한 건 밖에 없습니다. '너 징역 10년이다' 하는데 자기가 한 건만 불어. 제일 안타까운 부분은 그런 부분이에요. 군의관들이 이렇게 많이 불어줬는데, 서울지검에서는 왜... 이 소령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합니다. ⊙ 이명현 / 당시 수석 검찰관  : 초창기에 저희들이 수사할 수 있게 만든 자료가 400건 정도가 됐는데 거의 한 3,4백 건의 자료가 갔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게 하나도 없어요. 처음에 초창기에는 성의가 없었던 거죠. 실력이 없었고, 조사 한 번 했다고 딱 자료들을 다 팽개쳐버리니까 정말 가슴 아팠죠. 고 대령이 서울지검에 수사 축소 의혹을 제기하며 예로든 임 모  군의관 진술서입니다. 군의관 임 소령은 정치인의 조카와 영화배우 등을 포함해 30여 건의 병역비리를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주요인사 자녀 12명에 대한 김 소령의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며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재조사 결과 이 중에 농구 선수 김 모씨 등 두 명에 대해 사법처리가 이루어졌습니다. 또 모 언론사 대주주의 병역비리는 군의관 진술을 받고 혐의 사실이 확인돼서 검찰에 넘겼는데도 수사가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은 그동안 알선 측인 박노항 원사가 도피해 수사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박 원사가 붙잡힌 뒤에도 그를 소환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축소의 이유가 군 검찰 내부에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먼저 서울지검은 군 수사 자료를 제대로 넘겨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군 검찰이 넘겼다는 1,200여 건의 진술 자료 중 정치인을 포함한 상당수 자료가 전달 과정에서 누락됐다는 얘기입니다. 군 법무관리관 산하에 소속된 군 검찰부는 고석 대령의 주도로 병무비리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군·검 합동 수사가 시작되자 수석 검찰관인 이명현 소령이 수사를 주도하게 됩니다. 수사 주도권을 둘러싼 둘 사이 갈등이 증폭되면서 수사는 파행으로 치닫습니다. 이들의 갈등은 비리혐의를 자백한 군의관들을 사법처리 할 것인지를 놓고 첨예화됩니다. ⊙ 이명현 / 당시 수석 검찰관  : 면책 약속으로 진술서를 이렇게 받았다. 첫 날 한 150여 건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했더니 그 당시에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법무관리관님은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고석 부장은 가만히 있었어요. 그런데 그 다음 날 회의 때 이거는 명백히 수사, 사법 체계를 흔드는 문제가 있는 거다. 그러면서 군의관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된다. 그런가 하면 이명현 소령의 1차 수사팀을 인수한 고석 대령은 이  소령팀이 상당 수 군의관 진술자료를 2차 팀에 넘겨주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군의관들의 진술을 받아놓고도 자료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상당수 수사자료가 유실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병무비리 수사를 시작하고서도 1차 수사팀에서 배제됐던 고석 대령은 그 같은 결정이 군 검찰조직 안에서 병무비리 사건을 청탁하거나 알선한 비호세력의 음해 때문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고석 대령과 대립하고 있는 이 소령도 이 대목에 대해서는 고 대령의 발언을 어느 정도 뒷받침했습니다. ⊙ 이명현 / 당시 수석 검찰관  : 아, 그래서 그러는구나, 대령이 계속 뭐 ○○○이 뭐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 나중에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검찰과 기무사, 그리고 군 검찰, 병무비리 수사의 세 바퀴인 이들이 오히려 수사 축소의 주체로 지목되고 있는 현실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수사를 지켜 봐온 국민들에게는 실망 그 자체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병무비리의 몸통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원용수 준위와 박노항 원사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수사결과 고위층에 대한 내용이 전무하다보니 진짜 비리의 몸통은 누구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런 가운데 2580은 병무비리 수사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미쳤던 또 하나의 인물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전과 5범의 병무 브로커 출신으로 합수부의 수사 정보원으로 있었던 이 사람을 통해 병무비리 수사가 난항을 거듭한 또 다른 이유를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 18일 서울지방법원, 김대업이라는 40대 남자의 사기혐의 공판이 열렸습니다. 김씨는 병무 브로커 출신으로 수사가 한창이던 98년 여름 합수단을 찾았습니다. 병무비리 수사협조를 통해서 그동안 자신의 죄가를 치르고 싶다는 청이 받아들여져서 김씨는 비공식 수사 정보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 서영득 / 군 검찰단장, 대령  : 당시는 자백을, 내 사건은 이런 게 있으니까 자백을 하고, 이 이상 더 나오면 내가 처벌을 받겠다. 그리고 내가 병역비리에 대해서 척결해야 된다고, 내 스스로가 전과를 가지고 있으니까 소신을 갖고 일을 하겠다. 그래서 나를 써주시오 해서 그 당시 수사팀들이 면담을 하고 그렇게 썼다는 거지. 