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정성의 그물로 공기중의 마음을 담아 매체의 밥상에 그대로 펼쳐내는 공장'입니다. 언론공장의 제조원가는 기자들의 발품이고, 시장경쟁력은 그물의 투명성과 밥상의 진정성에 있습니다. 기자는 언론공장의 노동자죠. 맑은 눈이 필요합니다. 낮은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예민한 귀가 중요하죠. 기자가 알게되는 순서는 언제나 두번째입니다. '먼저 안' 누군가가 있었기에 전해들을 것입니다. '먼저 안' 누구.. 바로 그들이 뉴스의 소중한 원료 제공자들입니다. 제보자라고 불리는 그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이해와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제보를 합니다. 그 경우 제보는 홍보의 경향을 갖게됩니다. 대기업 홍보실이 제보를 '빙자해' 기자들의 전화기를 공략하지요. 하지만 반대로 자신에게 닥쳐올 피해를 뻔히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공익적 목적의 내부고발자', 즉 whistle-blower들입니다. 고발기자질을 하는 직무상의 이유로, 저는 내부고발자들을 만나는게 주업무입니다. 실로 많은 도움을 그분들로 부터 받았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보도가 나가면 저 역시 소송공세를 포함한 이런저런 공격을 받게됩니다. 하지만 저는 정신적 보상을 받습니다. 간혹 특종상도 받구요. 하지만 내부고발자들은 보도 이후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각오를 해도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알 수 조차 없는 소송과 왕따의 피해를 겪게 됩니다. 그들과 함께 해온 고발기자로서 그들을 지켜봐야하는 입장은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후 후속보도를 하거나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 이상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될때 참으로 고통스럽더군요. 사랑을 빌미로 접근했다가 제 욕심만 채우고 연인을 외로움 속에 방치하는 못된 바람둥이 처럼 느껴져 직업적 회의를 갖은게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고심끝에 몇해전 회사에 기안서를 올렸습니다. '언론을 통한 내부고발자 지원을 위한 공익 기금' 을 만들자는 제안을 담았습니다. mbc가 적은 돈이라도 씨드머니로 넣고 국민들에게 함께 참여를 호소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소금창고>라고 이름 붙힌 이 공익기금은 시청자에게 제보를 당부하며, 그 제보의 토대 위에 뉴스를 만드는 언론공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만들었어야할 기금입니다. 만시지탄도 유분수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mbc가 이 기금을 지원하고,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관심과 홍보를 수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내부고발자가 공명심에 사로잡혀 동료와 조직을 배신하는 더러운 배신자가 아니며, 또한 내부고발이야말로 투명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합의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넓어지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을 감행할 것이고.. 또 많은 제보가 mbc에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더 생생하고 좋은 보도를 할 수 있을텐데.. 상상만으로는 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측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사회 통합을 위해 힘써야할 언론사가 자칫 사회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게 이유였습니다. 내부고발자를 돕는게 '사회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면 시청자들의 제보는 왜 요청을 하고, 또 고발보도는 왜 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었습니다. 믿었던 회사로 부터 큰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한탄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개인자격으로 씨드머니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고발한다'는 책 인세 몇푼이 전부였습니다. <아름다운 재단>에 기금 취지를 설명하고 그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소금창고> 기금은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아직은 적은 돈이 간신히 기금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단 한사람도 도울 수 없을 것 같았던 작은 돈. 그 작은 돈이 큰 일을 해냈습니다. 지난해에 첫번째 '공익적 내부고발자'를 선정해 '빛과 소금상'을 시상한 것입니다. 첫번째 수상은 적십자사 불량혈액 유통을 내부고발한 네분에게 돌아갔습니다. 창립 100년 만에 처음으로 적십자사 개혁의 물꼬를 튼 그들은 내부고발 이후 경찰조사를 받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사회 어느 부문도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나눠주지 않았습니다. '빛과 소금상'을 받고 이들은 처음으로 양지로 나왔습니다. 자신들의 얼굴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어둠속에서 상처받고 있을 다른 내부고발자들을 돕겠다고 오히려 자정하고 나섰답니다. 제 마음 속에도 비로소 작은 보람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좋은 '상'은 백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이되는구나. 관심과 사랑을 담은 한마디의 격려는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소중한 목발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분들은 '빛과 소금상' 수상 이후, 국무총리 표창 나아가 대통령상까지 받았답니다. 바로 올 봄의 일이었습니다. (물론 언론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요.) 사진은 '아름다운재단'과 '서울그린트러스트'가 힘을 합쳐 마련한 행사입니다. 서울숲 내에 공익의 숲을 조성했는데요. 며칠전 바로 이곳에 빛과 소금의 나무가 심어졌답니다. 나무를 심고 기르듯, 내부고발과 내부고발자들의 문제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기로 함께 다짐했습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였지만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mbc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더딘 발걸음이기는 하지만, 공익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고 있습니다. 올 가을엔 다시한번 <소금창고> 기금 제안서를 회사에 올려볼 계획입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