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9일, 2580보도] ⊙ 이상호 기자  : 정치적 로맨티스트, 2인자 정치의 대가, 선문답의 정치인 등 수 많은 별칭을 가지고 있는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JP라는 애칭으로 40년을 넘게 정치판의 중심에 버텨온 그가 최근 DJP 공조파기와 대망론 등으로 다시 뉴스의 핵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런데 JP의 현란한 화술과 선문답에 정작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JP식 화법의 실체를 되짚어봤습니다. 영상취재 김상진 / 영상편집 함상호 / AD 공아영 적당한 명분으로 언제라도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치인만의 특권인지 모릅니다. 평양 방북단의 일부 돌출행동에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JP의 발언은 공항 귀빈실에서 던져졌습니다.   ⊙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 지난 달 25일(일본 귀국 기자회견)   국사를 책임 있게 수행해 나가는 데는 많은 고민도 있지만 그러나 쉬운 아주 중용의 길이 있어요.   '중용의 길'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7일간의 수수께끼가 시작된 순간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임동원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표결사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답이었습니다. ⊙ 김종필 명예총장 / 8월 29일  : 임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면 표결하고 싸우고 대립하고 할 이유가 없잖아. 그래서 그런 얘기하는 건데 알아듣지도 못하고 딴 소리들만 잔뜩 서놨대. - 다음 개각 때... 시끄러. 그런 거 없어.   자신이 던진 말을 다시 해석해 주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그보다는 대통령의 뜻에 반대해 임 장관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는 한 것도 평소화법과 크게 달라진 대목입니다. 분위기가 표결 쪽으로 기울자 이젠 두 번째 수수께끼가 시작됩니다. - 청와대는 임 장관 퇴진 요구 결의문에 유감이라는데... ⊙ 김종필 명예총재 / 지난 달 31일 (완주 지구당 행사)  : 유감이래? 감이 있다는 얘기겠지. 감이 있으면 됐지, 뭘... - 국회에서 표결처리로 간다는데... 조용히 국회에서 그런 문제 해결한다면 원의 (국회의 뜻) 대로 하는 거지.   정작 해임한 표결처리가 있기 2시간 전 JP는 이번엔 표결과 공조는 별개라며 통공분리라는 신조어까지 공개합니다. ⊙ 김종필 / 9월3일 (자민련 의원총회)  : 만든 소리가 하나 있던데 무슨 소리지, 그게?   - 통공분리... 그것 좀 설명해봐.   - 통일부 장관 사퇴와 공조문제는 분리하는 정책이 우리 자민련 정책, 통공분리는 그대로 다 유지가 된다, 이 말입니다. - 이렇게 되면 자민련은 햇볕정책을 반대하는 것 아닌가? 아니, 어째 그런 연어법이 나오나. 국회출입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 제 얘기가 아니라... 언제부터 했어요? - 작년 초부터 했어요.   알듯 모를 듯한 JP식 화법의 결과는 해임안 통과로 나타났고, 결국 DJP 공조는 파기됐습니다. 어느 누구도 JP의 중용의 길이 이런 엉뚱한 결과로 나타날지 예측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JP가 가는 쪽이 승리하고 또 승리한 쪽에 JP가 있었다고 하는 그의 40년 정치역정을 통해서 그의 말이 가리키는 지점을 예측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 이지원 / 서울대 영문과 2년  : 굉장히 정치적으로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끔 해서... 그러니까 항상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고서 다음 단계로 움직이는 그런 화법인 것 같아요. JP의 말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정치부 기자들 역시 그의 말에서  진위를 걸러내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 전영기 / 중앙일보 정치부 (JP 전문기자)  : 저는요, JP 말을 가지고는 해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 하면 많이 속아왔거든요. 그래서 저는 JP와 오늘 도대체 누가 만났나, 그걸 봅니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JP를 만난 사람이 누군가를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듣습니다. ⊙ 모리아수 토요카즈 / 후지TV 서울특파원  : 일본에서 '중용의 길'이 있다고 하면, 어딘가에 타협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당간의 분열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중용의 길'은 없었던 것 아닌가. '중용의 길'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궁금하다.   기자들의 볼멘 소리에 JP는 그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옮겨 적어줄 것만을 주문해왔습니다. - 여러분들은 리포터지, 커멘테이터 아니야. 그러니까 리포터만 해. 혼자 리포터하고 커멘테이터 하고 겸하니까 문제가 자꾸 이상하게...   ⊙ 전영기 / 중앙일보 정치부 (JP 전문기자)  : 김종필 명예총재는 기자들한테 잘 쓰는 말이 있어요. 첫째 쓸데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그러고 둘째는 때로는 궁금한 것도 있어야 된다. 궁금한 게 있는 게 좋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JP의 홍보나 언론에 대한 감각은 제가 보기에는 아직 3공화국시대, 권위주의적 시대의 언론관이 다소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지난 6년 간 쉴 틈 없이 JP의 발언을 기자들에게 전해온 자민련 변웅전 대변인도 JP 발언 독해법을 내놨습니다만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 어떻게 읽어야 됩니까? 말의 특징이 뭡니까? ⊙ 변웅전 / 자민련 대변인  : 동양철학을 생각하시면 되겠구요. 