초기 난항을 거듭하던 수사는 김씨의 협조로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병무비리 수사의 영웅으로 불리는 김씨가 사기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사연을 뒤쫓아봤습니다. 지난 3월 말 서울 신촌 로터리의 한 PC방에서 병역비리 정보원으로 활동하던 김대업씨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습니다. 김씨는 자신을 사전기관의 고위층으로 속여 피해자 조 모씨로부터 3억 8천만 원의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 용형문 / 서초 경찰서 경사  :   나는 고위층, 고위층을 수사라는 사람이다. 사명을 받아서 고위층을 수사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느낀 거예요. 그래 가지고 3급 이상 공무원들이라든지 이렇게 수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래 가지고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나한테 부탁을 해라. 피해자인 조 여인은 김대업씨를 지난 98년 7월, 아들이 군 면제 관련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 피해자 조 여인  : 아들의 재검을 한다고 해서 우리 아들이 갔었죠. 써낸 그 뭐죠? 작성한 기록부를 보고 나서 인터뷰, 뭐 얘기를 했나보죠. 그런데 사실대로니까 가라고 그러더래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너 캐피탈 호텔 왔던 사실도 아무에게도 바깥에 나가면 하지 마라. 후암동 합수부 건물 안까지 불려가 현금을 건넸다는 조 여인은 김대업씨가 사정기관의 간부인줄로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 피해자 조 여인  : 거기 난 옛날에 합수부인지도 몰랐죠. 뭐하는 데인지도 몰랐는데 하여튼 큰 건물 공공건물이잖아요. K25라나, 뭐 그러니까 문이 싹 열리더라고요. 조 여인으로부터 단순히 돈을 꿔 쓴 것이라며 혐의내용을 부인해온 김대업씨는 지난 달 3억 8천만 원을 돌려주기로 하고 피해자 조씨와 형사합의 했습니다. 그런데 김씨 대신 돈을 갚아 주기로 보증한 사람은 지난 병무비리 수사과정에서 김씨로부터 수사를 받았던 군의관 고 모씨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대업씨의 수사팀 참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군 검찰 수사진들은 고씨와 김대업씨 간에 커넥션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수사진들은 김씨가 자신과 친한 군의관들의 진술을 줄여주는 한편 자기와 관련된 진술이 나오면 아예 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 고 석 / 당시 검찰부장  : 안○○이 진술서에 자기가 대구병원에 근무할 때 김대업한테 코가 꿰서 처음에 몇 번 밥 얻어먹고 돈 얻어먹다가 약점 잡혀서 4∼50건 일년에 해줬다고 그런 진술이 있거든요. 몇 명 있어요. 그의 라인으로 보이는 애들이. 그런 애들은 사법처리 안 되고 다 전역했지요.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입니다. ⊙ 당시 수사 검찰관  : K(김대업)씨니 뭐니 하는 사람은 수사협조자로 남고 그 역할을 한정해야 하는데 자기가 나서서 수사를 하고 어떤 수사기록들 같은 경우, 이명현 검찰관하고 서로 공유를 하고 그리고 자기가 관리한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수사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이에요. 기본적으로... 그런 김대업씨는 일부 군의관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합수부 수사가 본격화된 99년 초, 김대업씨는 2년 전 자신을 고소 실형을 살도록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혐의는 부당 병역 면제, 이 사람은 아들과 함께 합수단에 여러 차례 불려와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별 혐의가 드러나지 않자 김씨는 자신과 잘 아는 병원장 강 모씨에게 CT 사진을 조작해 줬다고 진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받은 돈은 500만 원으로 하라고 정해줬습니다. ⊙ 강○○ / 허위진술 의사  : 자기가 진술을 어느 정도 이렇게 맞춰 줬어요. 내용이 실은요, 그 당시에는 금방 뭐 했는데, 누굴 기억하고 뭐 한다는 거 자체가 실제로 불가능하고, 맨날 그런 얘기하니까. - 김대업이 하라는 데로 진술서 다 작성했나? 그렇죠. 그렇게 된 거예요. 피해자와 아들은 최근 2년만에야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취재 결과 병무비리 수사의 중심에 있었던 김대업씨는 비리의 몸통이라는 박노항, 원형수씨와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더구나 김대업씨는 박노항  원사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된 변호사 사무장 최 모씨로부터 합수부 참여 직전 5천만 원을 건네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명현 / 당시수석 검찰관  : 보석으로 나갈려면 당신이 인정해야 된다, 당신이 했다고... 그러면 신병은 확실히 풀린다. 그래서 인정을 했대요. 아, 집행유예로 나갈려면 인정해야 집행유예 할려면 그건 맞은 말이죠. 그래서 인정했더니 그냥 실형이 나온 거래요. 5천만 원 받아먹고서 해준 게 하나도 없는 거죠. 변호사 수임료를 돌려 받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의혹 없는 수사를 위해 김대업씨가 또 다른 병무비리의 몸통은 아닌지 제대로 가려져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지난 3년 간 혹시나 하며 병무비리 수사를 지켜 봐 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좌절뿐이었습니다. 2580이 확보한 증언과 진술은 각 수사기관에서 이루어진 축소의 흔적들을 보여줍니다. 정부와 수사기관은 병무비리 수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좌절을 거쳐 분노로 표출되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