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미구의 그날 신은 이 땅에 구세주를 내리실 거라며 기도하던 이 땅의 인류는 수상기가 앞에 하루를 벗어 개어놓고는 모두 잠에 들었다. 애국가가 울리고 화면조정이 끝나자 복음이 울려퍼진다. “누가 좀 날 말려줘요” 하고 외치면, 사방에서 “돌리도.. 돌리도, 돌려달라“ 고 화답한다. 모두 번듯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이젠 TV 마다 개그맨들의 복음이 가득하다. 신의 존재를 묻는 사람으로 더 이상 북적거리지 않는 아스팔트가 여인의 곡선처럼 도시로 향하고 있다. 곧 기독교 방송 불교방송에서도 이 신을 영접하리라고 평화방송은 오늘 흐느끼며 발표했다. 이 땅에 충만한 평화 충만한 위트 넘치는 유머 아 ~ 즐거운 인생                     (93/2/7) (NOTE1; 세상사.. 씰리한 한마디 개그가 구원이 되는 세상이 왔다. 눅눅한 인생사에 반짝이는 작은 희망들 마저 소진돼 이따금 터져나오는 실소가 반갑다. 소외된 인생에 전면적인 이완이 점차 제한되어 버리고, 순간의 유머에 세상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이미지와 위트가 대세가 된 오늘, 진실은 그 만큼의 분량으로 얇게 썰려 유통된다. '갈아만든 뉴스'라고? 슬라이스 투루스, 스메쉬드 팩트는 어떠한가! 인류의 투쟁사가 쟁취한 가벼움의 승리여. 지금은 새벽 3시, 모두가 샴페인에 취해있다. 하지만 어쩌지? 우리의 승리가 벌써 나는 낯설다.) (NOTE2; 93년 2월, 티비 개그프로를 보며 써둔 글이다. 변화의 가속은 10여년의 시간을 두고 좀 더 빨라지고 있다. 개인기 한두가지 못하면 대중 앞에 썰렁한 세상이 되었고, 전국민은 멀쑥한 연예인이 되었다. 카피를 걸치고 짝퉁을 두른 사람들.  비본질적인 부분이 생경한 전체를 빚어내는가 하면, 정작 인간적인 것들은 대추리 논밭에 나뒹굴거나 사장되고 있다. 웃고 싶어도 쉬- 웃어지지 않는 세상. 나는 당신의 웃음에 동의하는가? 당신은 저들의 한숨짓는 얼굴을 경멸하고 있다. 그럼 묻자. 당신의 웃음은 정당한 것이냐고. 웃음은 웃음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웃음 거리인가. 정치권의 코메디가 슬픈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낯선 세상의 낯선 풍경들.. 예언대로, 당신은 행복한가?) (주: '사진'은 한 여고 교실에 부착되어 있는 것을 촬영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