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골에 계신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새벽 일찍 차를 몰아 아버님과 함께 아침을 들었다. 나는 또 얼마나 많은 이런 날들을 아버님과 함께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존재하는 것들과 순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눈이 새롭게 열리기 시작하는 요즘, 세상은 왜 또 이토록 위태로운 것인지... 사실 나는 이른바 '나이롱' 기독교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실존적 관점에서 정서적이고 지극히 낭만적 코드로 그의 혁명적 인간애를 추종하는 이를테면, '종교 팬클럽' 회원에 해당되는 수준일 것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시골 예배당을 찾았다. 효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곳에서 작은 감동을 만났다. 모인 신도라고 해야 고작 20명이 채 되지 않는 시골의 작은 교회. 이 교회의 신도는 중년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노인들이었다. 여느 교회 처럼 성가대가 있을리 만무한 노릇이었다. 죽음을 담담하게 맞으려면 소박하고도 용기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있었다. 좋은 말씀이셨다. 죽음이 항상 임재해 있음을 느껴야 삶은 부패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성가대가 출연할 시각. 하지만 성가대가 없는 이 교회에서는 매주 한 성도씩 단하에 나와 성가를 부르도록 하고 있었다. 사진(좌: 이근교 옹/72세, 우:김명순 옹/71세)속 노부부는 오늘의 성가대원이었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두분이 부르는 성가는 감동 그 자체였다. 교회 뒷산에서 꺾어온 들꽃 장식과 오래 묵은 피아노 소리.. 그보다 더 정겨운 두분의 '일상적' 화음이 나에게 작은 평화를 주었다. 존재하는 것들을 바로, 지금, 여기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언제라도 죽음을 담담히 맞을 수 있도록 '준비된 삶'을 살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내 아버지에겐 무병과 장수를 빌었다. 가끔 '나이롱'도 제 구실을 할때가 있다.