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드컵이 한창이던 여름에도 나는 광화문에 나가 보지 못했다. 기자질의 한계가 뭐냐면.. 남들이 놀때 우린 가장 바쁘다는 점이다. 정말.. 무지하게 일했다. 뭔 할일이 그리 많았냐고? 님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들을 만들어 냈는지 생각해보시라. 그러나 또 어찌보면 나가지 못했다기 보다는 '나가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본디 현상의 그대로 못보고 그 이면에 집착하는 '천형'을 타고난지라.. '붉은' 무리가 일종의 민족적 시대문화를 집단소비하고 있는 호사가들 쯤으로 의심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물론 더 긴시간을 두고 고민해볼 대상이지만... 하지만 지난주 토요일.. 나는 광화문 거리를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87년 이후 17년 만이었다. 87년 6월 항쟁 막바지.. 이한열씨의 장례식 때였을까. 시청 앞에 모인 백만인파가 청와대로 몰려가겠다며 광화문 저지선 돌파를 시도했었지. 일촉즉발의 순간! 나는 4.19 당시 낡은 한장의 흑백사진을 기억해내고는 전율에 휩싸였었다. 사진 속엔 경무대 앞으로 밀려온 학생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들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뚫고 나간다면 혹시 최루탄 외에 다른 살상 무기가 동원될지도 모른다.. 두려웠다. 시청 앞에서 광화문까지 약 3-4백 미터의 거리. 그 영원 처럼 길게만 느껴졌던 도로를 걸어나가는 동안.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역사 속에 온전히 투영된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알량한 감동도 잠시! 투드두드둑... 수백수천개의 최루탄이 하늘을 뒤덥기 시작했다. 바람앞의 낙엽 처럼 너무도 쉽사리 흩어지던 대열.. 아! 역사속의 민중은 이처럼 나약한 것이었던가. 한동안 안개 속을 쫓겨다니다 코리아나 호텔 앞에 주인을 잃고 나뒹굴던 수백켤레의 신발을 보았다. 찢겨진 옷가지가 단속적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87년 6월의 마지막 모습이다. 6.29 선언으로 다시 찬바람이 불어오고, 나는 한동안 이 마지막 장면이 주는 허무밖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 17년 만이었다. 운동화가 나뒹굴던 그 자리, 역사속 바로 그 자리에 섰다. 돌이켜보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다. 여기 올린 이 한장의 사진. 나는 안다. 이 사진이야 말로 2004년 이후 기나긴 민주화 노정의 첫 장면이될 것이라는 바로 그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