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20일, 2580 보도] ⊙ 이상호 기자  : 요즘처럼 젊게 보이려고 애쓰는 시대는 없었을 겁니다. 성형수술은 물론이고 노화방지 클리닉이 성행하는 것도 세태의 한 단면입니다. 그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특히 중년의 경우에는 나이 먹으면 직장에서 쫓겨나는 풍토 때문에 젊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모두가 나이에 몰두하는 사회,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봤습니다. 영상취재 양성호 / 영상편집 방완규 / AD 강효임 요즘 서울에서 한창 성업 중이라는 강남의 한 카바레입니다. 평일 저녁 이른 시각인데도 수백 명의 손님들로 붐빕니다.   - 아는 웨이터 누구 있어요? - … - 몇 명이에요? - 세 사람. - 자리가 없어요? 자리가 없다니요? - 자리가 없어서 문제죠.... 뭐... - 웨이터야 많은데... - 룸 없어요? 룸? 연일 호황을 누리는 이 업소의 영업비밀은 무엇일까. 호황의 비밀은 나이 들어 보이는 손님을 가급적 받지 않는 이른바 철저한 물 관리에 있다고 한 웨이터는 귀띔합니다. ⊙ 웨이터  : 나이 드신 분... 웬만하면 솔직히요. 나이 드신 분들은 대접 못 받아요. 홀에서 여자가 룸으로 딱 들어오면 (여자가) 가버려요. 그냥. - 나이 들어 보이면? 예... 딱 보이니까요. 좀 (나이가) 저기 하신 분들은 불을 약간 줄여드리죠. - 어둡게? 예. 그래서 그런지 카바레를 둘러보니 30대 고객들 뿐, 4~50대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 손님  : 그냥 가는 거예요. '뭐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하고 가는 거예요. - 그분들이 기분 나빠하면 ?   아니면 뭐 화장실 갔다가 올게요, 하고 가버려요.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유흥업소의 출입제한은 그래도 애교로 봐 줄만 합니다.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의 경우에도 나이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 시트콤 '연인들' : - 아휴~ 너 정말 귀엽게 생겼구나. - 고맙습니다. 아줌마. - 아줌마? 얘, 나 아줌마 아니야. -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 갖고...   - 아니에요.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아이 눈엔 어쩔 수 없는 게 또 나이입니다. 맞선 보는 자리,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게 촌스러운 일이라지만 그래도 서로 나이가 찬 경우에는 묻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 서른 셋이에요? - 네.   - 결혼이 좀 늦은 거 같은데요? 왜 여태까지 결혼을 안하고 늦었어요? - 지금 저희 세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잖아요. - 친구들 만나면 스트레스 굉장히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 지금 제 친구들도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아이들이 좀 커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둔) 친구들도 있고, 이젠 막 나이를 줄이고 싶어요... 대부분의 결혼 대행사들은 여성은 서른, 남성은 서른 셋 이상을 노처녀, 노총각 팀으로 나눠서 별도 관리하고 있습니다. ⊙ 이우진 / 결혼정보회사 사장  : 본인들 스스로가 좀 나이가 들었다는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결혼이라는 건 조금 더 젊은 사람하고 만나려고 하는 심리가 있고, 이런 것들을 맞춰주는 게 조금은 힘든데 또 의외로 좀 젊어 보이는 사람들이 결혼 더 잘 합니다. 세상이 이렇다보니 나이보다 젊어 보이려는 노력은 가히 눈물겨울 정도입니다. 요즘 서울 강남 지역엔 주름살 제거와 피부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노화방지 클리닉이 속속 들어서고 있습니다. 올해 46살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고만석씨는 나이가 들면서 왠지 모를 피해의식을 느낍니다. ⊙ 고만석 (46세) / 인테리어 디자이너  : 사회생활을 좀 더 원활하게 하려고 그러면, 그리고 젊은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될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은 저와, 저를 포함해서 그런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군다나 이런 데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것(검버섯) 때문에 많이 고생하셨었죠?   ⊙ 곽원길 / 58세  : 네... 네... - 사회생활에 불편하셨어요?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이 안 들던데요. 나이가 40이 넘으니까 대인관계를 많이 하다보면은 이런 것이 (검버섯) 자꾸 마음에 걸려 가지고 항상 우울한 마음도 많이 들었습니다.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피부 비용까지도 서슴지 않고 받는 남자 손님들, 그들의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 강○○ / 41세  : 40이 넘어서 뒤늦게 머리 좀 빠져 가지고 학교에 갔더니 아이가 창피해하더란 말이야. 우리 아빤 뭐 나이 먹었다... 이렇게 돼 가지고... ⊙ 한○○ / 37세  : 어렸을 때는 야, 너 노숙해 보인다... 그게 좋게 들렸는데 점점 지나가면서 실제보다 더 들어 보여요. 이러는 소리를 들을 때는 별로 안 좋죠. 이제는... ⊙ 임이석 / 피부과 원장  : 옛날과는 달리 노화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증가한 것 같습니다. - 어느 정도 보면 될까요? 한 10년 전보다 한 2배까지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노화방지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피부관리는 기본이고 아예 얼굴을 젊게 뜯어고치는 성형수술도 크게 늘고 있습니다. 50대 초반의 정씨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형수술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합니다. ⊙ 정○○ / 53세  : 몇 년 전에 전철을 탔는데 양보를 해주더라구... 그때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이렇게 늙었나... ⊙ 최정호 / 성형외과 원장  : 많은 대다수가 상처받은 사람들이에요. 마음의 상처를... 그래서 우리 성형외과 책에 어떤 말이 써 있느냐 하면 '성형외과 의사는 칼을 든 정신과 의사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젊게 보이고 싶은 생각은 인지상정입니다. 