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이 기거하던 운현궁에 갔다. 백여년전 이땅의 정세와 그 속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명분과 실리, 지략과 모책이 횡행하고 인간 위에 역사가 호령하던 시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그것이 싸움의 처음이자 끝이었지.. 세기를 두번이나 바꿔 힘겹게 백년이 지났건만 싸움의 양태는 여전하다. 이것과 저것을 어떻게 '생각'할 거냐고 여야가 격돌한다. 청와대가 나서고 야당은 장외투쟁을 불사한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칠대로 지치지만 어느 '생각'이 이길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모두가 이미 '생각'을 놓아버린 시대의 언덕을 우리 민족은 밤새 힘겹게 오르고 있구나. 운현궁의 뜨락을 걷다 문득 처마를 보았다. <사진>은 길게 빼어내 사람에게 넉넉하게 펼쳐진 처마의 모습이다. 그렇구나. 우리에게 집은 벽돌로 지어 굳게 쌓아올린 서양의 성이 아니다. '완성태'로서 군림하는 집이 아니다. 사람을 위해 변모하는 열린 구조다. 우리의 집은 사람이 비를 피하고 바람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하고 낮추는 것이었구나. 선인들의 자상함과 융통성이 살갑다. 오랜 '생각의 집'에 깔려 허덕이는 오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집은 무엇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