사성성어를 많이 외우시면 되겠고, 그리고 그 분이 말씀하실 때 좀 깊이가 있기 때문에 가만히 듣고 있으면 알 수가 있습니다. 뜸을 들여서 먹는 밥과 라면을 먹는 것과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과의 차이일겁니다. 절대 무슨 이익을 얻기 위해서 선문답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명인들의 말과 행적을 통해 그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한 정혜신 박사는 JP야말로 가장 해독이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 정혜신 / 의학박사 남성심리 전문가  : 뭔가 들을 때는 반박할 순 없지만 그건 아닌데, 저 사람 뭔가 좀 아닌데, 이상한데 그런 느낌이 든단 말이죠.   고심 끝에 그는 JP를 자신을 위한 직업인으로 분리했습니다. - 대단히 훌륭하고 굉장히 유유자적한 그런 말들이 사람한테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거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어떤 행적과 더불어서 지금의 결론이 뭔가 그 분이, 그러니까 JP가 그런 얘기들을 자기 자신의 욕구나 욕망이나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자기 삶의 한 방어기제로 그 말들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들이... 뭐라고 그럴까, 그 이면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보는 거죠. JP의 말이 담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현대사를 관통하는 그의 정치역정을 되짚어봐야만 합니다. 개혁의지로 충만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청년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세워서 그의 뜻을 펼쳐보려 했지만 곧 1인자 박정희의 살벌한 견제로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그로부터 40년, JP의 정치궤적은 그 특유의 2인자 정치술을 완성하게 됩니다. 지난 63년, 1인자 박정희의 뜻을 거슬러 결국 유럽으로 향해야 했던 JP는 훗날 그의 첫 번째 어록인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 관훈클럽 토론회 / 87년 11월  : 따지고 보면 인간이라는 게 어떻게 자기 생각대로만 갑니까. 결국은 나와 다른 뜻이 늘 여기서 조화를 이룰 때 있고 또 상반될 때 있고... 20년 뒤인 1980년, 신군부로부터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했던 JP, 이번엔 젊은이들이 잘해주기 바란다는 말로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다시 10년 뒤. ⊙ 3당 합당 뒤 / 90년 1월  :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최고위원께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주신 점은 후세의 역사가 반드시 높이 평가할 것으로 믿으며 이 자리를 빌어 아낌없는 찬사를 두 분에게 드립니다. 아낌없는 찬사의 대상이었던 노태우, 김영삼씨는 불과 몇 년만에 JP에 의해 무능한 절대 권력자로 평가 절하됩니다. ⊙ 연두 기자회견 / 97년  : 이 엄청난 부실과 분열로 나라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무소불위한 절대권력이 역사와 시대를 오도하고 국민을 경시하고 국가를 농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의 40년 정치행적을 통해서 실리와 명분을 오가는 JP의 화려한 화법은 계속됩니다. ⊙ 92년 YS 정권 획득 이후  : - 참새가 봉황의 뜻을 알겠는가. - 선비는 자기가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 97년 후보단일화 직전  : 10월에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에는 11월의 논리가 있다.   ⊙ DJ 당선 직후 / 97년  :   김대중 대통령께서 조국에 봉사하시겠다고 하는 그 참 뜻이 이루어져서 모든 보람을 나눠 갖게 최선을 다하여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 4.13총선 직전 / 지난해  : 하룻밤 편안하게 잔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총재께서 지금 국민 여러분께 밝혀 드린바와 같은 여러 일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공조하는 입장에 있을 수가 없다. ⊙ 자민련 / 인천지부 행사 (지난 2월)  : 한 때 좀 속상한 일이 있어서 안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후 가만히 보니까 그럴 수가 없어요. 그럴 수가 없으면 속에 담아 있는 건 눌러놓고 대의에 우리는 모든 것을 정당하게 바쳐서 유종지미를 거둬야 해요. 민주당하고 우리는 그런 차원에서 공조를 끝까지 할겁니다. 마지막으로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 떠나고 싶다며 최근까지 이른바 킹메이커를 자임해온 JP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민련이 JP 대망론을 언론에 공식 발표한 다음날 JP는 '희망은 끝이 없다'하는 글로 더 이상 킹메이커로 안주하지는 않을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로는 단 한번도 자신의 대망론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 국내에서 JP 대망론이 많이 일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명예총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미국 귀국 기자회견 / 지난 달 14일  : 글쎄 나는 아직 그런 얘기를 들어보지를 못 했는데... 기자 귀에만 그런 얘기가 들어왔나? - JP 대망론은 자민련 공식입장 아닌가? ⊙ 일본 출국 회견 / 9월 5일  : 내 입에서는 아무 얘기도 그런데 대해서 나온 일이 없어요. 대망론을 둘러싼 JP의 새로운 수수께끼는 정계개편 향방과 맞물려 일단 손님 끌기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한 그의 게임에 이제 해독법을 터득하기 시작한 국민들이 얼마나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줄지는 미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