더구나 나이 때문에 일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야말로 절박합니다. 학교공부를 마친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전쟁을 치르면서 우리 사회 나이 제한의 벽을 처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정부는 2년 전 경제단체장들에게 취업시 나이 제한을 철폐하도록 유도하고 합의까지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정부대로 공무원 채용시 나이제한 규정을 버젓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 공송호 / 취업 준비생  : 나이제한 때문에 계속 공부를 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됐을 때 포기하고 나서 다른 어떤 직장을 구할 때는 굉장히 또 다른 직장에 반해서 많이 잘 안 봐주는 그런 경향이 많아요. 솔직히... - 나이에 대해서 요즘처럼 고민을 해 보신 적이 또 있었습니까? ⊙ 손무성 / 취업 준비생  : 없었죠. 지금 이 시기가 진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제일 초조하고 그럴 것 같아요. 취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의 경우 나이 제한은 더욱 가혹한 게 현실입니다. ⊙ 김광미 / 취업 준비생 연령제한이 있으면 그때 딱 하고 싶은 때 못 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 특히 여성분들한테? 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한번 퇴출당한 사람들이 재취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회사를 나올 때 걸렸던 나이가 들어갈 때도 다시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 정○○ / 52세, 재취업 희망자  :   아예 자격요건에 처음부터 나이가 박혀 있어요. 뭐 몇 년 생 이하라든가... 아예 처음부터 자격 자체가 주어지질 않는 거죠. 국내 외국인 회사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는 한 외국인 헤드헌터는 나이 하나로 진출입을 결정하는 한국 사회의 비합리성에 적잖이 놀랐다고 합니다. ⊙ 피더 만릭 / 탑 경영 컨설팅 부사장  :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나이를 우선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비합리적으로 보이죠. 확실히 인간은 모든 면을 기반으로 해서 생산을 합니다. 나이에 의한 경험이나 지식, 그리고 직업적 경험도 중요하지요. 연공서열은 옛 말이고 요즘 직장에는 나이가 어릴수록 우대 받는 역 연공서열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입니다. ⊙ 김○○ / 40대 구조조정 대상자  : 나이 먹는 게 겁이 나죠. 근데 누구나 다 나이는 먹는 겁니다. 나한테 언제 그 칼자루가 나타날지 모르니까 겁이 나는 거죠. 퇴출 대상자들의 나이가 5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심지어 최근엔 벤처바람을 타고 30대까지로 급격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 박○○ / 35세, 회사원  : 지금은 발탁이다 뭐다 해 가지고 40대 아니면 30대 초반에 상무되고 이런 식으로 되면 그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물러나야 되는 그런 스트레스가 있거든요. ⊙ 백○○ / 37세, 회사원  : 잠 못 자죠.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될 시간에 저희 나이에는 그렇게 있지를 못 하니까 잠을 못 자거나 아니면 잠을 안 자거나 해서 젊은 친구들만큼의 능력을 발휘를 해야 될텐데... 스트레스 많이 받죠. 나이 들어도 쫓겨날 염려가 없는 곳이 농촌이라지만 그렇다고 나이 들어가는 것이 방가울리 없습니다. ⊙ 안웅태 / 강화군 용정리 (66세)  : ...일 많이 하고 또 일 많이 하게 되면 잘 먹지 못하고 그냥 햇빛에 나가서 물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엎드려서 있고 그러니까 더 쉬 늙는다, 그런 말씀들을 많이 하시죠. 성형수술 하는 도시사람을 타박하던 70대 할머니도 젊어 보인다는 한 마디에 이내 반색합니다. ⊙ 박명화 / 70세  : 근데 진짜로 70대 어머니 아닌 것 같아요? - 젊어 보이시는데... 아이 좋아라...   농사일밖에 모른다던 할아버지도 외모에 신경을 써야할 그만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 최호봉 / 66세  : 할머니가 늙어지니까 보기 싫다고 같이 안 잔다고 그러니까 염색하는 거죠. 뭘... 내가 뭐 염색하고 싶어서 합니까? 싫대요. - 나이 들어 보여서? 그래요. 아주 싫대요. 귀찮다고 다... 그래서 염색하는 거예요. - 머리 보여주세요. 까마시네. 여기 다 백 대가리예요. 이거 아주 전부... 여성학자 박혜란씨는 최근 내놓은 에세이집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연령에 대한 획일주의를 신랄하게 꼬집었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심지어 죄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 박혜란 / 여성학자  : 사회나 개인이나 똑같은 거죠. 다 획일적인 거죠. 그래서 결국 사회나 개인이나 다 지독한 연령차별주의, 여기에 빠져있거든요. 그래서 그 연령차별주의는 결국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그런 사회가 될 때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올해 예순 한 살의 정인삼씨,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정씨는 용인 민속촌 농악단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팽팽한 피부하며, 환갑을 넘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후배들에게 대외활동을 넘기고 농악단 지도에만 전념하고 있는 그는 나이를 뛰넘는 공존의 원리로 농악대의 지휘자 상쇠의 대물림을 이야기합니다. ⊙ 정인삼 / 한국민속촌 농악단장  : 상쇠가 나이가 차서 상쇠를 젊은이에게 물려주면 그냥 그 농악에서 완전히 쫓겨나 가지고 거기를 들어오지 못하는 게 아니고 그 속에서 다시 역할이 주어져서 대포수도 할 수 있고, 양반도 할 수 있고, 그런데 또 중요한 것 또 하나는 나이가 어려도 상쇠의 지휘에 절대 따라줍니다. 나이로 선을 긋지 않고 사람 됨됨이와 그 가치로 평가하는 사회, 나이 들었다고 내쫓지 않고 나름의 역할을 주는 사회, 나이 듦에 따라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각박한 세상, 그 한해 첫 머리에 바래보는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